“인물과 스토리는 만들어도, IMF(국제통화기금) 협상 내용은 가공이 있을 수 없었죠. 시나리오 받아 보곤 피가 거꾸로 솟았어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실체가 정말 너무하더라고요. 1997년은 우리 삶이, 가치관이, 양심이 왜곡된 선택을 하게 만든 결정적 시기였어요. 이 영화가 반드시 만들어져 더 많은 사람에게 그때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보고 왜 분개했나.
“처음엔 별생각 없이 펼쳐보다 어느 순간 모르는 것들, 정재계 관련 인물을 검색해가며 읽었다. IMF가 요구한 과도한 선결조건은 국제법에도 어긋난다. 도움받는 입장에서 우리 정부도 최소한 나라와 국민의 보호 장치는 마련했어야 했는데 패를 다 버렸더라. 90년대 중반만 해도 80%이상이 스스로 ‘중산층’으로 인식했고 ‘평생직장’이란 말이 있었다. 요샌 중산층의 안정적 기반을 가지려고 피눈물을 흘린다. 저는 연예인이고 상대적으로 혜택받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어떤 분들에게 박탈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협상안을 읽으면서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경제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삶의 위기를 느끼고 고통받는 근간이 된 것 같아 너무 속상했다. 요즘 초등학생 꿈이 유튜버와 건물주라잖나.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분위기가, 어른들의 욕망이 아이들까지 돈 생각을 하게 부추긴 것 같아 충격적이었다.”
배우로서 97년을 기억하면.
“조심스런 얘기지만 연기자로선 큰 변화가 없었다. 좋은 음악들이 거리에 쏟아졌고 개성이 부각되면서 자유롭고 풍요로운 느낌이었다. 그러다 뭔가 불균형과 위험이 감지됐다. 어딜 가도 큰 재난이 있을 때처럼 뉴스가 들렸다. 당시엔 몰랐지만 친지 중에도 타격 받은 분들이 있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IMF 사태가 터지고도 서민들은 우리가 과소비해서 이렇게 된 줄로만 알았다. 언론에서 그렇게 접했으니까. 십시일반 금 모으기 운동엔 저도 동참했다. 겪으면서도 잘 몰랐단 사실을 이 영화 찍으면서야 깨달았다.”
IMF와 협상 장면은 모두 영어인데.
“5개월의 프리프로덕션 기간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다져나갔다. 단어 하나라도 막연하거나, 대사에서 오는 중압감이 있으면 말에 감정을 실을 수 없다. 제작진에 뜻풀이를 요청해 두툼한 페이퍼를 읽고 또 읽었다. 굉장히 한심한 지경이었다. 자문해준 경제 관련 학자분들 설명은 녹음해서 들어도 어려워 실제 금융권에 종사하는 젊은 분에게 강의를 들었다. 저처럼 관객들도 낯설고 어려울 수 있는 단어들은 최대한 쉬운 말로 바꿨다. 영어 대사는 담당 선생님과 경제학자에 자문을 구하며 연습했다. 지나고 보니 ‘한시현처럼’ 철두철미하게 분석하고 준비하며 한시현에게 다가갔던 것 같다.”
극중 한시현은 여성을 비하하는 사회적 편견에도 부딪히는데.
“20년 전엔 형식적인 ‘레이디 퍼스트’는 있어도 여성비하 발언이 자연스러웠다. 남자 상관이 말단 여성 직원에게 커피나 타오란 말을 해도 항의하는 게 이상했던 시대다. 당시 금융조직에 한시현 같은 위치의 실무직 여성이 있었냐 물으니 없었다더라. 남성형 권력구조 속에 그 정도까지 올라갔다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청난 실력자란 설정이다. 여성이란 걸 의도적으로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그만의 원칙, 소신에 충실하려 했다.”
기사 전문은
아 진짜 존멋 ㅠㅠㅠㅠ 자기 직업에 대한 저런 애티튜드는 배워야겠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