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01



그 때 난 사진을 배우고 싶었어. 


유독 쌀쌀하던 그해 11월, 난 간단한 수술을 하기 위해 휴학까지 감행했어. 수술은 별거 없었지만 퇴원하니까 참 …할 일이 없더라. 


많고 많은 취미 중 왜 유독 사진을 배우고 싶었는진 모르겠어. 딱히 하고싶단 생각이 든건 아니야. 그저 스무살 생일이 지나고부터 동기들이 하나둘씩 있어보이는 취미가 생겼고 (서핑이라던가, 유럽 여행, 재즈공연 감상이라던가..), 난 시간도 많은 주제에 도태되면 어쩌지 싶은 불안감 때문일까. 뭐라도 붙잡고 배워야 그놈의 인생경험, 스펙이란걸 쌓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뭐 찍게?” 


“인물 사진. 언니 나 요즘 인물 사진 찍어.” 


쥐뿔도 없는 주제에 헛소리하는 날 앞에 두고 이웃집 A언니는 당시 고가였던 데세랄을 내쪽으로 말없이 밀어줬어. 그리고는 다시 미싱을 돌리기 시작했어. 


“찍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울 연주 연애하나?” 


년초부터 구체관절 인형에 푸욱 빠져버린 A언니는 살결이 희고 갸륵하게 생긴 “에바” 라던가 “릴리스”를 위한 옷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었어. 도리어 비싼 카메라 썩히는 꼴을 안봐도 돼서 좋아하는 기색이드라. 묵직한 카메라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난 언니의 질문을 회피했어. 


“연애는 무슨. 그냥 하고 싶어서.” 


“모델은 있는거?” 


“찾을거야.” 


“그래. 그거 다음달 말까지만 돌려줘. 그 때 애기들 다 찍어서 돌페어 갈거야.” 






언니의 카메라를 얻고 나서 난 제빠르게 눈팅하던 사진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어. 며칠전부터 벼르고 있던거라 “TIP” 게시판보다 “친목” 게시판이 더 유리한 것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20대라는 말 옆에 "여자"라는 단어를 지웠다 썼다 반복하다 결국 써서 올렸어. 


“20대 여자 초보 사진사가 베테랑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그리고 기다렸지. 


오래 기다리진 않아도 됐어, 여자라고 적으면 댓글은 금방 달리거든. 내 글에 달린 열댓개의 댓글 중 “친하게 지내요 ^^” 라던가 “저도 초본데 같이 배워가죠!” 같은 영양가 없는 것들을 거르고 나니 결국 남은건 서너개. 개중에 가장 눈에 띄던 댓글이 있었어. 


‘인물사진 경력 8년차입니다. 쇼핑몰 운영하다 이젠 개인출사 위주로 합니다. 블로그 한번 놀러오세요 - (링크) _ 하늘바람구름’ 


링크를 타고 블로그에 들어가니 그 사진사가 찍은 사진이 년도별, 달별로 정리되어있더라. 옛날 폴더는 비공개가 걸려있어 못봤지만, 최근 사진들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 약간 몽환적이고, 모델의 얼굴에 치중하는게 아니라 사진 전체의 분위기를 본달까. 빛과 어둠을 참 잘 활용하는 사진사 같더라. 블로그 이름도 “Chiaroscuro.”


느낌 있었어. 바로 개인쪽지를 보냈지. 


‘하늘바람구름님, 저 XX카페 미리별이에요. 사진 알려주실 수 있나요?’ 


‘네 안녕하세요. 이번주라도 가능합니다.’ 


답변은 빠르더라. 


여러 사진사 중에 그 사람을 고른 내 심정이 뭐였는지 잘 알아. 댓글을 달아준 사람 중 가장 실력이 좋아 보였거든. 왜 굳이 개인 쪽지를 보냈는지도 알아. 기왕 배울거면 좋은건 나 혼자 독점하고 싶었거든. 


20살이면 모든걸 다 안다고 착각할법한 나이야, 나름 성인이니까. 그러니까 더 대범해지는 것 같아. 사람도 쉽게 만나고, 사귀고, 도전하고, 그런게 가능한 나이였다고 생각해. 지금 생각하면 참 위험한 나이야. 


‘저 휴학생이라 평일도 시간 가능해요.’ 


‘그럼 목요일, 제 퇴근 시간 고려해서 회사 근처에서 봐도 될까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6시 반쯤 XXX역 앞에서 뵈어요. 3번 출구. 이쪽으로 연락줘요.’ 







그 날 6시 반, XXX역 3번 출구에 대기타는 남자는 한 명 뿐이었어. 


꺽다리에 볼이 움푹 패인거 제외하고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뭔가 없어보이는 눈에 잘 안 띄는 그런 남자. 머리는 이발한지 오래되어 중단발 수준이었고 검푸른 매미빛 잠바에 텁텁한 면바지는 나이대를 가늠하기 힘들게 만들었어. 어리게 보면 이십대 후반, 많게 보면 마흔도 가능할법한. 부실한 몸에 비해 큰 머리는 의외로 두상이 동그랗고 예뻐서, 거꾸로 세워놓은 줄자 같았어. 툭 치면 몸이 머리로 말려들어갈 것 같은. 


솔직히 역 앞에서 봤을 때 저 사람만은 아니길 바랬는데. 


“미리별님?” 


그 사람은 날 보자마자 손을 덤쑥 잡고 연거푸 반갑다, 반가워요 라며 자신있게 웃었어. 그 대범함이 꺼림칙해서 난 손을 빼려고 했는데, 내가 빼기 전에 황급히 먼저 놓더라. 


“아 미안해요, 해외서 살다와서. 그쪽에선 처음 보는 사람도 막 안고 그러거든요.” 


“아, 네.” 


“미안해요. 많이 놀라셨구나.” 


연거푸 미안하다며 웃는 그 남자의 표정이 그래도 소박하고 측은해뵈서, 이 정도 사람이라면 위험하진 않겠다 생각했어. 몸도 깡말라서 비실비실해보이고, 목소리도 남자치곤 하이톤에, 인터넷에서 느껴지던 당당함이 현실에선 제법 희석된 이 사람이라면 뭐, 괜찮겠지—이렇게 조금 얕보는 마음이 생겼어. 내 버릇이야.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럼 추운데 어서 들어가요. 근처에 제가 자주 가는 단골 카페가 있어요. 가시죠.” 


단골 카페는 비좁고 후미졌어. 홍대도 아닌데 무슨 컨셉인지 몰라도 어둑어둑한 내부는 쌍팔년도 카바이드 불빛에 흠뻑 젖어있었고 메뉴도 단촐하기 그지없었음. 난 뜨거운 카페 라때를 시켰고 그 사람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굉장히 생색 내며 시켰어. 음료를 받고나서 우린 구석에 자리를 잡았고, 겨울에도 무조건 아이스로 먹는다고 강조하던 그는 빨대로 얼음을 짤랑이다가 이윽고 장갑을 벗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의 손을 본 순간 나는 얼었어. 


벗겨진 그 사람의 왼손은 손등을 내쪽으로 향한체 또아리를 틀고 있었는데, 뭉툭하고 마디가 튀어나온 손가락 끄트머리에 손톱이 길게 알록달록 노랑색, 연두색, 연회색으로 칠해져 있는거야. 심지어 중지에 큐빅까지 콕콕 정성스럽게 박혀있었음. 투명한 탑코트에 작은 리본까지 엉겨 붙은 그 네일을 난 몇 초 경악스런 표정으로 바라봤던 것 같아. 배경에는 알 수 없는 시끄러운 재즈풍 음악이 흐르고 있었어. 


“아, 손톱. 예쁘죠? 가끔 스트레스 받으면 받아요.” 


그는 양손을 쫙 펴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까딱였어. 정말 손만 따로 놀고 있더라. 칙칙함의 극치라고 밖에 표현못할 그 사람은 손만 유독 화려했고, 난 그것에 정신이 팔려 움직일 수가 없었어. 그걸 눈치채고 그 사람도 조금 심기가 불편해진 것 같아. 


“네, 예쁘네요 ..” 


“아무튼 사진 배우고 싶다면서요.” 


그는 손을 테이블 밑으로 감추고 나에게 물었어. 


“왜 배우고 싶은거에요?” 


그 사람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표면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힌체 녹아가고 있었어. 눈 앞에 사라진 네일의 환영을 누르며 난 억지로 입을 열었어. 


“친한 언니가 카메라를 빌려준다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요.” 


“아 그러시구나. 아직 어린데 이런거 관심도 갖고, 좋네요.” 


그는 매마른 얼굴에 약간의 조소를 띄우며 자기소개를 시작했어. 나이는 서른하나고, 나이에 비해 이쪽 일에 통달했다는 그런 늬앙스였음. 소수 사진사들 특유의 허세랄까 TMI라고 해야하나. 굳이 알고싶지 않은 본인 대서사를 여기저기 알리고 싶어하는 부류 같았어. 


난 사실 바로 사진 얘기를 했으면 했는데, 수강료도 안내고 공짜로 배우는 주제에 찬밥더운밥 가릴일 아니다 싶어서 가만히 들어줬음. 


“내가 쇼핑몰 짬밥이 좀 돼요. 솔직히 개인사업이라 돈이 많이 되진 않았지만, 참 좋아서 한 일이었거든요.” 


“어떤 쇼핑몰이었나요?” 


“뭐 그냥. 빈티지 여성 의류몰이었는데, 거의 1인 기업이었죠. 제가 사진도 납품도 배송도 거의 다 했으니까. 뭐, 여자친구가 짬짬이 도와주긴 했는데 역부족이었어요.”


여자친구. 여자친구란 말에 난 조금 안도했던 것 같아. 


그 당시 나의 큰 착각중에 하나였어. 애인이 있는 사람이니까, 이상하면 또 얼마나 이상하겠냐 싶은거야. 


“1인 기업, 멋있네요.” 


“꽤 오래했는데, 뭐 저도 먹고 살아야하니까 접었어요. 예전엔 모델도 고용하고 이것저것 복잡했는데, 때려치니까 후련하긴 하더라고요. 지금 사진은 오로지 취미라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찍죠.” 


언뜻 블로그에서 봤던 사진들이 떠올랐어. 


“사진 정말 잘 봤어요. 정말 분위기 대박이던데요.” 


“아 그래요? 고마워요. 진짜 별거 아닌데.. ” 


또, 또, 나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소심한 겸손 같은게 그 사람 수면에 떠올랐어. 이성적 호감은 아니야. 굳이 비교하자면, 나한테 해를 안끼치는 동물을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이랑 비슷해. 네일의 충격에서 벗어나서 난 처음으로 호의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 같아. 


“아니에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어요. 특히 그 헝겊 색깔별로 늘어뜨리고 가운데 누워있는 그 사진, 정말 멋졌어요. 그거랑 콘크리트 벽 사이에 모델이 쭈그리고 있던 것도요.” 


“하하 사진 정말 유심히 보셨구나.” 


“모델은 여자친구분인가봐요? 체형이 다 비슷하던데.” 


이번에는 조소 섞인 얼굴. 그 사람의 얼굴은 자주 조소와 소심 사이를 오갔어. 


“모델은 그때그때 바뀌어요. 꼭 여친이랑 찍으란 법이 있나요?” 






그 날, 난 그 사람하고 주말에 커뮤니티가 주최하는 촬영회에 같이 가자는 약속을 하고서 집에 돌아왔어. 한 두세시간 얘기했나? 


왠일로 외출하고 왔냐는 듯한 오빠의 표정, 안방에서 생선조림 했으니 데워 먹으라는 엄마의 말을 뒤로 한체, 밥도 마다하고 그 사람 블로그를 들어갔어. 하늘바람구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외의로 너무 즐거웠던 거야. 초반의 충격, 비호감을 넘어서니까 말도 잘 통하는 것 같고, 외모로만 누구를 판단 안 하는 내가 왠지 깨어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어. 학교에서 벗어난 인맥도 즐길줄 아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이건 정말 나라서 그랬는지도 몰라. 난 학교에서도 친구가 별로 없었고, 사실 휴학한 이유도 수술보다는 공동생활에 대한 환멸이 컸거든. 


그런 의미에서 난 그 남자가 부러웠던 것 같아. 


후줄근한 시멘트 덩어리같은 모습을 하고 예명이 하늘바람구름인 것도 그랬고, 눈치 안 보고 초면에 마이웨이 할 수 있는 것도 그랬고, 그렇게 예쁜 사진을 찍으면서 그걸 취미로만 남겨둘 수 있는 여유가 여유없는 스무살 입장에선 너무 부러운거야. 칙칙한 흑매미 잠바도, 어정쩡한 중단발도, 어느새 내 눈에는 없어보이지 않고 힙해보였어. 


나도 사진을 열심히 배워서 그런 경지에 이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 내 안의 타고난 나태함, 어른이 되는 과정에 대한 부담, 등등을 한결 덜어내고 좋아하는걸 하며 사는 그런 사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라며, 휴학하고 맞이한 나만의 시간을 사진으로 채워보리라 마음 먹었어. 나한테도 A언니처럼 좋아하는게 생겼구나, 우습지만 가슴이 뛰었어. 





그래서였나, 블로그 사진을 다시 봤을 때도 충격을 그닥 먹지 않았어. 어쩌면 네일을 봤을 때부터 스멀스멀 의심이 가던 부분이라. 


내가 가장 좋아했던 사진의, 형형색색의 헝겊 위에 무너지듯 누워있는 그 여자는, 손등으로 입 아래를 전부 가리고 있었어. 몸에 비해 뭉툭하고 마디가 튀어나온 손가락 끄트머리에 손톱이 길게 알록달록 노랑색, 연두색, 연회색, 중지에는 큐빅, 투명한 탑코트에 엉겨 붙은 작은 리본. 



그 남자가 최근에 찍은 사진의 모델은, 전부 여장한 그 남자였어.

  • tory_1 2018.07.19 08:56
    글 분위기 정말 마음에 든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도 궁금해. 꼭 완결까지 볼 수 있으면 좋겠어...!
  • tory_2 2018.07.19 12:55

    헐.......기괴하다........

    결말이 궁금하면서도 왠지 께름칙해서 상상하고 싶지 않은ㅜㅜ

  • tory_3 2018.07.19 19:06

    헐 다음편 궁금해.............

  • tory_4 2023.07.3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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