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GAME
Eugene Han × Hyejun Lee
한유진 × 이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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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o s s i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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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사무관은 언제 돌아온대?”
박수종 사무관이 홍삼스틱을 입에 물고는 탕비실로 들어왔다. 뻐근한 어깨를 펴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퇴근시간을 훌쩍 넘어 어두워진 창에 피곤이 가득한 직원들의 얼굴이 비춰졌다.
“글쎄요. 일단 일주일 휴가 낸 거 같던데요. 식만 올리고 바로 올 건가 봐요.”
옆에 있던 동료 사무관들은 커피를 홀짝이며 대꾸한다.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연말 대외채무평가 관련 기재부장관 대면 보고와 함께 국제 금융안정 컨퍼런스 준비까지 더해져 며칠째 야근이 일상이었다. 살인적인 업무강도에 사무관들의 얼굴엔 그동안의 피로와 함께 날선 예민함까지 서려 있었다.
“날짜를 아주 기가 막히게 잡았어. 다음 주가 평가보고회 디데인데. 어떻게 이렇게 쏙 빠지지.”
“신랑 어머님이 몸이 안 좋으시다 던데, 더 안 좋아지시기 전에 식 올려야 했겠죠.”
“그래도 자기 할 일은 딱 마무리 짓고 갔잖아요.”
꼬투리 잡힐 여지 따위 주지 않는 대쪽같은 성격을 보여주듯 맡은 바 일은 다 끝내고 간 그 꼿꼿한 이혜준은 마음대로 씹지도 못하게 일처리까지 깔끔하게 하고 사라졌다. 정말이지 정이 안가는 타입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박사무관은 투덜거렸다.
“자기 일만 끝내면 다야? 우린 팀인데. 누구는 놀러가고 나는 여기서 이렇게 약으로 버티고 있고.”
박사무관이 홍삼스틱을 측은하게 쳐다보며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으로 들어오는 홍삼 액기스가 유난히 쓰게 느껴진다.
“만약 이사무관 못 가게 했으면 미국에서 누가 날아올지는 알고 하는 소리죠?”
“어우-”
문득 떠오른 어떤 얼굴이 진절머리가 나는지 박사무관의 얼굴이 더욱 구겨진다.
“그 인간은 대한민국 입국 금지 시켜야하는 거 아닙니까? 정인은행부터 시작해서 환율 조작설까지 있던데 그 정도 분탕질이면 범죄자지.”
“그러게요 이제 좀 잠잠해지고 그 이름 안 듣게 되나 싶었는데 동료 청첩장에서 볼 줄이야...”
허부총리에 대한 비리와 살인혐의가 터지면서 한동안 무거운 공기가 흐르던 기재부의 분위기를 바꾼 건 또 그 툭 튀어나온 송곳, 이혜준이었다. 어느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이름이 나란히 박힌 하얀 청첩장이 국제금융과에 돌려진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기재부 전체에 공식화 되었다.
“나는 아직도 어이가 없어요. 안 그래요?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혜준이 어떻게 그 유진한이랑?”
“그러니까요. 분명이 그런 사이 아니라고 딱 잡아떼더니...”
“저도 청첩장 받고 현실감이 없어서 헛웃음 났는데, 허부총리 그 난리난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빅뉴스를... 웬만한 연예뉴스보다 쇼킹해요.”
그때의 청첩장을 내밀던 혜준을 떠올리자면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월요일 주간회의 시간이었다. 검토와 의견조율이 필요한 이슈들을 정리하고 회의를 마무리 하려던 때에 혜준은 막 생각난 듯 짤막한 '아,'를 내뱉었다. 그러면서 회의실에 둘러앉은 박수종 사무관을 비롯한 국금과 사람들에게 마치 명함 내밀듯 하나씩 흰 봉투를 안겨주었다. 그러고는 혜준은 빠르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곧이어 봉투내용을 확인한 사람들의 놀람과 웅성거림에 사무실 전체가 시끄러워 졌다.
“알게 모르게 그 전부터 썰이 돌긴 했다는데, 채국장님은 알고 계셨을까요? 그래도 혜준씨나 유진한이랑 제일 많이 부딪혔던 분일 텐데요.”
“저는 처음에 이사무관이랑 채국장님이 의심스러웠는데, 저번에 채국장님 BIS문건 유출때도 이사무관이...”
“거 아무나 갖다 붙이지마요. 그럼 뭐 이혜준을 사이에 두고 유진한이랑 채국장님이 삼각관계라도 된다는 거예요?
에이~ 그거야 말로 코미디지.”
“둘 사이에 있던 유구한 역사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 알겠어요. 그냥 남들 하듯이 엎치락 뒤치락 이것저것 다 했으니 결혼까지 하는 거
아니겠어요?"
당사자 없는 제3자끼리의 예의없는 대화가 난무했다. 워낙에나 상반된 사람들이 만나게 되니 소식을 듣는 각자마다 온갖 시나리오들이 써댔다. 유진한이 지난 한중일 재무장관회의때 맞은 총알이 그냥 총알이 아니라 큐피트의 총알이라서 그때 눈에 들어온 이혜준에게 감겨버린버린 거라더라. 아니면 이혜준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유진한이 그녀를 월가로 포섭하기 위한 고도의 설계라 더라 등등. 각각의 상상력이 더해져 더 해괴한 썰이 되기도 했지만 어느날 혜준을 데리러 기재부 앞으로 온 유진한의 행동과 눈빛에 괴상한 카더라들은 모두 들어가버렸다. 그건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남자였기 때문에.
“아무튼 결혼식을 한국에서 안 한다니 좀 아쉬워요. 유진한 결혼식이면 호텔 같은데서 삐까뻔쩍하게 할 거 같은데.”
“그니까요. 7성급호텔 뷔페 좀 구경하나 싶었는데,”
“한국에 있는 혜준씨 가족만 미국으로 초청해서 작게 할 거라 하더라고요. 신랑 쪽이 급했나봐요.”
“그럼 이제 이사무관은 일 그만 두는 건가? 그 대단한 유진한 사모님이 되셨는데...”
“누가요? 이혜준 사무관이요? 그럴 사람으로 보여요? 일하는 거 봐서는 기재부장관까지 할 기세던데.”
“그건 그러네. 괜한 기대를 했구만... 이만 일어나죠.”
박사무관은 입에 물고 있던 홍삼스틱 껍데기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식어버린 커피를 들고 사무관들이 하나 둘씩 탕비실을 나섰다.
“그래도 들러리 선물 같은 건 사오겠죠?”
푼수같은 여사무관의 잡담이 더해지면서 대화가 멀어졌다.
아무래도 유진한과 이혜준이 터트린 빅뉴스의 파장은 한동안 계속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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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글은 어렵군...작가님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