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락앤락 속에 무언가 부패하고 있다. 며칠 전부터, 냉장고 문을 여닫을 시점부터 예견한 일이지만, 이주 전에 무친 콩나물이 빠른 속도로 시들어 묘한 향을 풍기고 있다. 모 향신료나 고수풀이 떠오르기 무섭게 달뜨고 역해지는 냄새. 



o  o  o  o  o  o  o  o  o  o  o  o  o  o 



일주일 전, 잔반 처리반인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 남자는 손톱깍기와 손 세정제, 구취용 스프레이까지 챙기는 사람이었지만, 남은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곱게 정돈된 손톱으로 나물도 집어먹고 전도 집어먹었다. 


“다 먹어도 돼?” 


“응. 어차피 먹을 사람 없어.” 


답변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은 음식을 그는 입에 우겨 넣고서는 일어서는 것이다. 세정제를 바른 휴지에 손을 비벼 닦고 스프레이를 치익치익, 있지도 않은 넥타이를 움켜 쥐듯 목 카라를 조정하고 남자는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선 “오늘도 고마워. 대신 내가 쓰레기 내다줄게?” 이러는 것이다. 


“아, 오늘은 괜찮은데. 아직 자리 많아. 담에 버려줘.” 


“알았어. 나 간다?” 



                                                                                                                                          o  o  o  o  o  o  o  o  o  o  o  o  o  o 



그렇게 그는 떠났다. 이주 전 시점에서 자리가 많았던 검은 봉투는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이 비대해진 봉투 역시 묘한 냄새가 난다. 그 풍경이 생경하고 참을 수 없어져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못된거야?” 그녀가 받자마자 다짜고짜 물었다. 


“또 뭔소리야.” 


“헤어졌는데, 걔한테 못해준건 안 떠오르고 못 받을 것만 떠올라.” 썩어버린 잔반을 떠올리며 말했다. 


“미친 걔 돈도 빌려갔니?" 친구는 다급하다. "너 뭐했어?” 


“아니, 아니.”


잠시 쓰레기 봉투와 썩은 잔반에 대한 열변을 토해냈다. 그것을 친구는 묵묵히 듣다 나직하게 혀를 찼다. 


“너 나 말고는 이런거 들어줄 사람도 없지?”


“응. 아직 한달 안 지났다.”


우리 둘 사이엔 암묵적이지 못한 룰이 있다. 서로가 실연 당했을 때 한달까지는 유예 기간을 두고 서로의 개소리를 있는 한도까지 들어주는 것. 이제껏 이 룰을 주거니 받거니 아주 잘 지켜왔다.  


“이따 나올래?” 





                                                                                                                                      o  o  o  o  o  o  o  o  o  o  o  o  o  o 


                         

주중의 밤공기는 눅눅하다. 지하철 속의 서늘함이 밖의 습기와 대비해 피부를 한층 더 끈적이게 만들어주었다. 친구는 막 퇴근한 직후라 흐트러진 모습인데, 정갈하게 화장한 코 주변에 기름이 끼어있는걸 지적했더니 누구 좋으라고 수정화장하냔다. 


“화장이야 내 맘인데, 회사 안에서까지 굳이 수정하고 싶진 않아. 쿠션도 안 가지고 다녀.”


"미안, 니가 모를까봐. 그러면 아예 안하고 다니지 그래?”


“아 그냥 하고 살아." 귀찮은 손이 펄럭인다. "싫진 않아. 누가 지 보라고 하는줄 착각하는게 싫을 뿐이야.”


역 주변의 씨끌벅적함을 피해 작은 선술집에 흘러들어갔다. 술을 제외한 메뉴가 오로지 닭꼬치 뿐인 곳이다. 닭떡꼬치, 닭꼬치, 파닭꼬치, 쏘닭꼬치, 닭닭닭. 친구는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지만 나는 코를 틀어막았다. 본능적으로 몸이 음식을 거부한다. 


“이제 요리하기도 싫어. 먹어줄 사람이 없어.” 냉장고의 악취를 떠올리며 손가락 사이로 말한다. 


“헤어진 직후니까 그럴 수 있어,” 넙적그릇 속 과자를 집어 먹으며 친구가 대답한다. "그냥 시켜먹지?"


“1인분 파는데가 없어.” 


“즙이나 선식이라도 먹어. 어머니가 보내주시잖아?”


“나 그거 싫어해서 ___ 이 다 줬는데?”


순간 노래가 다음 곡으로 넘어가느라 조용했다 시끄러워진다. 


“그걸 누구 좋으라고 걔를 줘?” 친구는 악력으로 과자를 분쇄시켰다.  


“걔가 선식 좋아한다잖아. 몸에 좋은건 다 좋아했다니까? 영양제도 엄청 잘 챙겼어.” 


그 남자의 호주머니 속엔 손톱깎기, 미니 세정제, 구취 스프레이, 그리고 휴대용 약통도 있었다. 작고 동그란 약통에 그는 늘 3일분의 영양제를 챙겼다. 오메가3, 루테인, 종합비타민. 가끔의 밀크시슬. 


“거 좋아하든 말든.” 친구는 가벼운 역정을 냈다. “어머니 서운하시겠어.” 


“우리 집에 있음 나 먹지도 않을거. 그래서 그냥 준거지.”


“야 차라리 날 줘.” 


술이 나오자 잠시 침묵. 친구는 익숙한 손길로 병을 따고 술을 말았다. 나는 경건하게 술을 받고 첫잔은 원샷, 친구는 반샷. 단숨에 들이킨 술이 흡수 되어 약간의 취기가 오를 때까지 나는 머리 우측에 쿵쿵 울리는 아이돌 노래를 홀리는대로 듣고만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친구는 과자를 먹으며 지켜보았다. 


“걔도 참 철면피다. 선식까지 받아가고 며칠 후 헤여지자는게.” 내가 말할 기미가 없으니 운을 때는건 친구다.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줬는데 뭐. 걔도 나한테 해준건 많아.”


“많아? 말해봐. 토 안 달게.” 


대놓고 판을 깔아주니 할말이 없어졌다. 사귄 기간 삼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연인데 어째 뚜렷하게 떠오르는 무언가가 없는지. 말을 꺼내기 더더욱 힘들어진다. 


그 남자는 늘 예매를 본인이 했었다. 영화든 전시회든 기차표든. 예매를 좋은 자리로 마친 후에야 통보하는 것이었다. 내가 반절 지불을 하든 말든 크게 여의치 않아보였지만, 그렇다고 내겠다는 의사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송금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확인하고는 가끔 여기봐, 샘이 틀렸잖아, 라며 계산기 앱을 내미는 것이었다. 언제까지나 계산이 틀렸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지 돈을 더나 덜 받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내 의사를 묻지 않고 덥썩 예매를 한다는 점이 걸렸지만, 취준생인 나에게는 시간이 아주 많았다. 설령 내가 거절한다 해도 그는 그닥 동요하지 않았다. 동료나 다른 누군가와 보면 그만인 것이었다. 그게 약간 서운했다. 


“칭찬해보라 했는데 서운한 얘기를 하면 어떡해.”


“서운했거든. 나 보여주려고 예매한게 아니라 지가 보고 싶어서 한거구나, 누구랑 갔어도 상관 없었구나 싶어서.” 


“원래 걔가 좀 그랬지. EQ가 한참 모자라.” 


헤어지기 전 날에도 그는 그랬다. 본인이 반년 전부터 보고싶다 언급한 영화를 드디어 예매했다고 문자로 통보해왔다. 하지만 나는 공포 영화를 보고 싶었다. 상영기간 끝물이라 내일이면 내릴 것. 시간대도 얼마 없었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어필을 해보았다. 

“자기야, 영화 두 편 보면 안돼? 내가 보고 싶은 것도 곧 내리는데.”


“응? 두편은 왜?”


“새벽에 상영하는거 하나 있는데, 그 영화 보고 이것도 보자. 이거 내일이면 내린대.”


심지어 공포 영화 캐스트 중, 그가 호감을 보였던 여배우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르도 헤비한 고어보단 오컬트 쪽이라, 그가 오만상 찌푸리지 않고 시청할 수준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내 폰에 띄워진 포스터를 힐끗 보더니 남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에반데.” 

단박에 기분이 나빠졌다. “왜. 싫어?”


“너 시간 많잖아. 낮에 봐. 그리고 밤에 나랑 이거 보자.” 


마음도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내 마음은 무겁고 어리석어서 내팽겨쳐도 둔탁한 소리밖에 낼 줄 몰랐다. 결국 우리는 그날 밤 그가 반년 전부터 기대작이라고 했던 영화를 보았고, 끝나고 조용한 룸술집에서 맛없는 과일 화채를 먹고서 헤어졌다. 과일 화채는 쓸데없이 비쌌고, 그는 언제나 그렇듯 나의 송금을 거부하지 않았다. 


왜 이리 속상한지 몰랐다. 굳이 꼭 그 공포 영화를 봐야겠다 벼른 것은 아니었다. 하루에 영화를 두번 보는 것도 그닥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하물며 영화도, 팝콘도, 콜라도 그가 샀다. 그는 늘 행동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건 일종의 테스트다. 의도한건 아니지만 그렇게 의식의 흐름이 흘러가버렸다. 


“아 개새끼네." 친구가 뱉는다. "너 시간 많잖아 부터 시작해서 맛없는 화채에. 술집에서 화채 시키는 놈이 어딨어?”


그렇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는 극장에서 공포 영화를 단 한번도 보지 않았다. 바닷가에 놀러가 빌린 펜션에서조차, TV에서 틀어주는 공포영화를 그는 마다하고 냄비에 물을 올렸다. 너구리를 끓여먹겠단다. 너구리를 끓여먹기 위해 펜션까지 왔단다. 그럼 라면 먹으면서라도 같이 보자고 졸랐지만, 공포 영화는 입맛 떨어진다며그는 굽은 등을 돌리고 나체로 면을 후루룩 먹었다. 


“걔 공포영화 무서워했나?” 친구가 묻는다. 


“그냥 재미없대. 무서운건 아니랬어.” 


내가 홀로 꿋꿋히 공포 영화를 연달아 시청하는 동안, 그는 너구리를 네봉지나 끓여먹었다. 처음에는 소심하게 계란만 넣더니, 나중엔 대범하게 파, 양파, 먹다 남은 삽겹살 찌꺼기까지 동원해 끓여댔다. 소주도 두병이나 자작했다. 먹는 내내 그는 자기 옆으로 오라고, 같이 먹자고 나를 유혹했고 나는 넘어가지 않았다. 보는 내내 나는 내 옆으로 오라고, 같이 보자고 그를 유혹했고, 그는 넘어가다 못해 앞으로 고꾸라져 잠에 들었다. 주량이 한병 반인 사내였다. 장장 3시간을 걸친 우리의 기싸움은 그렇게, 허무하게 완료되었다. 


우리는 따로 잠을 잤고, 다음날 아침, 그는 마지막 남은 한봉지로 해장라면을 끓였다. 그게 무척 분했다. 


“너구리에 콩나물 넣는 새끼. 왜 콩나물을 사나 했어. 처음부터 이럴 속셈이었던거야 걔.” 


"콩나물? 그건 좀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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