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 끝났다. 위장 밖으로 나오는 노오란 액체를 확인한 후 나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선릉역에 내렸다.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오 분 후면 지하철이 도착할 예정이었다. 편한 도시다.
내가 살던 시골은 버스가 한 시간 사십오 분 간격으로 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학교를 마치면 바로 버스가 앞에 있었지만, 수업이 일찍 끝나는 토요일만은 달랐다. 버스는 수업이 끝난 후 삼십 분 정도를 더 기다려야 슈퍼 근처 정류장에 도착했고, 다른 버스를 타고 가버리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는 혼자 정류장에 앉아 늦게 오는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토요일, D 남자 고등학교 앞 정류장에는 나와 같은 신세인 학생들이 몇몇 더 있었고, 다들 지나가다 마주친 얼굴정도는 알아도 이름까지는 모르는 사이였기에 정류장엔 항상 조용하고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나는 먼저 가버린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을 삼키며 음악을 듣고,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그 서먹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날, 내 토요일이 변했다.
"음악 뭐 듣니?"
누가 물었다. 고갤 들어 올려다본 사람은 같은 교복을 입은 남자애였다. 하복 가슴팍에 붙은 노란 명찰은 그와 내가 동갑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 애의 이름은 A였고, 나는 그 애의 머리 위에 있는 햇빛 때문에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라고?"
"무슨 노랠 듣냐고."
A는 내 옆에 앉으면서 다시 물었다. 그때 나는 군대에 있는 형이 두고간 마이마이로 레드 제플린의 곡을 듣고 있었다.
"레드 제플린."
내가 말하자, 그 애는 레드 제플린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는지 눈썹을 얕게 찌푸리며 고개를 모로 틀었다.
"한번 들어보자."
A가 옆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순순히 이어폰 한쪽을 건넸다. 8 분짜리 긴 연주는 이미 절반 정도 재생이 된 이후였고, A는 삼십 초 정도 음악을 들은 후에 이어폰을 빼냈다. 그 애는 귀에 닿지 않는 짧게 자른 머리를 하고 있었다.
"너 기타 칠 줄 알아?"
"아니."
"내가 가르쳐 줄까?" A는 조금 우쭐대면서 말했다.
"아니. 예전에 배웠었는데 못 하겠더라."
"그래? 엄청 쉬운데?"
"...... 나한텐 어려워."
A는 여름 동안 주로 강가에서 시간을 보냈는지 피부가 까맣게 타 있었다. 하얀색 교복과 비교되어 그 애의 피부는 더 까맣게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그 애의 새카만 머리와 새카만 눈동자, 짙은 눈썹이었다. “버스 왔다.” 그 애가 큰 손으로 내 어깨를 툭치고 먼저 일어났다.
친구가 되는 계기는 대부분 사소했다. 그저 개학 첫날에 옆자리에 앉아있었다거나, 체육복을 빌려주는 그런 사소한 경험들이 나에게는 친구를 만들어 주었고, 아주 짧게 음악을 공유한 경험과 그보다 더 짧은 대화 이후에, 그 애와 나는 당연히 친해졌다. 하지만 A의 반은 이 층에 있었기에 운동장이나 급식실에서 마주칠 때를 제외하면 학교 안에서 A를 보는 일은 거의 없었고, 우리는 주로 토요일 학교가 끝난 후 버스 정류장에서 함께 음악을 듣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거나, 슈퍼에서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가끔은 기다림에 질려, 걸어서 두 시간이 걸리는 길을 함께 걷고는 했다.
“나 혼자 가면 집까지 한 시간 밖에 안 걸린다?” 언젠가 뚝방을 따라 걷던 그 애가 말했다. 그때 우리는 이학년이었고, 그 애가 여태까지 내게 보폭을 맞춰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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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상에서 유명한 그애 시리즈랑 성석1제 첫사랑 느낌으로 써봄...
친구가 되는 계기는 대부분 사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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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계기도 궁금한데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