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괴롭다. 사라는 이불을 돌돌 말아 발 아래에 끼웠다가 머리를 베개위에 얹었다가 이불 안에 팔을 넣었다가 뺐다가를 반복하며 이 밤을 보내는 중이었다. 젊은 나이에 벌써 불면증인건가. 내일 있을 기체 점검 심사가 신경을 거스르는건가 알 수가 없다. 커피를 너무 마셨나,그것도 아니면 자기전에 홀짝거린 와인이 별로였던걸까. 새벽 세시를 알려주는 엘이디 시계등이 점멸을 반복하는 사이 사라는 고민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냥 일어날까, 아니면 이대로 잠들도록 노력해볼까.
"해도 안되는 건 포기해야지."
사라는 결국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독종 강사라가 어디로 가고 포기라는 단어가 이만큼 익숙해져있는 자신을 말이다.
사라는 로브를 걸치고 나와 냉장고를 열었다. 잘 정돈된 반찬통에선 사라가 포기한 그의 흔적이 있다. 눈길을 돌리고 생수병만 꺼냈다. 식탁의에 보라색 튜토니아가 보였다. 그가 사다놓은 꽃이다.
'곤두선 신경을 누그러뜨린대요' 라고 일러주던 그 사람. 사라에게 옷을 가져다주고 신발장에서 닦은 구두를 내어주던 그 사람. 그가 닦은 창문은 달빛을 머금은 은색 거울처럼 사라를 보여준다.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거실 한복판에 서서 생수병의 뚜껑을 앞니로 물어뜯고 있는 한 여자. 바로 그를 포기한 여자다.
사라는 한번 더 시간을 확인했다. 세시 이십분. 아직 새벽이 오지 않았다. 사라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곧 생수병을 식탁에 올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방으로 들어와 핸드폰을 들었다. 번호를 확인할 것도 없이 사라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몇번의 신호음이 고여있던 공기를 깨웠다. 잠시뒤 그가 잠이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은호였다.
"여보세요?"
"자요?"
"..... 그런거 같은데.... 당신은 왜 안자요?"
은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사라는 더 수화기를 더 바싹 귀에 댔다.
"궁금한게 있어서."
"뭔데요? 아니,지금 몇시지?"
"대답해줘요. 궁금해서 미치겠으니까."
"그래서 안자고 있는거에요?뭔데?말해봐요."
"그 분과 나. 둘 중에 누가 더 당신을 사랑하지?"
잠시 침묵이 흐르다 은호가 푸훗 웃음을 지었다.
"경쟁하기 힘들텐데."
"갑자기 억울하잖아요. 난 당신 포기하는데 이렇게 힘든데 그 분은 그런 고민이나 해봤나 싶고. 강사라 인생에서 이렇게 빨리 알아서 포기한 경우도 처음인거같고."
"포기했어요, 나?"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은호의 긴 한숨소리가 사라의 귀를 간지럽혔다.
" 역시 당신은 착한 사람이에요. "
"언제는 나쁘다면서."
"거짓말했어요. 그때. 당신보다는 내가 조금 더 나쁜 사람이지."
"말 돌리지 말고. 얼른."
시계의 초침은 의미없이 숫자들을 스쳐지나가고 대답을 기다리며 사라는 침대에 몸을 뉘였다.
"당신은 포기하는 게 없을 줄알았는데."
"그랬었죠. "
" 그런데 왜 이번엔 그렇게 빨라요?"
"그거야..."
"그거야?"
"내가 당신보다는 조금 더 사랑하니까. .... 자존심 상하지만."
"... 좋네요."
은호가 천천히 대답했다. 여전히 말끝에는 웃음기가 서려있는 듯 했다. 기분좋아. 사라는 중얼거렸다. 그래. 이 남자. 산림욕 같은 이 남자가 그분께서도 필요한거겠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네. 당신보다는 조금 더 내가 이해심이 많은 걸로 하자. 사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벽지무늬가 희미해졌다. 사라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잠이 들고 있었다.
"저기요. 저기요오"
남의 잠은 깨워놓고 자기는 잠들어버리는 지독히 이기적인 아 여자가 은호는 왜 싫어지지 않는걸까? 은호는 어느새 쌕쌕 숨소리까지 내며 잠들어버린 사라를 몇번 더 부르다가 핸드폰 통화버튼을 눌러 껐다. 앞으로 고민할 날들의 대부분은 이 질문이 차지할거였다. 어쩌면 당신보다도 내가 조금 더 절실한지도 모르지. 막연했던 꿈을 구체화시킨 당신이 필요하단 말이야. 은호는 그렇게 기도했다.
"해도 안되는 건 포기해야지."
사라는 결국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독종 강사라가 어디로 가고 포기라는 단어가 이만큼 익숙해져있는 자신을 말이다.
사라는 로브를 걸치고 나와 냉장고를 열었다. 잘 정돈된 반찬통에선 사라가 포기한 그의 흔적이 있다. 눈길을 돌리고 생수병만 꺼냈다. 식탁의에 보라색 튜토니아가 보였다. 그가 사다놓은 꽃이다.
'곤두선 신경을 누그러뜨린대요' 라고 일러주던 그 사람. 사라에게 옷을 가져다주고 신발장에서 닦은 구두를 내어주던 그 사람. 그가 닦은 창문은 달빛을 머금은 은색 거울처럼 사라를 보여준다.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거실 한복판에 서서 생수병의 뚜껑을 앞니로 물어뜯고 있는 한 여자. 바로 그를 포기한 여자다.
사라는 한번 더 시간을 확인했다. 세시 이십분. 아직 새벽이 오지 않았다. 사라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곧 생수병을 식탁에 올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방으로 들어와 핸드폰을 들었다. 번호를 확인할 것도 없이 사라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몇번의 신호음이 고여있던 공기를 깨웠다. 잠시뒤 그가 잠이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은호였다.
"여보세요?"
"자요?"
"..... 그런거 같은데.... 당신은 왜 안자요?"
은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사라는 더 수화기를 더 바싹 귀에 댔다.
"궁금한게 있어서."
"뭔데요? 아니,지금 몇시지?"
"대답해줘요. 궁금해서 미치겠으니까."
"그래서 안자고 있는거에요?뭔데?말해봐요."
"그 분과 나. 둘 중에 누가 더 당신을 사랑하지?"
잠시 침묵이 흐르다 은호가 푸훗 웃음을 지었다.
"경쟁하기 힘들텐데."
"갑자기 억울하잖아요. 난 당신 포기하는데 이렇게 힘든데 그 분은 그런 고민이나 해봤나 싶고. 강사라 인생에서 이렇게 빨리 알아서 포기한 경우도 처음인거같고."
"포기했어요, 나?"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은호의 긴 한숨소리가 사라의 귀를 간지럽혔다.
" 역시 당신은 착한 사람이에요. "
"언제는 나쁘다면서."
"거짓말했어요. 그때. 당신보다는 내가 조금 더 나쁜 사람이지."
"말 돌리지 말고. 얼른."
시계의 초침은 의미없이 숫자들을 스쳐지나가고 대답을 기다리며 사라는 침대에 몸을 뉘였다.
"당신은 포기하는 게 없을 줄알았는데."
"그랬었죠. "
" 그런데 왜 이번엔 그렇게 빨라요?"
"그거야..."
"그거야?"
"내가 당신보다는 조금 더 사랑하니까. .... 자존심 상하지만."
"... 좋네요."
은호가 천천히 대답했다. 여전히 말끝에는 웃음기가 서려있는 듯 했다. 기분좋아. 사라는 중얼거렸다. 그래. 이 남자. 산림욕 같은 이 남자가 그분께서도 필요한거겠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네. 당신보다는 조금 더 내가 이해심이 많은 걸로 하자. 사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벽지무늬가 희미해졌다. 사라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잠이 들고 있었다.
"저기요. 저기요오"
남의 잠은 깨워놓고 자기는 잠들어버리는 지독히 이기적인 아 여자가 은호는 왜 싫어지지 않는걸까? 은호는 어느새 쌕쌕 숨소리까지 내며 잠들어버린 사라를 몇번 더 부르다가 핸드폰 통화버튼을 눌러 껐다. 앞으로 고민할 날들의 대부분은 이 질문이 차지할거였다. 어쩌면 당신보다도 내가 조금 더 절실한지도 모르지. 막연했던 꿈을 구체화시킨 당신이 필요하단 말이야. 은호는 그렇게 기도했다.
고마워 톨아 글 너무 잘 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