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집 안을 들어서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머릿속이 가벼웠고 마음도 편했으니까. 무엇보다 네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한 너를 아늑하게 내려다보며, 거실의 얇은 속커튼이 높게 휘날리고 있었다. 나는 그걸 멀리서 보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내가 먼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았다. 너무도 행복한 공기를 부르는, 넓게 열린 창을 반쯤 닫아두니 커튼의 펄럭임이 차분해졌다.
소파 앞 테이블에 너는 팔을 베개 삼아 엎드려 누워 있었다. 야무지게 덮은 담요의 한쪽 어깨가 흘러내린 것을 고쳐 덮어주었다. 그걸로는 아쉬워서 잘게 내린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넘겨주었다.
거실에는 작게 클래식이 흐르고 있었다. 바깥의 소리에 익숙했던 귀가 드디어 실내의 작은 소리를 예민하게 잡아냈다. 잠이 깰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틀어놓고 있는 거겠지. 소리의 진원지는 블루투스 스피커였고, 이게 뭐더라 생각에 빠지기도 전에 뒤에서 부스럭대며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너였다.
"뭐야, 언제 왔어?"
온 줄도 몰랐네... 낮게 덧붙이는 가라앉은 목소리를 바라보다가 얼른 주방에서 물을 떠왔다. 당연한 듯 받아들며 시원하게 한 잔 들이킨 너는 다리가 저린지 애를 쓰며 고쳐 앉고 내게 다시 물었다.
"진짜 온 거 몰랐어... 얼마 안 된 거야?"
"응. 아무래도 너 피곤했나 보다."
내가 이런 거 저런 거 해도 안 깨던데? 말하니 짐짓 사나운 눈매를 가장하며 "저질!"이라는 뻔히 보이는 농담을 하며 상체를 뒤로 물린다. 난 자는 사람 안 건드려, 말하니 쉽게 윳어버리며 나도 알지, 말하는 너는 길게 손을 뻗어 내 앞머리를 정리해줬다.
"급하게 왔어? 스타일링인가. 묘하게 앞에만 오대오네."
나는 살짝 눈을 감으며 내가 너무 뛰어왔나... 아닌데, 분명 차분히 걸어왔는데... 아니 걷다가 좀 빨라진 것 같기도...?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입을 열어 생각의 끈을 이었다.
"아까부터 나오는 음악..."
"어, 이거 되게 괜찮지?"
"음원이야?"
"내가 모은 음원은 아니고,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클래식도 플레이리스트가 있구나."
"응. 많지 않지만. 좋은 것도 꽤 많더라고."
나에게 화면을 열어 들이미는 걸 보니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사랑.
"사랑을 주제로 만들었대, 이 플레이리스트."
"맞아. 달콤하지?"
너는 환하게 웃다가 새삼 얼굴을 붉혔다.
"뭐야...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쑥스럽게."
나는 속으로 놀라서, 헛기침을 했다. 내가? 난 그냥 보고 있었는데. 아니 눈빛이 좀 이글이글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이젠 익숙해지지 그래? 나야 늘 주인을 열정적으로 바라보는데 뭐."
그래도 입으로는 철판 깔고 늘 하던 대로 능숙한 척 말한다. 사실 난 너무 어설픈 애처럼 되어버릴까봐 조마조마하거든. 아흔아홉번 능숙하다가도 한 번은 얼굴이 잔뜩 빨개지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
근데, 너한테는 든든한 존재이고 싶어서 그래. 늘 한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 적어도 나만큼은.
물끄러미 보는 나를 어쩔 수 없다는 듯 바라보던 너는...
내 얼굴에 천천히 다가오다가,
지나쳐가며 몸을 일으켰다.
"환기도 할 만큼 했다. 창문 닫아야지."
아직 3월이라 저녁에는 쌀쌀해. 그러는 너에게 나는 3월이 그렇지. 하며 맞장구를 칠 뿐이었다.
"주인, 이따 영화에 치맥 콜?"
"콜!"
창문을 닫은 너는 시원하게 승낙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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