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게임/유진x혜준] 임명식 (上)
“... 대통령이 이혜준 장관 임명이라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습니다. 당정청의 건의를 받고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라지만 후폭풍이 거셉니다. 당장 야권이 극렬하게 반발하면서 정국이 극한대치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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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장고 끝에 결국 이혜준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주 안으로 임명식을 강행할 것이며, 그에 따른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것으로 보입니다. 더 자세한 뉴스는 -”
순식간에 거실을 메우던 TV 속 여자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이제는 지겹다고 느껴질 만큼 근 한 달 동안 뉴스 메인을 장식하던 이야기였고, 오늘에서야 드디어 질질 끌던 그 지겹고도 지겨운 이야기의 끝이 났다. 이혜준 장관 임명으로. 물론 이 끝은 또 하나의 시작이겠지만.
“이혜준 장관, 장관 이혜준.”
TV 속 여자의 목소리 대신 거실에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왔고 그 목소리엔 웃음기가 얼핏 서려 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이내 안방 문이 다 닫지 않은 채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작고 여린 느낌의 그 여자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강하고 멋진 여자였다. 그리고 이제 곧 장관이 될,
“이혜준씨.”
“왜 그렇게 불러요, 또.”
“최연소 장관님이 되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장난치지 말아요.”
전화를 끝내고 거실로 나온 혜준을 바라보며 남자는 소파에 기댔던 몸을 일으켜 곧바로 혜준을 맞이했다. 그런 그가 웃으며 그녀에게 걸어온 말에 혜준은 다소 민망한 얼굴로 대꾸할 뿐이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도 그간 피곤에 지쳐있던 모습은 사라지고 안심의 미소가 그려져 있는 듯했다.
“축하해. 이혜준. 당신이 해낼 줄 알았어.”
“내가 뭘.. 운이 좋았지.”
“운이라니. 당신의 노력이고 능력이지. 겸손할 필요 없어.”
“겸손은 당신이 좀 가져봐. 이제 당신,”
“나 뭐어?”
넓은 자신의 품에 자연스레 기대어 오는 이혜준은 언제나 자신을 설레게 한다. 벌써 결혼을 한 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이렇듯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이혜준이라니. 잠시 감격스러움과 설렘을 느끼며 장난스레 혜준의 말꼬리를 잡아 본다. 그런 그가 얄밉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물고는 자신을 흘겨보는데, 그 모습이 또 귀여운 거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었어도 귀여운 건 귀여운 것. 그래서 그 귀여움을 더 느껴보고자, 이윽고 한 마디를 던져본다.
“이제 장관 남편이 되었으니 위엄있게 행동하라고?”
“..무슨 위엄까지야..”
“흐음.. 그럼 우리 장관님 말씀대로 위엄있게 보이려면.. 역시 쇼핑을 해야겠지?”
“뭐? 왜 말이 그리로 튀어? 무슨 쇼핑?”
“임명식 말이야. 그때 나도 같이 갈 건데, 그냥 있을 수 없지.”
당연히 당신도 한 벌 빼입고 말이야. ‘빼입는다’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그가 새삼스러워 품에 안긴 채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본인의 나이와는 무관하게 소년 같은 맑은 얼굴을 하고선 꽤나 신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커플룩으로 입고 싶은데.. 너무 커플룩이면 오히려 별로잖아.. 아, 어떻게 포인트를 주지?”
“...”
“임명식이 정확히 언제래? 이번 주 안으로 한다 했으니 당장 내일부터 준비해야겠다.”
“...저..유진씨..”
“어? 응? 왜?”
“..그게..”
“혹시나 이번에도 싫다고 하면 나 정말 삐칠거야. 이번엔 정말 내가 골라 준 대로 입어주라. 응?”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혜준 자신도 당연히 알고 있다. 사실 스타일이라고 명명하기에 자신조차 어리둥절할 정도로 패션에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무난하고 단정하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나이를 먹을수록 자리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남에 따라, 조금 더 격식을 차리는 복장이 플러스 되었을 뿐. 그러나 자신의 남자친구였으며 나아가 남편이 된 유진은 자신과 정반대인 사람이었다. 화려하거나 부담스러운 스타일이라는 건 아니었지만 나름 패션에 신경을 쓰는 편이었고 자신과의 결혼 이후 결혼반지 외엔 하지 않는 그의 손이지만 사귈 당시만 해도 그의 손에는 여러 반지가 있었을 정도로 그만의 스타일이 확고하게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에게 패션에 대해 강요를 하거나 뭐라 말한 적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직급이 올라가거나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를 하거나 하는 등의 특별한 날일 때면, 꽤나 값비싼 옷을 선물 해주고 싶어 하거나, 자신은 평소에 입지 않을 색이 들어간 옷을 권유하거나 하는 일이 종종 있었을 뿐. 하지만 그때마다 혜준은 사양하기 바빴다. 그러면 아쉬운 표정으로- 때론 서운한 표정으로- 혜준을 바라봐, 혜준 또한 마음이 쓰였지만 그래도 자신에게는 그게 맞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내심 유진은 늘 알게 모르게 벼르고 있었을 터. 별다른 대꾸 없는 자신을 이번에는 상황이 상황인 만큼 본인의 말을 들어 주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품 안의 자신을 더욱 꼭 껴안으며 싱글벙글한 유진이였다.
“...그게 아니라..”
“..왜? 무슨 일 있어?”
저렇게 신난 얼굴을 하고 있는 자신의 남편을 보며 혜준은 답지 않게 입을 쉽게 떼지 못했다.
장관 임명식에는 임명장을 수여 받는 당사자 말고도 그의 가족이 함께 참석하는 전통이 생긴건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처음 시작한 십여년 전의 그 임명식은 파격적이었던 만큼 반응이 좋아 정부가 바뀌었음에도 계속 이어져 나아가고 있는, 생각보다 보는 이가 많은 이벤트였다. 그런 자리에 더군다나 근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이 시끄러웠다고 할 만큼 초미의 관심사인 제가, 그리고 그 관심을 끌어낸 저의 남편인 유진이 참석한다는 건.. 정말이지 아찔하다.
“아니 무슨 일은 아니고..”
“왜 그렇게 뜸을 들여..? 빨리 말해봐. 니가 그러니까 걱정 되잖아..”
“...임명식때 말이야..”
“응, 왜..?”
“...나 고모네랑 간다고 말했어..”
말과 동시에 혜준은 느꼈다. 아찔한 상황은 지금 이 순간이라고.
싱글벙글하던 그가, 소년같이 해 맑게 웃으며 신나 했던 그가, 정말 오랜만에 굳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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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나온 뉴스는 정말 뉴스에 나온 내용을 차용한 부분이 있음을 밝혀 둡니다.
무..문제가 생길까ㅠㅠㅠ 혹시나 문제가 생긴다면 말해줘ㅠㅠㅠ
그나저나 제목 짓기는 너무 어려워ㅠ 재미 없는 글 보다 제목이 더 신경 쓰여...ㅠ
읽어준 토리들이 있다면..정말 고마워! 어서어서 유진이랑 혜준이는 결혼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