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어요?
유진한, 그 남자는 그답지 않게 웃었다. 아니, ‘그답지 않게’? 그건 아니다. 그는 혜준의 앞에서만큼은 언제나 처음 봤던 모습 같지 않았다. 언제나 그는 이상하리만치 낯설었다. 환율 조작을 요구하고서는 와인 잔을 들어 올리며 붉은색이 어울릴 것 같다고 농담을 지껄이던 처음부터, 5천만 달러를 손해를 본 즉시 혜준에게 쫓아와 멱살을 잡아 올리던 두 번째. 채이헌 국장의 일을 핑계로 불러내서는 사과하겠다느니, 엄마가 갈치조림을 먹고 싶어 했다느니, 그걸 같이 먹자느니, 별 말도 안 되는 헛소리만 해대던 세 번째, 고모부의 일을 항의하러 갔다가 얼결에 내부공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야 만 네 번째.
그리고 혜준을 대신해서 총에 맞고야 만 다섯 번째.
그 모든 만남에 있어서 공통적인 인상은 그저 하나였다.
종잡을 수가 없는 또라이. 미친 놈.
그게 유진한에 대한 혜준의 평가였다.
-다친 데는 없어요?
봐. 또 이상한 소리만 해대고 있었다. 총을 맞은 건 본인이면서 누가 누구의 안부를 묻는 건가?
-묻잖아요.
혜준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왜 그랬냐고요.
그때, 유진한의 손이 뻗어와 혜준의 팔소매를 잡았다. 유달리 크고 굵은 손. 혜준은 순간 놀랐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혜준의 떨리는 눈빛은 유진한의 행동을 그대로 쫓았다. 팔을 가볍게, 아무런 사심 없이 잡고서 훑어본다. 상처가 나진 않았나 살펴보는 눈치에 혜준은 자기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안 다쳤어요.
피식, 그는 또 웃었다.
-그걸로 충분하네요.
그가 혜준의 팔을 가볍게 놓았다. 정말 그걸로 되었다는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내가 왜 그랬냐면.
-…….
-이혜준 씨가 다칠까봐 그랬어요.
헛소리 그만 하시고요. 예전이라면 그렇게 대답했을 텐데…….
혜준은 차마 그렇게 대답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당신이 다치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요.
그는 살짝 이마를 찡그리다가, 다시 혜준을 향해 웃어보였다.
예전의 혜준이라면 비웃었을 것이다. 괜한 짓을 했다며 나무라고 그대로 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미안했다.
환자복 사이로 내비치는 붕대의 색깔이 피부색과 대비되어 유달리 하얬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득할 정도로 붉은 그의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혜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혜준 씨.
낮은 부름에 다시 그를 보면, 혜준을 친근하게 부르는 저 남자는 뜻밖에도 웃고 있지 않았다.
-힘들죠.
그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했다.
혜준을 향한 국정원의 의심도, 기재부 동료들의 힐난 어린 쑥덕거림도, 상사의 우려 섞인 질타도, 채 국장의 비난조차.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는 혜준의 죄책감까지, 모두.
마치 이해한다는 것처럼 혜준을 보고 있었다.
-버겁겠죠, 당신 성격에.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알아요?
이제는 차라리 그의 일방적인 공감의 이유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적어도 당신이 나에 대해 아는 것보다는 많이 알겠죠, 내가 이혜준 씨를.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 사무관이랑 같이 식사하고 싶어요, 라고 말하던 그때처럼.
그래서 혜준은 혼란스러웠다.
이상하지 않나.
이 모든 게 전부 유진한의 진심으로만 들린다는 게.
그동안의 미친 짓이, 종잡을 수 없었던 행동들이, 혜준을 보호하고 그 결과로 입은 총상에도 불구하고 한점 후회하지 않는다는 표정이, 혜준을 이해하고 싶어 하고 또 이해한다고 말하는 저 눈빛이…
정말 혜준을 향한 마음이라는 것이.
이제는 믿어진다는 것.
그래서는 안 되는데도.
-미안합니다. 지사장님.
그의 시선이 의아함을 띠고 혜준의 얼굴 위에 멎었다.
-저 때문에 큰 피해 입으신 것,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보상하겠습니다.
그렇기에 혜준은 더욱 진심으로 말했다.
더 이상 유진한과 감정적으로 불편하게 엮이고 싶지 않았다. 속 편하게 줄 거 주고, 받을 것 받고 그와 이만 갈라서고 싶었다. 자꾸만 혜준의 눈앞에 서려는 그와 자신의 사이에 금을 긋고서 말하고 싶었다. 너의 자리는 저쪽이고, 너는 우리 편이 아니라고.
-보상?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혜준은 침착하게 그의 시선을 맞받았다. 그가 혜준을 지그시 보다가 기가 막힌 듯 웃음을 터뜨렸다.
-보상, 보상이라.......
-입원치료비와 그 외 필요한 무엇이든...
-미안한데.
그가 단칼에 말을 끊었다.
-난 이혜준 씨한테 받을 게 없어요. 당신이 줄 수 있는 건, 이미 내가 다 가졌거든.
그의 눈매가 서늘했다. 환자복을 입고 있음에도 다친 사람 같지 않은 위압감이 흘렀다. 그럼에도 어딘가, 흔들리는 눈빛.
혜준은 그가 상처받았음을 알았다.
-그럼 이렇게 하죠. 그 보상이라는 거.
유진한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혜준은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몸이 굳어버리고야 말았다.
-나한테로 와요.
-...뭐라고요?
-나한테 오라고, 이혜준.
정적이 흘렀다. 이제야 혜준은 그가 혜준에게 내보인 여러 가지 표정 중 가장 위험하고 가장 사나우며, 가장 그의 본질과 맞닿아있는 얼굴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 얼굴이 지금 혜준의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이젠 그 엿 같은 것들이 당신 괴롭히는 거, 내가 못 참아주겠으니까.
붉디 붉은, 탐욕이었다.
끝내 한글을 켜게 만들고야만 유진혜준...
여러분 유진혜준 하세요 삶이 즐거워집니다
캬 선생님 너무 좋은데요???? 너무 맛집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