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1월 1일이 되었습니다. 사람들과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호랑이가 그려진 새해 인사 메시지도 받았어요. 새해 기념으로 호랑이 인형을 파는 것도 보았습니다. 덕분에 올해가 호랑이의 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몇 시간 전에 저는 친구와 집 근처 카페에 앉아 있었습니다. 주문한 커피와 케이크가 나오자 친구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다는 거예요. 그러니 한 번 이렇게 바꿔서 말해보겠습니다. 작년 마지막 날에 저는 친구와 집 근처 카페에 앉아 있었습니다. 훨씬 그럴듯하게 들리네요. 흥미를 끄는 도입부 같습니다.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에 지나간 몇 시간에는 뭔가 특별한 힘이라도 있는 걸까요. 저는 새해부터 쓸 일기장을 골라 보았습니다. 제가 매 년 반복하는 새해 의식입니다. 한 두달쯤 쓰다가 그만두는 것까지 의식에 포함된다면요. 이제 며칠 전 책상 위에 올려 둔 새해 달력도 쓸모가 생겼습니다. 해가 지난 달력이나 해가 오지 않은 달력은 의미 없는 숫자의 나열에 불과하니까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가 작년과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요. 봄이 오면 겨울에 입었던 두꺼운 외투를 세탁소에 맡기고 찾아 올 것입니다. 거리에 핀 꽃을 보고 잠깐 멈춰 설 수는 있겠지만 작년에 본 꽃과 비슷한 모습이겠지요. 여름에는 좋아하는 반팔 원피스를 꺼내 입고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겠습니다. 누군가 올 추석에는 집에 가냐고 물어오면 가을이겠군요.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면 아마 조금 더 천천히 걷고, 조금 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게 될 것 같습니다. 겨울이면 전기장판을 꺼내고 사람들과 동네마다 다른 붕어빵 시세를 비교 해 보겠네요. 그러면 다시 새해입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해를 나눠 놓았습니다. 1월 1일에는 1이 두 개나 있어요.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은 새해가 밝으면 모든 걸 1단계부터 새로 시작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드는가봅니다.

올해 저는 삼년 차가 됩니다. 첫 해에는 걱정뿐이었습니다. 한 해는 커녕 한 달도 못 버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두번째 해에는 희망찬 다짐을 했습니다. 한 해를 버텨내고 나니, 출처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넘쳐났습니다. 어떤 선을 넘은 기분이었어요.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고 월급날마다 월급의 일부를 적금 통장에 넣는 일을 일 년 동안 반복했으니까요. 어른의 세계에 완전히 편입된 것 같았습니다. 어른의 일을 잘 해내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어른의 일이란,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고 월급날마다 월급의 일부를 적금 통장에 넣는 일이지요.

그리고 세 번째 해입니다. 매년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보자 결심했던 일이 무색하게도, 저는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작년에 이뤄 낸 일이 무엇인가 곰곰 떠올려 보았지만 별다른 건 없습니다. 신춘문예에 글을 한 편 낸 것이 그나마 이뤄 낸 일에 제일 가깝기는 하지만, 당선되지는 못했습니다. 딱 한 명, 1등만 당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광스런 1등을 차지한 당선자는 매년 1월 1일에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관례라고 합니다. 12월 31일이나 1월 2일이 아니라 1월 1일에 발표하는 건 1월 1일이 그만한 의미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겠지요. 12월 31일보다 몇 시간 늦고, 1월 2일보다 몇 시간 빠를뿐이라고 해도요.

저는 올해도 이루지 못할 계획을 세우고, 다 쓰지 못 할 일기장을 살 것입니다. 한동안은 호랑이 그림이 가득한 가게들 사이를 지나다니겠지요. 태초에 새해와 이전 해를 나누고 아무 날도 아닌 날을 1월 1일이라고 명명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게 누구이길래 우리는 새해가 되면 행복한 한 해를 보내라고 인사를 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걸까요. 어떤 사람은 일에서 의미를 찾지 말라고 하더군요. 일은 일일뿐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건 일의 의미였습니다. 12월 32일이 아니라 1월 1일이어야 다시 시작 할 수 있으니까요. 의미 없는 날에 굳이 의미를 만들어서, 사람들은 매년 새해를 기념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다시 시작하게 만들어진 존재라고 믿습니다. 조금 먼 곳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고 상상 해 보세요. 갑자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다같이 인사를 나누고 소원을 빌고 다짐을 하고 호랑이 인형을 사는 사람들을요. 어쩌면 사람이란 퍽 귀여운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1월 1일입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좀 더 행복하자는 새해 인사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왠지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일의 의미란 이렇게나 큰 모양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W 2022.09.15 19:53
    새해에 썼던 글인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버렸네.. 아쉬워서 올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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