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1
텅. 쿵쿵. 벽장 안에서 이루는 어둔 낮잠이 미세하고 둔탁한 소리에 끝났다.
도깨비 놈들이 나가고 아무도 없을 텐데 허무하게 끝난 잠이 아쉬워 누군지 얼굴이라도 확인하러 방문을 나갔다.
"누구야? 어떤 꼬맹이가..."
"...! 하현. 집에 있었어?"
놀라 마주 보고 서 있는 건 꼬맹이들이 아니라, 주인 너였다.
"뭐야, 주인. 너였어? 근데... 지금 뭐하고 있었어?"
"방 정리 좀 하느라고."
애매하게 웃음을 띠고 돌아선 채로 열려있던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너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방 정리가 아니던데?'
문틈으로 얼핏 보인 너른 방바닥에는 캐리어가 떡하니 펼쳐져 있었고, 주변에 널려 있는 요란한 물건들은 하나같이 휴대하기 좋은 것들이었다.
'멀리서 촬영할 예정인 건가.'
의문스러웠지만 그냥 뒀다.
본인 할 일 알아서 챙기는 거다. 감추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시 벽장에 누웠지만 이미 잠은 다 깼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촬영을 며칠 연달아 하면 피곤할 텐데... 뭐라도 챙겨주자.'


2
모두 모인 아침 식사 자리에서 너는 의외의 말을 했다.
"여행 갈 거야."
"여행 가자고?"
유은결의 말을 시작으로 언제 갈까요, 재밌겠다, 도깨비 녀석들이 한 마디씩 보탰다.
"아니, 나 혼자."
잠자코 듣기만 하던 내가 놀라 너를 쳐다보았다.
"왜? 우리랑은 싫어?"
울상 짓는 유은결에게 너가 의젓하게 말했다.
"아냐 그런 거. 혼자 생각 좀 정리하려고."
그 말에 유은결은 그나마 안심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머지 두 녀석들은 은근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너에게 곧장 달려갔다.
"주인,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
"무슨 얘기?"
너무나 산뜻하게 새삼스러운 표정을 짓는 너의 앞에서 말문이 잠깐 막힐 지경이었다.
"그 있잖아... 혹시 요즘 무슨 일 있냐?"
"무슨 일이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사람처럼 눈을 깜빡인다.
"너...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런 거라니?"
"혼자 여행같은 거. 안 가봤잖아."
"응. 안 가봤지. 그래도 무슨 일이든 처음은 있는 거잖아. 그게 이번일 뿐이야."
나는 너무도 태연한 네 앞에서 갑자기 혼자 오버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버렸지만, 마음을 다잡고 한 가지 빙빙 돌려 외면하던 것을 결국 정확히 눌러버렸다.
"너 얼마 전에 수면제 사왔잖아."
"...그게 뭐."
"여행이랑 관련있는 거야 혹시?"
너는 눈을 내리깔며 조용히 대답했다.
"아냐, 그런 거."
아니기는 무슨. 이미 저 표정부터가 뭔가를 감추고 있다.
그래도 이 정도 알아냈으면 된 거지. 더 캐물을 생각도 없다.
"그래, 알았어. 몸 조심히 잘 다녀와라."
"응."
문을 부드럽게 닫아주고 나오며 소파에 앉아 검색을 시작했다.
'잠이 안 오는 이유'
종종 잠 안 오는 날이 있었던 너인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잠이 안 오는 걸 받아들이지 못 할 만큼 괴로워하는 느낌은 받은 적이 없었는데.
잠에 관한 검색 결과들은 전문가의 의견부터 일반인들의 경험담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그걸 압축하면 다음과 같았다.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하루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은 내일을 맞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알긴 알겠는데, 너에게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아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최근엔 모든 게 순조롭다고 느꼈는데.
도대체 다 지나간 오늘을 붙잡고 싶어하는 이유가 뭘까. 그런 이유가 존재하기는 할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하나만 생각했다.
아무래도 잠 깨는 선물 대신 잠 잘 오는 선물을 줘야겠다고.
여행지에서만큼은 근심 다 내려놓고 푹 쉴 수 있도록.


3
그래서 선택한 선물은 이거였다.
“...자장가 클래식?”
“응. 너 CD 플레이어로 음악 듣는 거 좋아하잖아. 여행 가서 잠 안 올 때 들으라고.”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네. 고마워 하현.”
너는 살짝 미소 지으면서 내가 선물한 클래식 음반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내가 준 선물을 소중히 대하는 게 꼭 나를 그렇게 대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간질거렸다.
“아니면... 그냥 내 이름을 불러버리는 것도 난 환영해.”
“됐거든.”
“농담이야. 혼자만의 여행이라며. 재밌게 즐기고 와.”
너는 투덜거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만 자야겠다는 말과 함께 총총 사라졌다.


4
너가 여행을 떠난 날.
멀리까지 배웅하는 나와 도깨비 놈들의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던 네 잔잔한 표정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도깨비 놈들과 다 같이 하는 식사 자리에서 태연하게 네 얘기를 꺼냈다.
“근데 있잖아, 주인 말야.”
이 순간, 티나게 움찔 하면서 동공 지진하는 도깨비가 딱 눈에 들어왔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약간은 부자연스러운 대답까지. 이 녀석이 뭔가 있다.
“일은 무슨. 나는 그냥 그 애 얘기를 꺼냈을 뿐인데.”
“아, 그래.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유은결.”
“어?”
“너 이따 밥 먹고 나랑 잠깐 얘기 좀 해.”
무언가 낌새를 차린 김태희와 강비오는 전혀 모르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 건지 나와 유은결에게 한 마디씩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하현.”
“형... 무슨 일 있는 거야?”
나는 태연하게 마주 봤으나 유은결의 마음은 그렇지가 못한 듯, 높아진 목소리로 튀게 대답했다.
“아냐, 그런 거!”
“내가 무슨 소릴 할 줄 알고 아니래.”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었어!”
“휴우... 뭔진 모르겠지만, 둘만의 일이 아니라면 나중에 우리한테도 꼭 얘기해. 알았지?”
뭔가 가닥이 잡히지 않은 이야기란 걸 눈치챈 듯한 김태희가 적당히 얘기를 마무리지었다.
“으, 응... 그럴게.”
저 쫄보. 평소에는 목소리도 크게 쩌렁쩌렁 휘젓고 다니는 놈인데, 이럴 때 보면 갑자기 간이 작아진다. 다시 생각해도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지레 겁을 먹는 건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반응이 저 정도까지 나왔다는 게 내 예상에 힘을 실어준다.
유은결은, 지금 너의 상태와 관련이 있다. 아주 밀접하게.
“할 얘기가 뭔데?”
유은결은 잔뜩 작아진 목소리로 식사 후에 나를 찾아왔다.
“어, 다른 건 아니고 아까 말했듯이 주인에 대한 이야기야.”
“무슨... 이야기?”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너 요즘 걔 상태 좀 이상한 거 알고 있지?”
“어? 어...”
나는 의자에 더 깊숙이 기대며 꾸중받는 어린아이처럼 서 있는 유은결을 올려다봤다.
“난 그게, 왠지 너랑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어...?”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 난 좀 알아야 되겠는데. 솔직히 말해봐.”
“저기, 그게...”
이후에 유은결이 말한 내용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유은결은 약간 울 것 같기도 한 얼굴로 모든 것을 얘기하고 방을 나갔다.
따뜻한 햇살이 가득 내리는 테라스에 나가서 앉았다.
아직까지도 방금 들은 유은결의 이야기가 머리에 맴돌았다.
“그 애는 아마... 나 때문에 그런 걸 거야. 나 때문에.”
나는 차마 그렇게까지 자책하지 말라는 위로는 못 건넸지만, 그렇다고 딱히 나무랄 생각도 없었다.
원인 제공은 유은결이 맞지만, 기분의 책임은 너에게 있으니까.
불안한 기분이랄지, 미리 느끼는 허상뿐인 외로움이랄지.
적어도 난, 널 절대로 떠날 생각이 없는데.
책임이 너에게 있다고 네가 어리석은 건 아니다.
겪어왔던 과거의 시간들이 있고, 쉽게도 불안해지곤 하는 너의 연약함마저 사랑스럽다.
하지만 계속 구렁텅이 안에 갇혀있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는 더더욱.
하루를 꼬박 너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보냈다.


5
야외촬영을 하는 날.
멀리서 같은 햇살과 같은 공기를 누리고 있을 너를 숨 쉬듯이 생각했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주인. 여행은 재밌어?]
오래 기다리지 않아 답장이 왔다.
[응!! 여기 풍경 진짜 이뻐. 장난 아니야.]
[그래? 다행이다. 예쁜 거 많이 보고 와.]
그리고 잠시 텀을 두고 답장이 왔다.
[너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조용히 너의 메시지를 봤다.
이런 마음일 거면서. 왜 혼자 아파하는 거야. 생긴 적도 없던 상처에.
[다음에 꼭 같이 갈게.]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연달아 메시지를 보내고 이어서 또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아쉬우면, 나를 위해서 풍경 사진을 찍어다 줄래?]
이후로는 쉬는 시간이 끝나서 폰을 확인하지 못 했다.
늦은 저녁, 촬영이 끝나자마자 폰을 열어 답장이 왔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화면 속에서는 너가 웃고 있었다.
모든 풍경 속에 너가 있었다.
하나같이 예쁘고 아름다운 정경뿐이라, 가슴이 뿌듯해져서 따뜻한 미소가 지어졌다.
사진들과 짧은 영상들.
그리고 끝에는 너의 메시지가 있었다.
[풍경만으로는 아쉬울 것 같아서, 풍경 사진인 척하는 셀카 사진을 보냈다!!]
[예쁘네.]
곧바로 답장을 보내놓고 오래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너에게 답장이 와 있었다.
[풍경이?]
[풍경도.]
[그럼 뭐가 에쁘다는 걸까?.?]
알면서 묻기는.
[너. 주인.]
내 사랑.


6
새벽에 메시지가 왔다.
주인이었다.
[있잖아, 자?]
[아니. 넌 안 자고 뭐 하고 있었어.]
[그냥 잠이 안 와서.]
[내가 준 CD는]
[이따 들을 거야. 근데 그 전에 너한테 뭐 좀 물어보려고.]
[뭔데.]
[너 혹시]
짧고 빠르게 오가던 흐름이 잠시 멈췄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다시 정정하는 메시지.
[뭐야 김 새게. 말 하다 마는 거 나 아주 싫어해.]
[알았어, 미안. 근데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네가 궁금한 건 아마도...
[근데 하현.]
생각이 끊겼다. 다시 메시지에 집중했다.
[난 진짜 네가 있어서 행운인 것 같아.]
두근두근. 낮고 느린 심장 박동이 서서히 고조된다.
매번 이러는 것도 피곤할 텐데, 몸은 한결같이 좋을 대로 반응한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냥. 네가 나는 생각지도 못한 힌트를 쥐고 있는 것 같아.]
[아, 그저 써먹기 좋은 여우다?]
짐짓 놀리듯이 메시지를 보냈더니 아니나다를까 펄쩍 뛰면서 바로잡는다.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
그리고 잠깐 텀을 둔 본심이 날아온다.
[...소중하다고.]
수줍어하는 이모티콘과 함께.
손을 심장께로 올렸다.
강비오가 시도 때도 없이 이 행동을 할 때마다 솔직히 유난 떤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조금 이해하는 마음으로 봐줄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소중해?]
[응.]
[얼만큼 소중한데?]
[음...]
잠시 말을 고르던 너는 답장했다.
[같이 있고 싶은 만큼.]
[될 수 있는 한 오래.]
연달아 보내온 답장을 보면서 나는 웃음 지었다.
아까 새벽에 메시지 보낸 녀석이 누구냐면서 그냥 잠들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새벽 감성이란 것에 감사하는 날이 올 줄이야.
[나는 ]
메시지를 톡톡 적다가 잠시 말을 골랐다.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을 다 보낼 수 있을까.
[나는 늘 네 곁에 머물 거야.]
전송했다. 그리고 연달아 몇 개의 메시지를 더 보냈다.
[나는 네가 인간으로 살다가 죽든, 아니면 나처럼 영생을 사는 존재가 되든, 변함없이 곁을 지킬 거야.]
[그리고 언제든 너를 찾아 따라다닐 거야.]
[물론 너도 원한다면 말이야.]
[나는 너가 소중하지만]
[어쩌면 그건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더해서]
[같이 있지 않아도 같이 있게 만들고 싶은 만큼 소중해.]
[너는 네 자리를 지켜. 그러면 언제든 내가 따라갈게.]
답장은 한참 오지 않았다. 그래도 느낌으로 알았다.
먼 곳에서, 나와 같이 잠들지 않는 넌 지금 꽤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걸.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너에게 온 답장에 마음을 담아서 메시지를 보냈다.
[나야말로 고마워. 잘 자.]
행복한 밤이었다.


7
돌아오는 날, 너가 출발하기 전 마지막 통화를 걸어왔다.
“있잖아. 어제 새벽에 우리 메시지 주고받았잖아.”
“어, 그랬지.”
“그 때 내가 말 하다 만 거, 안 궁금해?”
말할 마음이 생겼구나. 나는 이미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네가 이야기하는 걸 들어주려고 했다.
“무지 궁금하다. 왜, 얘기해주려고?”
“내가 그 때 어떤 걸 물어보려고 했냐면...”
소파 위에 늘어지게 앉아 눈을 감고 뒤이어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혹시 너 요즘 내가 힘든 거 알고 있었어?”
생각만 할 때와 직접 입으로 듣는 건 다르구나.
새삼 슬픔이 밀려와서 빠르게 갈무리하고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뭐, 조금은?”
“그렇구나.”
잠시 이어진 침묵 덕분에 네가 있는 곳의 소리가 잘 들려왔다.
새 소리,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 너의 작은 숨소리.
“그럼 내가, 왜 힘든지도 알고 있었어?”
“뭐, 대충은.”
“도사네 도사.”
“도사 맞잖아. 도력을 부리는 신통한 여우, 선호.”
“하하. 신통력으로 사람 심리도 파악이 가능해?”
“아주 안 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쓴 건 신통력이 아니야.”
“그럼?”
“그냥 내 마음. 내 마음을 너한테 썼더니 알게 되네.”
“...”
대답 없는 네가 무슨 표정일지는 알 듯 모를 듯 했다.
슬슬 일어나 일정을 위한 채비를 하러 가면서 나는 말을 이었다.
“내가 말이야, 얼마 전에 재밌는 말장난을 하나 봤어.”
“뭔데?”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할 일이 없겠네.”
“오, 나도 들어본 것 같아.”
“이 말, 되게 말장난 같으면서도 사실은 심오한 말 같지 않냐? 되게 맞는 말이잖아, 이거.”
“그렇지. 걱정은 하등 쓸모 없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걱정 말고 지금을 즐겨. 이왕이면 거기엔 항상 내가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
“그래, 알았어.”
그리고 전화를 끊을 듯 하던 네가 마저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내가 왜 그렇게까지 불안했던 건지 그것도 알고 있었어?”
“음, 글쎄. 작은 의심이 큰 불안함이 된 거, 그건 너만 아는 이유 때문이겠지.”
“사실 그건, 너희가 가끔 아직도 꿈 같아서 그래.”
“꿈?”
“그래, 꿈. 꿈은 깨고 나면 사라지잖아. 김태희랑 은결이랑 비오는 내 생일날에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내 눈 앞에 나타났고, 하현 너는 정말 말 그대로 거짓말처럼 그림에서 튀어나왔잖아.”
“너무 갑자기 생긴 건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건가.”
“맞아, 그거야. 그래도 처음엔 그런 건 생각도 안 했어. 그런데... 그...”
“유은결하고도 얘기했어.”
“아... 그렇구나. 그 은결이 노래 가사를 듣고서, 은결이가 나를 생각하면서 썼다는 그 노래가 너무 슬픈 이별 노래여서, 처음엔 그냥 이상하고 슬프기만 했는데, 점점 두려운 거야.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하게 만난 것처럼,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하게 너희가 사라질까봐.”
“...”
“난 그냥 평범한 인간인데, 너희는 뭔가 내가 알 수 없는 세계에 한 발을 담그고 있잖아. 신통력이니, 능력이니 하는 그런 것들을 쓰고, 내가 모르는 영구한 시간을 살아가고. 차이를 인지할수록 너희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게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 될까봐, 두려웠어.”
“그랬구나. 지금은 어떤데?”
한결 개운해진 목소리로 대답이 흘러나왔다.
“지금은 좋아. 다 좋아.”
웃음 끝이 맑았다.
“통제할 수 없는 내일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래. 난 오늘을 만들 수 있으니까.”
“그래, 잘 생각했다.”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밝아졌다.
“네가 전에 그랬잖아. 너를 위해 풍경 사진을 찍어달라고.”
“응, 그랬지.”
“그 말을 듣고 전구가 켜진 느낌이었어. 걱정만 하는 대신에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걱정도 줄어들 것 같다고 말이야.”
“그렇게까지 생각해줬다니 다행이네.”
좋은 걸 보면서 주의를 돌려보라고 한 게 내가 떠올린 급선무의 아이디어였지만, 내 생각보다도 훨씬 현명한 너는 그 이상의 답을 도출했다.
“응?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었어?”
“비슷하긴 한데 좀 달라. 너가 스스로를 위해서 현명한 답을 선택했어.”
“그런 거야? 쑥스럽네.”
내 자랑을 한 것 같기도 하고... 말 끝에 작게 붙는 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몇 시에 도착해?”
“아마 4시쯤?”
“그 시간이면 오늘은 강비오가 집에 있겠네. 다행이다, 혼자 있을 때 안 와서.”
“내가 애야?”
“애 맞지. 혼자인 거 너무 싫은 애.”
“지금 놀리냐?”
“그래 놀렸다. 우리 주인, 누굴 닮아서 이렇게 놀리고 싶을까.”
“어휴, 됐다. 요 며칠 좀 존경심이 들었는데 지금 다 식었어.”
“어, 뭐야. 나를 존경까지 해준 거야? 매우 영광입니다, 주.인.님.”
“으악, 느끼해 그거 하지 말라니까!”
“하하하. 야 그래도 느끼하다는 말은 너무 심한 거 아냐? 나같이 우아하고 젠틀한 여우한테.”
“아 됐고, 이만 출발할 시간 다 됐으니까 끊을게. 너도 오늘 늦지 않게 오지?”
“응. 저녁 시간 지나서 바로 들어올 거야.”
치익. 고속 버스가 출발하기 전 소리가 들려온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조심해서 천천히 와. 나도 이만 준비 시작해야 돼서 나머지 얘기는 이따 하자.”
“그래. 너도 잘 갔다 와.”
전화를 끊고 벗다 만 상의를 마저 벗겨 낸 후에 선선한 공기를 고스란히 느끼며 이 기분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아주 좋은 기분.
그리고 아마 그건 너의 기분이 좋기 때문일 거다.
처음으로 혼자 하는 여행이 달콤했다면 좋겠지만, 돌아오는 길에 근심을 털어놓고 오는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아마 너의 마음도 그렇겠지.
쨍쨍한 해를 맞으며 일을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저녁이면 다시 만날 너로 인해서.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전체 【영화이벤트】 허광한 주연 🎬 <청춘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단 한번의 시사회 40 2024.04.25 3320
전체 【영화이벤트】 7년만의 귀환을 알린 레전드 시리즈✨ 🎬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예매권 증정 116 2024.04.23 3974
전체 【영화이벤트】 F 감성 자극 🎬 <이프: 상상의 친구> 예매권 증정 82 2024.04.22 3923
전체 디미토리 전체 이용규칙 2021.04.26 568414
공지 창작방 공지 29 2017.12.15 14095
모든 공지 확인하기()
267 팬픽 [도일인주] 믿는다는 것. 3 2022.10.14 653
266 팬픽 [내일/련중길] 아라리 4 2022.05.23 617
265 팬픽 [준영송아/브람스를좋아하세요] 준영과 송아의 일상 4 2021.11.30 391
264 팬픽 [워너비챌린지/강비오] 창밖의 겨울 2021.03.19 49
263 팬픽 [워너비챌린지/하현] 손끝의 따스함 2021.03.18 64
262 팬픽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준영송아] 사랑하는 송아에게 16 2020.10.23 1884
261 팬픽 [슬기로운 의사생활] 에필로그: 겨울정원 6 2020.07.11 1251
260 팬픽 [슬기로운의사생활/겨울정원] 정원의 겨울. 下-2 (完) 4 2020.06.09 1293
259 팬픽 [슬기로운의사생활/겨울정원] 정원의 겨울. 下-1 9 2020.06.03 1395
258 팬픽 [슬기로운의사생활/겨울정원] 정원의 겨울. 中 6 2020.06.01 1353
257 팬픽 [슬기로운의사생활/겨울정원] 정원의 겨울. 上 8 2020.06.01 3475
256 팬픽 [머니게임|유진혜준] 장단에 놀아나다 11 2020.05.05 1833
» 팬픽 [워너비챌린지] 하현의 일주일 (bgm) 2020.04.25 91
254 팬픽 [워너비챌린지] 유은결의 가사 (bgm) 2020.04.20 52
253 팬픽 [워너비챌린지] 김태희의 일기 (bgm) 2020.04.16 176
252 팬픽 [머니게임|유진혜준] 빅 픽 쳐 19 2020.04.14 2386
251 팬픽 [머니게임/유진혜준] 14.5화 - 결핍 8 16 2020.04.04 1433
250 팬픽 [머니게임/유진혜준] CRAZY 17 2020.04.03 3767
249 팬픽 [머니게임|유진혜준] 환장하는, 당신. 13 2020.03.31 1845
248 팬픽 [머니게임/유진혜준] 14.5화 - 결핍 7 /와! 우리 장르 메이저다! 재편집 나온대요! 17 2020.03.28 1352
목록  BEST 인기글
Board Pagination 1 2 3 4 5 6 7 8 9 10 ... 14
/ 14

Copyright ⓒ 2017 - dmi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