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가사가 좀 이상해."
사각사각. 연필로 노트에 이런 저런 가사를 짧게 적어둔다ㅡ전과는 다르게. 완결성 없이 되는 대로 떠올려 적어본다.
"그 때에도 내 옆에서 노래해."
움직이던 연필을 내려두고 주방에 내려가서 물을 한 잔 마셨다.
"..."
전에 들은 목소리가 여전히 지금 듣고 있는 것처럼 가슴에서부터 천천히 울려 퍼진다.
가사가 이상하다고.
그 때에도, 옆에서 노래해달라고.
그 말을 들은 순간에는 그저 가볍게 농담처럼 그렇게 내 목소리가 좋으냐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에 쿵 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온 지구가 한 발짝쯤 아무도 모르게 이동해버리는 것처럼, 내 마음이 통째로 흔들거렸다. 묵직하고도 분명하게.
방으로 돌아와 다시 가사 작업에 집중했다.
그 날 이후로 넘겨보지 않았던 앞페이지를 슬쩍 펼쳐본다.
"...눈이 부시게 웃어주던 그대의 얼굴이."
소리내어 천천히 작게 말해본다.
"따뜻하게 전해지던 너의 손끝이 아직 선명하게 남아서."
오르막 언덕을 오른 사람처럼 모은 숨을 마저 불었다.
"그러네. 나 굉장히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네."
어떻게 몰랐는지 스스로도 신기하다.
원하는 것과 전혀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게 상대에게 상처가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 애는 분명, 상처받은 눈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곁에 있어주는 소중한 벗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눈이었다.
생각해 보면 늘 언젠가는 네 곁을 떠날 거라고 가정하고 너를 대했어.
너를 만나고 가사를 쓰면서부터 영감의 원천은 늘 너였고, 가사를 쓰기 전 완결성 있는 어떤 하나의 이야기를 구상하면 늘 거기에는 너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너에게 없어졌다.
그건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왜인지 그럴 거 같아서 혹은 그래야 할 것 같아서라는 지금 생각하기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변명같은 이유였다.
만약에 지금 다시 쓴다면.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오늘도 너는 눈부시게 웃어주네."
오늘이 내일이 될 수 있다면.
"가끔 나를 애처럼 만지는 손길은 언제나 다정해서 기분이 좋아."
가사로 그대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내용적으로만 본다면 너는 이 가사가 맘에 든다고 할 거다, 분명.
매일이 당연하게 곁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담겨있는 가사.
다시 쓰는 가사는 너를 웃게 할 거다.
그리고 솔직한 내 마음을 현재진행형으로 전달할 거다.
내가 가장 자신 있고 용기낼 수 있는 노래 가사라는 형태로 200년의 사랑들과 조금 다른 처음 느껴본 사랑을 꼭 전할 거다.
만약 그 가사도 너와 나의 이야기라고 말한다면 너는 웃어 줄까.
너는 착하니까 아마 웃어줄 거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떨까.
"형, 잘 잤어?"
느슨해진 생각의 틈으로 비오의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어, 오늘은 좀 일찍 일어났네?"
"응, 일정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지나쳐가던 비오는 작게 어, 소리내며 방문을 연 채로 주춤거렸다.
"형, 좋겠다. 선물이 온 것 같아."
느리게 말한 비오는 씻으러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얼떨떨해진 기분으로 열린 문가에 섰다.
쭈그려 앉아 가까이 보니 예쁜 선물 상자에 쪽지가 끼여 있었다. [먹고 힘내]
상자를 열어보니 온갖 초콜릿과 사탕들이 들어 있었다.
요즘 밴드에서 할 일이 많다고 투정하듯 하소연을 했더니 그걸 기억해서 나를 북돋아주려고 이런 것들을 다 준비했나보다.
너의 글씨체를 눈에 마음에 한 번 더 담았다.
"고마워."
작게 중얼거린 나는 웃었다.
일단은 사랑을 말하자.
그것이 가사가 되었든 내가 하는 말이든, 무엇으로라도 말하자.
그러고 나서 생각하면 된다.
애초에 무엇을 바라고 만든 마음이 아니다.
만들어졌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늘 같은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다.
이 마음을 그대로 담아서 연필을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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