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잔 아래, 둥글게 받친 손 안으로 핏빛 감도는 와인이 한바탕 휘돈다. 와이드창, 비스듬하게 기댄 머리 위는 온통 짙은 네이비 컬러 하늘이다.




정석으로 갖춰입은 3pc 슈트. 단정히 슈트 버튼까지 잠궈낸 자태는, 분명 선이 곱지 않음에도 묘하게 바른 인상을 풍겼다. 이질적이었다.




이질적. 그게 그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유일한 수식어일 것이다.




밝은 할로겐 조명 아래 드러난 얼굴은, 상냥함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선 굵은 이목구비가 증명해주듯, 도드라진 눈썹뼈 위로 진한 눈썹이 자리한다. 느릿하게 감겼다 떴다 반복 중인 눈두덩 아래 자리한 눈매. 눈빛. 그건 분명 이리, 그 자체였다.







"....늦네."







발치보다 더 아래. 찬란하게 변하는 야경 내다보던 낯이 굳는다. 고급스러운 흰 소파와 테이블이 나란히 한 세트로 갖춰진, 방 한가운데로 걸음을 옮긴다.




소파 팔걸이에 살짝 기대앉아, 길이가 남는 발을 쭉 뻗는다.




자세 구부려 앉으면, 여며진 슈트 재킷 안으로 베스트가 얼핏 드러난다. 그 안으로는 팽팽하게 주름 당겨진 셔츠가 자리잡고 있다. 확실히 예쁘게 다듬어진 몸선은 아니다. 조금 더 야성적이고 날 것에 가깝지.







"Too late." (너무 늦어.)







벽면 위치한 시계 흘끗 확인하고 더욱 굳은 낯으로 변한다. 가장자리가 크리스털로 장식된 금색 시계. 약속된 시각보다 한참이 지났다.







"..이러면 내가 너무 신경쓰이는데."







이걸 뭐라고 하더라. 환....환......




가끔씩 특정 단어들이 뇌 밖으로 튀어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건 높은 확률로 한국어였다. 환. 뭐였는데. 어금니 짓씹은 채로 완벽하지 않은 형태소를 반복한다.




뭐든 완벽한 것을 좋아했다. 완벽을 갖추면 갖출수록 눈에 띄었다. 완벽하지 않은 게 싫어서, 한 자 한 자 눌러가며 배우듯 한국말을 그렇게 발음했다. 아마 노력을 소홀히 한다면, 영 알아듣기 어렵게 될 거다.




지구 반 바퀴 거리 이국의 땅에서 날아온 사내는,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니었다. 멋들어진 신사처럼 차려입어도, 날카로운 이면까지 전부 커트하지는 못했다. 길고 탄탄하게 다져진 몸. 그러나 채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그것. 사람의 형상을 한 이리. 적포도빛 와인을 삼키는 검붉은 입술. 그 사이로 언뜻 드러난 핏빛 아가리. 날카로운 이. 최상위 포식자.







"..이혜준."







발음하기도 어렵게. 해도 아니고 헤도 아니고 혜. 그런데도 그걸 발음할 때가 가장 좋았다. 입꼬리 양끝을 당겨 가느다랗게 입술이 벌어지면, 아랫니와 혀가 맞붙는다. 연한 목구멍 끝을 가다듬고 울리는 긴 호흡소리. 혜.







"네?"







둥글게 받치고 있던 와인잔이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부드러운 가죽 카펫 위로 와인잔이 구르고 삽시간에 짙은 얼룩 덧씌워져 물든다. 그러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방금 막 달려온 듯, 호흡이 가쁜 사람이 시계를 등지고 서있었다. 하염없이 기다리며 곱씹고 또 곱씹던 이름의 주인. 해도 아니도 헤도 아니고 혜.




살 내린 뺨. 핏기 없는 낯에 붉은 기운이 감돈다. 아마도 정신없이 뛰어와서겠지. 어딘가 붕 떠있는 짧은 커트 머리. 제가 입은 슈트보다도 더 검은 머릿칼. 마구 흐트러지고 흩날리는 전부.




묘한 이질감. 전혀 다른 이족에게서 이토록 동질의 느낌을 받는다는 게 가능할까. 유진은 일어나, 지각한 방문자에게 다가간다. 간격이 좁혀질 때마다 신장의 차이는 뚜렷해진다. 모든 게 선명해지는 때다.







"미안해요. 너무 늦었죠."





"......"





"설마해서 뛰어왔는데 아직도 계실 줄, 몰랐,"







숨 고르는 중간중간 급하게 말을 내뱉느라 전부 엉망이다. 이토록 엉망임에도, 왜 당신은 완벽에서 멀면 멀수록 더 눈에 붙을까. 이혜준 씨.







"기다리다가,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요."





"......아, 그게.."





"이걸 뭐라고 하지. Crazy?"





"..어, 미치겠다?"





"그거 말고."







부스스한 머리카락 위로 크고 서늘한 손이 얹힌다. 제멋대로 뻗친 가닥들이 서서히 가라앉고, 혜준의 호흡이 리듬을 갖는다. 그때까지도 유진의 손은 혜준의 뒤통수에 단단히 붙박인 채다.







"...환."





"환?"





"I thought I was going crazy." (미치는 줄 알았어.)





"...아. 환장."







환장.




그래. 환장.







"Right. 나, 환장했어요."







완벽하지 않은 발음과 완벽하지 않은 문법으로, 완벽하게 전하는 진심.




고급스럽게 관리된 바닥, 카펫, 가죽 소파, 구둣굽, 바지춤. 의도치 않게 엎질러진 적포도주. 아마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기겠지. 완벽하게 망해버린 이 순간처럼.







"있잖아, 혜준. I think I'm crazy." (내가 미쳤나 봐.)







단단히 감싼 뒤통수를 끌어당긴다. 급하지 않게. 그러나 더디지도 않게. 끌려오면서 반항이 없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끌어당긴다고 끌려오는 사람도 아니면서, 어쩌자고 이렇게.







"I think so, too." (그런 것 같아요.)







목덜미와 쇄골 어디쯤. 더운 숨을 가진 얼굴이 닿는다. 너무 오래 기다렸고 너무 오래 기대했다. 내가 보고싶어 환장하는, 당신.




나를 미치게 하고, 미치게 할, 내가 너무 환장하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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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게임 뒤늦게 달려서 7화까지 보고 유진한 캐릭터에 환장해서 써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7화까지 밖에 못봐서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이게 되는 주식이라는 건 알겠다...!






하기야 600억이나 날렸으니 환장할 만도....^,^
  • tory_1 2020.03.31 10:35

    7화까지만 보고 이런 글을 쓰시다니...11보시고 나서 글도 기대돼요

  • tory_2 2020.03.31 10:44
    표현이 넘 찰떡같아ㅋㅋ
  • tory_3 2020.03.31 10:45
    작가선생님 기다리겠습니다 또 와주세요ㅠㅠ
  • tory_4 2020.03.31 11:13
    환장하겄네ㅜㅜ 얼릉 또오셔요ㅜㅜ
  • tory_5 2020.03.31 11:27

    선생님 돌아오십셔!!

  • tory_6 2020.03.31 11:49
    아이고 감사합니다ㅠㅠㅠㅠ 다음에 또 써주세요ㅠㅠㅠㅠ
  • tory_7 2020.03.31 12:12
    고맙다 토리...
  • tory_8 2020.03.31 12:30
    천재 선생님이시네요 7화까지만 보고 이런 글을 쓰시다니!!! 11화 13화 14화 16화 볼때마다 또 써주세요
  • tory_9 2020.03.31 13:03
    유진혜준에 환장한 나 토리 같고 좋다
  • tory_10 2020.03.31 13:14

    와... 선생님 계속 와주세요ㅠㅠ 저도 환장하겠어요!!!!!

  • tory_11 2020.04.01 03:20
    선생님 그래서 다음화는 언제 보실건가요?
  • tory_12 2020.04.01 11:56

    아 증맬 환~~장한다 나도!!!!!! 유진혜준...혜준유진... 가지마...

  • tory_13 2020.04.02 19:26

    나도 환장해,,당신 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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