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새는 보았다.

 

바다에서 땅이 솟아오르는 것을.

땅에서 나무가 자라나는 것을.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모든 것을 새는 바람을 가로지르며 보았다.

 

바다는 성이 나 거친 파도를 만들어 내기도 했고, 땅 위의 나무는 태풍에 꺾일 때도 있었으며, 하늘은 천둥번개로 시끌 번쩍해 해도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계속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새는 바다를 달래고, 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하늘의 먹구름을 몰아내었다.

 

새가 내려다 본 세상의 인간들이 그것을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하나, 새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말을 하고 싶어.

 

새는 인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었지만 그들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고수레! 고수레! 고수레!”

 

아이는 커다란 나무 아래서 흰 쌀알을 여기저기 뿌려댔다. 땅에 한 줌. 나무에 한 줌. 하늘에 한 줌. 신주단지에 모셔놓은 귀한 햅쌀이었다. 이것을 가지고 나온 걸 어머니가 아신다면 크게 혼이 날 터였다. 하지만 아이는 마음이 급했다. 어머니가 암만 집안에서 신령님께 빌어보아도 아이 생각엔 나무에 사는 새님께 소리치는 게 하늘에 더 빨리 닿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바다로 나가신 뒤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겨울의 한파는 곧장 비바람을 눈보라로 둔갑시켰다. 파도는 태산처럼 높았고 해무의 장막에 가려진 바다 저편은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아이는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새님! 새님! 새님!”

 

하지만 새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수북하게 쌓인 눈 때문에 흰 쌀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아이는 울상이 되었다.

 

아이는 결심했다. 나무 위에 산다는 새님은 귀한 것을 바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다. 쌀은 분명 집안에서 귀한 것이었지만 아이에게 가장 귀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나뭇가지 곳곳에 오색의 띠가 매달려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아이는 글을 몰랐지만 그 띠엔 묶어둔 사람의 소원이 적혀있을 게 분명했다.

 

댕기를 바치자.

 

아이는 품속에서 곱게 접어 둔 붉은 댕기를 꺼냈다. 어머니가 농사를 지으면 아버지는 그 쌀을 배에 싣고 가 팔았다. 두 분이 선물해준 붉은 댕기. 우리가 너 다홍치마는 새로 못해줘도 이것 하나만은 꼭 사주마, 하며 생일날 건네주신 너무 소중한 물건이었다. 하고 다니기 아까워 밤에 잠들기 전에 잠깐 꺼내보고 넣어두던 귀한 댕기를 손에 쥐고 아이는 용감하게 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이 댕기를 저기 저 나무 꼭대기 가지 위에 매달면 새님이 보실 거야. 다른 사람의 소원보다 내 소원을 제일 먼저 보시고 들어주실 거야. 아이는 동네 꼬마들 중에서 나무타기라면 자신이 있었다. 펄럭이는 치맛자락은 가랑이 사이를 묶어 단단히 고정시키고 설피를 벗어던진 맨발로 아이는 나무를 탔다. 눈발을 머금고 불어난 나무 껍질이 벗겨지지 않았다면, 추위에 부르튼 발바닥이 까지지 않았다면, 단풍잎처럼 작은 손이 아이의 무게를 온전히 지탱했다면 분명 끝까지 닿을 수 있었으리라.

 

위험하단다.

 

, 하고 소리치는 순간 아이의 몸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이제 죽었구나 눈을 질끈 감았던 아이는 푹신하고 따뜻한 무언가에 폭 떨어져 다시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새님?”

 

아이가 누운 곳은 커다란 새의 등 위였다. 고랫등 같은 기와집보다 커다란 날개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새는 강물 위에 떠다니는 잎처럼 공중을 날고 있었다. 아이는 놀라서 무릎으로 기어 새의 사슴 같은 목을 껴안았다. 새가 살짝 고개를 돌려 아이를 확인했지만, 아이는 아래를 보기 무서워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바람에 새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파도는 잠이 들 거야. 바람도 멈추게 해주마. 자연히 눈이 그치면 하늘도 맑아질 거란다. 그럼 아버지가 돌아오시겠지. 고기를 가득 싣고.

 

품 안에서 느껴지는 새님의 목소리는 신기했다. 동굴에서 울리는 동물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고, 서당에서 들리는 풍월 읊는 말 같기도 했으며, 자장자장 노래 같기도 했다. 바람결에 딸랑딸랑 흔들리는 풍경(風磬)처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져 아이는 어느새 땅 위에 도착한 줄도 몰랐다.

 

그러니 다시는 나무에 오르지 말렴.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신단다. 너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해.

 

새님은 한쪽 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아이를 내려주었다. 폴짝 땅 위로 뛰어내린 아이는 제 소원을 들어준 새님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새님! 소원을 들어주신 보답으로 제게 가장 소중한 이 댕기를 드릴게요!”

 

『괜찮아. 주지 않아도.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새님은 다른 한 쪽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아이는 새님의 목소리가 듣기 좋아서 까치발을 들어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머리를 이리 내려주세요! 제가 달아드릴게요!”

 

이 붉은 댕기는 자신보다는 저 희고 커다란 새님께 더 잘 어울릴 것이다. 순진한 아이의 재잘거림에 새는 주저하며 답했다.

 

내 얼굴을 보면 네가 놀랄 지도 몰라.

 

왜요?”

 

흉측하게 생겼거든.

 

새는 사람의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랬더니 사람의 얼굴이 되었다. 날짐승들로부터 공경을 받았지만 대신 인간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대체 어떤 얼굴일까 차마 보기 무서워 새는 물가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지 않았다.

 

저도 애들이 못생겼대요.”

 

아이는 그런 새의 걱정을 참으로 가볍게 여겼다.

 

『그럴리가. 너는 참 고와.

 

새는 가장 귀한 것을 보는 눈을 가졌다. 새의 눈에 아이는 곱디 고왔다.

 

우리 엄마아빠 빼고 나 곱다는 이야기 처음 들어봤어요!”

 

참이란다. 나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

 

새는 사람의 얼굴로 가장 진실한 말만을 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부리로 지저귐을 노래할 수 없게 된 새는 입으로 바른 소리만을 읊게 되었다.

 

그럼 더욱 이 댕기를 달아야 해요! 이걸 달면 모두가 새님을 예쁘다고 해줄 거예요!”

 

탈춤 추듯 댕기 든 손을 파닥거리는 아이의 부산스런 움직임에 새는 오래간만에 웃을 수 있었다. 그래서 조심조심 주저하며 깃이 풍성한 날개를 슬며시 내렸다.

 

우와!”

 

제 얼굴을 보면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지 않을까 새는 두려웠다. 그러나 아이는 총명한 두 눈으로 새를 올려다 볼 따름이었다.

 

새님은 오라버님이셨네요.”

 

새의 나이는 아이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보다 더 많았지만 그의 얼굴은 젊은 청년의 것이었다. 아마 아이에겐 동네 오빠뻘 나이의 사람으로 보였으리라.

 

내가 무섭진 않니?

 

왠지 아이의 강렬한 눈빛을 마주하기 쑥스러워진 새는 긴 목을 움츠리며 눈치를 보았다.

 

아니요! ”

 

도리도리 고개를 돌린 아이의 두 볼이 홍매처럼 붉어졌다. 새의 머리깃털에 댕기를 드린 아이의 손톱 끝엔 첫눈이 내릴 때까지 지워지지 않은 봉숭아물이 불그스름하게 남아있었다.

 

역시 예뻐요!”

 

고맙구나.

 

새는 꽃보다 활짝 웃는 아이의 얼굴에 저도 기쁘게 웃어보였다.

 

 

 

 

 

 

 

 

 

 

새는 보았다.

 

바다의 파도가 잠잠해지자 어부가 아내에게 돌아가는 길을

나무의 새에게 소원을 빌고 돌아간 아이는 우후죽순처럼

하늘에 닿을 만큼 쑥쑥 자라나는 것을

 

모든 것을 새는 바람을 가로지르며 보았다.

 

사람의 얼굴을 한 새의 머리에는 붉은 댕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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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면조 오빠 덕분에 동양풍 판타지 로설 절로 써지고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 겨울왕국 평창 올림픽!!!  

인외신수 키잡물 어떠하니? ㅇㅈ? ㅇㅇㅈ

남주 나이 천살 쯤은 먹어줘야 매력적이지 않겠어? ㅇㄱㄹㅇ ㅂㅂㅂㄱ





















(+)


아이는 어른으로 자랐다. 


"오라버님은 아름다워요." 


『아름다운 건 너란다.

 

  • tory_1 2018.02.12 02:5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놬ㅋㅋㅋㅋㅋ진짜로 인면조로 썰푸는 토리가 나타나쎀ㅋㅋㅋㅋㅋㅋ
  • tory_2 2018.02.12 08:53
    헐.. 대박적..전래동화느낌이야!!!
  • tory_3 2018.02.12 09:44
    ㅠㅠㅠㅠ 듀근두근
  • tory_4 2018.02.12 12:49
    인면조 오라버니!!! (와장창
  • tory_5 2018.02.12 16:34
    세상에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모습이야...
  • tory_6 2018.02.12 18:31
    세상에 필력.....................
  • tory_6 2018.02.12 18:34
    키잡물 너무 쩔고....토리 글 진짜 잘쓴다 전문 작가같아.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림이 펼쳐졌다 진짜. 이거 연재물로 해주면 안되냐능...ㅜㅜ
    그런데 밑에 사족 ㅇㅈ ㅇㄱㄹㅇ ㅂㅂㅂㄱ 와의 괴리감 너무 웃긴것 ㅋㅋㅋㅋㅋ
  • W 2018.02.13 00:49
    사실 짧지만 2편을 생각중이었어! ㅎㅎㅎ 사족은 면조 오빠에게 흥분한 나머지 저렇게 썼는데ㅋㅋㅋㅋ 6톨의 괴리감을 줄여주고자 진지 먹고 다시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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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인면조 오라버님 덕분에 동양풍 환상 애정 소설이 절로 써집니다. 오라버님의 옥골선풍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오달지고, 가슴이 저리고, 그저 모든 것을 놔버린 채 겨울의 왕국으로 우뚝 선 평창 동계 국제 경기 대회를 배회하고만 싶어집니다.

    사람이 아닌 신성한 동물이 사랑으로 아이를 키워 어른으로 길러내는 소설은 어떠하십니까? 인정. 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남자의 나이가 천살 쯤은 되어야 비로소 주인공의 매력이 무르익었다 할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이며 반박은 불가합니다.

    그럼 두번째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 tory_7 2018.02.13 00:20
    느낌 너무 좋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설레고 예쁘고 따뜻하고 둥글둥글해ㅠㅠㅠㅠ
  • tory_9 2018.02.13 04:23
    잘 봤어! 인조 오빠 진짜 힙해! ㅋㅋ
  • tory_10 2018.02.13 17:43
    붉은 댕기한 인면조 오라버니 보고싶다ㅠㅠㅠㅠㅠㅠ
  • tory_11 2018.02.16 21:09
    와....글진짜 분위기 좋다. 추천백개!!!!
  • tory_12 2018.02.17 02:10
    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재는 개그인데 퀄리티는 레알이라 깜놀했다 ㅋㅋㅋㅋㅋ 2편 기대할게!
  • tory_13 2018.02.26 12:36

    와 면조 오빠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고마워 토리야 진짜 2편 기다린다 ㅜㅜㅜ

  • tory_14 2018.03.01 14:47

    금손이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면조오빠 주인공으로 동양물 하나 가잨ㅋㅋㅋ

  • tory_15 2018.03.04 18:16

    헉.. 진짜 좋다.... 청컨대 두번째 글을 어서 내주실 수 있을는지요? 간곡히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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