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수고하셨습니다."

    

떠나기 전 마지막 훈련을 마쳤다. 현이 요청했던 각인은 결국 승인이 나지 않았지만 현, 개인의 의견이었는지 얼마 전 한국에 들어 온 그레이든에게서도 별 이야기가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들어서는 그레이든을 스쳐 지호가 훈련장을 나섰다. 아니,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연구원에게 잡혀버리고 말았다. 파견 나온 연구원인 듯, 열정적으로 오늘 훈련에 대해 이것저것을 묻는다. 그 열의를 매정하게 거절할 수 없어 대답 해주는 지호의 시선에 현과 그레인든이 걸렸다. 꽤나 아끼는 가이드 인 듯, 현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핀 그레이든이 작은 파우치 하나를 건넸다. 피곤한 지 굳은 얼굴의 현이 그 파우치를 받아들곤 문 쪽으로 걸었다.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   

    

손에 쥔 작은 파우치가 큰 돌덩이처럼 느껴져 한 걸음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한 걸음에 한숨 한 번씩을 쉬던 현이, 자신의 방 앞에서 서성거리는 솔의 모습에 걸음을 멈췄고, 인기척에 고개를 든 솔이 현에게 다가왔다.

 

안녕.”

……

 

솔의 인사에 현이 입술을 깨문다. 자신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것이 머쓱해 솔이 습관처럼 펜던트를 만지다 현에게 고맙다며 늦은 감사 인사를 전한다.

 

연준이한테 들었어. 네가 준 거라며.”

잘 어울리네.”

 

현의 칭찬에 솔의 얼굴에 미소가 살짝 스쳤다. 현에게 지호를 빼앗긴 것 같았지만, 어떻게 보면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 그래도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이 지호를 안정화 할 수 있어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떠나기 전에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 찾아왔다며, 지호를 잘 부탁한다는 솔의 말에 현이 솔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이 변한 것처럼 솔도 많이 변해 있었다. 늘 누군가에게 의지한 채 울기만 했던 어린 아이가 이제는 의젓하게 자신의 사람을 부탁하는 모습이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당연하지. 윤지호 센티넬은 내 - 센티넬인 걸.”

 

부러 나의 것에 힘을 주었다. 살짝 움찔한 솔이 애써 미소 지으며 두 사람 모두 다치지 말라하곤 뒤돌아 걸었다.

 

 

솔이 복도 모퉁이를 돌자마자 현이 심장께를 부여잡으며 허리를 굽혔다. 후우, 후우깊게 심호흡을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간 현이 다급하게 파우치 안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익숙하게 놓은 주사. 얼마나 약효가 좋은 것인지 주사기를 끝까지 밀어 넣지도 않았는데 고통이 가셨다.

 

크흑

 

다 놓은 주사기를 저 멀리 던진 현이 무릎을 끌어안곤 한참을 울었다.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

 

[저 청년은 명단에 없었던 걸로 아는데.]

[제가 워낙 짐이 많아서요.]

    

그레이든의 불평에 세린이 너스레를 떤다. 이동 당일, 솔이 짐꾼으로 차출되었다. 정확하겐 본인과, 타인의 요청이었다.

 

나도데려가 주면 안 돼?’

또 연준이가 걱정 돼?’

연준이도 그렇고또 걱정되는 사람이 있어서.’

 

, 이세린. 솔이도 데려가면 안 되냐?’

?’

윤지호의 분리불안?’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신을 찾아왔던 지호와 솔의 모습이 떠올라 세린이 가볍게 피식거린다. 혼자서 잘 수 없던 윤지호, 혼자가 아니라면 잠들지 못했던 한 솔. 이제 두 사람은 서로가 없이는 잠들 수 없었다.

 

저 멀리 나란히 앉은 지호와 솔이 보인다. 행여 솔이 불편할까 알뜰하게 살피는 지호. 춥지는 않는지 혹 목은 마르지 않은지 한시도 쉬지 않고 자신의 상태를 살피는 지호의 모습에 솔이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입 꼬리를 애써 숨겨본다.

 

? 화장실 가고 싶어?”

 

왠지 모를 간지러움에 움찔거리자 지호가 벨트를 풀 기세로 묻는다.

 

안 가고 싶어. 그리고 이제 이륙하는데 무슨 화장실이야.”

가고 싶으면 말해. 참지 말고.”

아니라니까!”

 

결국 솔이 짜증을 낸다. 그럼에도 지호는 하나 기분 나쁘지 않은 건.

 

잠이나 자.”

 

이렇게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솔이 있기 때문에. 솔에게서 안정화를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는 더 이상 고려할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이 작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좋았다.

 

-

 

우으응, 시러

 

시차 적응에 실패 해 희수에게 업힌 채 볼을 비비적거리는 연준의 모습에, 희수가 각인을 해서 다행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 너스레 뒤로 세린과 다른 요원들은 짐을 풀 새도 없이 바삐 움직였다. 전투계 센티넬인 지호와 희수는 최전방이었고, 솔은 - 짐꾼으로 - 후방 지원에 속해 있어 아쉽지만 여기서 작별을 고해야 했다.

 

"나중에 봐. 혼자 다니지 말고 요원들이랑 꼭 같이 다녀. 알았지?"

"내 걱정 말고 니 걱정이나 해."

 

여기까지 따라온 것만 해도 장하다. 투덜거리는 했지만 아쉬움에 지호의 손을 놓지 못한다아쉬운 건 지호도 솔 못지않아 두 사람은 내내 손을 잡고 있었다. 현이 지호에게 다가와 뭔갈 속삭인다. 출발해야한다는 말이었던 듯 결국 지호가 솔의 손을 놓았다.

 

심심하면 전화 해.”

방해하면 어떻게 해.”

네 연락이 어떻게 방해야. 그런 생각하지 말고.”


지호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솔 역시 환한 미소로 답했다.

 

"웃기지 않아요?"

"뭐가요?"

"제가요. 아무 능력도 없는 게 여기까지 쭐래쭐래 따라와선. 괜히 인력 낭비만 시키고."

"인력낭비라고 생각 안하는데요?"

 

숙소 테라스에서 자아비판을 하고 있던 솔이 인혁의 대답에 고개를 돌렸고 인혁이 그런 솔을 빤히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누구세요?”

방어계 센티넬 겸 연구원 차인혁입니다.”

 

인혁의 자기소개에 솔이 웃으며 사실 알고 있었다고 장난스럽게 대꾸한다. 인혁은 이곳에 있는 동안 솔의 안전을 책임 질 센티넬이었다.

 

짓궂으시군요. 자아비판은 다 끝나셨습니까.”

.”

그럼 앞으로 일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미 세린에게서 솔과 지호의 관계에 대해 듣고 온 인혁이라 지금 말해주는 일정은 솔이 아닌 지호의 것이다. 인혁의 말에 따르면, 빠르면 나흘 아니면 닷새 후에나 지호를 만날 수 있다.

 

"저는요?"

"글쎄요. 하고 싶은 걸 하시면 될 듯합니다. 한 솔군의 신상이 노출되지 않았으니 위험요소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너무 멀리 나가는 것은 금지입니다."

"하고 싶은 거 있어요."

"뭔데요?"

"나도 갈래요. 거기."

 

바로 곁에서 안정화를 못해주더라도 같은 공간에 있으면 어느 정도 지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었는데 단칼에 거절당했다. 아마 세린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란 인혁의 말에, 그럼 자신이 허락을 맡아보겠다며 호기 있게 세린에게 전화를 건 솔이었지만 - 인혁보다 더 단칼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꿍얼꿍얼. 솔은 좀 더 자아비판을 하겠다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고, 인혁은 그 시간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조용히 솔의 방을 나섰다.

 

-

 

=나 같아도 거절하겠다.

아 됐어.”

 

그 날 밤, 훈련을 마친 지호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아닌 척 받았지만 훈련을 시작할 때부터 전화를 기다렸기에 솔의 목소리 톤은 조금 높았다. 지금도 한껏 삐친 티를 내지만 입 꼬리가 올라가 있다는 것을 지호는 모를 것이다. 지호도 힘든 훈련 뒤에 듣는 솔의 목소리가 좋은지 평소보다 말이 조금 더 많다. 그래봤자 전부 솔에 대한 걱정뿐이긴 했지만. 덥지는 않은지, 밥은 잘 먹었는지, 인혁은 잘 대해주는지 꼼꼼하게 묻는 지호의 질문에 솔은 쀼루퉁하지만 착실하게 대답을 해준다.

 

덥고, 밥은 먹었고, 차인혁 센티넬은 날 아~주 잘 감시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하핫.

 

지호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 한참 인혁에 대해 불평을 터트리던 솔에게 지호가 잠시 전화를 끊어야겠다고 한다.

 

=누가 왔나봐. 내가 다시 전화 걸게. 잠시만.

.”

 

거의 자정이 다되어 가는 시간에 찾아온 손님은 누굴까. 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폰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

 

", 누구"

 

전화를 끊고 문을 연 지호가 질문을 다 마치지 못한 채 놀란 눈으로 주사기가 박힌 제 팔뚝을 바라본다.

 

실례하겠습니다.”

 

잔뜩 굳은 얼굴을 한 현이 무너지는 지호를 안아들며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잠시 볼일을 보고 돌아온 인혁이 물었지만 솔의 시선은 휴대폰에 고정되어있다. 지호가 전화를 끊은 지 벌써 한 시간이 넘었다.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삼십분 내에는 다시 연락을 주던 지호였다인내심이 바닥난 솔이 일어난다. 이미 인혁에게 지호의 숙소가 어디인지 들었다.

 

"어디가십니까?"

"산책 좀"

"새벽 1시가 넘었습니다. 안 됩니다."

 

인혁이 앞을 막는다. 솔은 창문을 뛰어넘을까, 부탁을 할까, 때려눕힐까 고민을 하다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걸 택했다. 처음 있는 일이라 너무 불안하다는 솔의 말에, 시무룩한 얼굴에 인혁은 이마를 짚은 채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최대한 솔에게 맞춰주라는 세린의 말이 있었기에 결국 인혁은 솔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하지만, 지호의 얼굴만 보면 바로 돌아와야 하는 게 동행의 조건이었다.

 

"저 방입니다. 지호님이 주무시든, 깨어계시든 10분 내로 나오셔야 합니다."

"네네-"

 

숙소 앞에 도착하자 때마침 인혁의 휴대폰이 울린다. 인혁은 지호의 방위치를 알려주곤 전화를 받기 위해 솔에게서 멀어졌다. 솔이 그런 인혁을 잠시 바라보곤 지호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면 지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굉장히 기뻐할 지도 모른다. 지호의 방에 다가갈수록 심장 박동이 커져 솔이 잠시 멈춰 호흡을 골랐다.

 

"?"

 

잠시 걸음을 멈춘 것이 어쩌면 다행인 일일지도 몰랐다. 솔은 지호의 방에서 나오는 현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마주친 두 사람. 울었던 것인지 현의 눈가는 붉었고, 셔츠는 헝클어져있었다. 그리고 사내라면 모를 리 없는 비릿한 향. 아무런 해명도,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스쳐 지나가는 현의 옷자락을 솔이 잡았다. 하지만 현은 그런 솔의 손길을 가볍게 한 번 털어내고는 계단을 올라가버린다.

 

순간 눈앞이 어찔하다. 인혁이 달려 와 자신을 잡아주는 것 같다. 뭐라 말을 거는 것도 같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을 잃을 때까지도 지호의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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