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기대작들이 맞붙는 지상파 미니시리즈 라인에서 ‘막장극’간 대결이 치열해지고 있다. 수목극 ‘왜그래 풍상씨’(KBS2)와 ‘황후의 품격’(SBS)이 그 주인공이다.
경쟁에 불씨를 지핀 건 지난해 11월에 시작한 ‘황후의 품격’이다. 통쾌한 권선징악 스토리를 빠른 속도를 풀어내는 데 능한 스타 작가 김순옥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수위 높은 19금(禁) 장면이나 살인 등 자극적인 설정을 특유의 필력으로 담아내며 단숨에 수목극 정상 자리에 올랐다. TV 시청 층 분화로 웬만한 작품은 넘기 힘들다는 10% 고지를 일찍이 넘겼고, 지금은 14~16%(닐슨코리아)의 시청률을 나타내고 있다.
이 강자를 제친 이가 나타났으니, ‘왕가네 식구들’(2013·KBS2) ‘조강지처 클럽’(2007·SBS) 등으로 유명한 또 한 명의 ‘막장극 대가’ 문영남 작가의 신작 ‘왜그래 풍상씨’다. 지난달 9일 시작한 드라마는 설 연휴 이후 주 타겟층인 중·장년층에게 확실히 어필하며 급격한 상승세를 이뤄냈다. 지난주 7일 자에서 12.7%로 훌쩍 뛰었고, 14일 방송에선 14.8%로 올라서며 정상 자리를 탈환했다.
드라마 '황후의 품격'의 장면들. SBS 제공
두 작품 모두 확실한 재미요소는 가지고 있다. ‘황후의 품격’은 독특한 설정을 가져간다. 한국을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입헌군주제 국가로 설정하고, 황실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암투를 그려냈다. 무엇보다 속도감 있는 전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1일 종영을 앞둔 드라마는 현재 오써니(장나라)가 황태녀 이리(오아린)의 법적대리인으로 등극해 서열 역전을 펼쳤고, 태왕태후(박원숙) 죽음의 실체를 알아낸 후 통쾌한 복수극을 예고하고 있다.
‘황후의 품격’이 극에 빠져들어 욕을 하며 보게 된다면, ‘왜그래 풍상씨’는 고구마를 물 없이 삼킨 듯한 답답함에 가슴을 치면서 보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문 작가는 이번에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가족 얘기를 빼 들었다. 맏형 이풍상(유준상)이 진상(오지호) 정상(전혜빈) 화상(이시영) 외상(이창엽)이 벌려놓은 세상 온갖 문제들을 수습하는 과정을 그렸다. 마치 하이라이트를 60분으로 늘려놓은 듯한 느낌이다. 콩트처럼 동생들의 사건·사고가 간단없이 이어진다. 동생들의 진상 짓이 넘쳐나는데, 진상이가 일으킨 문제를 풍상이 해결하면, 그새를 못 참고 화상이가 사고를 치는 식이다.
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의 한 장면. 초록뱀미디어 제공
이처럼 주말극에서만 볼 수 있던 막장 코드와 작가들이 미니시리즈 라인인 평일 저녁 10시로 옮겨온 데는 경쟁력 제고의 이유가 큰 것으로 보인다. 연간 100편이 넘는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며 한층 치열해진 드라마 시장에서, 공중파 방송사들이 케이블과 종편에 맞서 시청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편성 전략인 셈이다.
전략이 성공한 듯 시청률 면에서는 확실히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시청자로서는 각 방송사가 주력으로 내놓은 기대작들을 골라볼 수 있었던 미니시리즈 시간대가 주말극과 비슷한 느낌의 드라마로 채워진다는 것이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닐 수 있다. 작심한 듯이 편성한 두 드라마가 성공을 거두면서 앞으로 비슷한 편성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커진 것도 배제할 수 없다.
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의 한장면. 초록뱀미디어 제공
자극적인 시퀀스는 강한 힘으로 눈을 붙들지만, 되레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인기에 힘입어 최근 4회를 연장해 21일 종영하는 ‘황후의 품격’은 지난 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작진 처벌을 요청드린다’는 청원이 올라오는 해프닝을 빚었다. 촛불로 앵무새의 꼬리 부분에 깃털에 불을 붙여 태우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다. 극 초반부터 지속돼온 선정성 논란으로 지친 기색을 표하는 시청자들도 일부 있다.
‘왜그래 풍상씨’는 바람 잘 날 없는 가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진정한 가족의 소중함을 말하기 위해 쾌속으로 달려가고 있다. 도박 불륜 사기 등 자극적인 사건·사고들이 그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다소 진부하다는 느낌도 함께다. 윤석진 드라마평론가는 “가족 구조가 많이 달라졌지만, 핏줄 의식이 여전히 강한 중·장년층에게는 매력적일 수 있는 내용”이라면서도 “작법이나 이야기 구성, 시의성 부분에서 올드하다는 느낌이다. 현실적인 공감대를 이뤄나가는 게 관건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