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자격'(2012)
태오(이성재)와 서래(김희애)에게 불륜은 겨우 숨 쉴 수 있는 도피처였다. 시댁과 변해버린 아내에 지친 두 사람이 유일하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는 둘 뿐이었다. 모두가 경쟁하고, 남을 의식하는 동네에서 그렇지 못한 섬 같은 두 사람이 마침내 사랑을 이루었을 때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불륜이라는 작은 카테고리에 가둬버리기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너무나 큰 구원이었다.
문제적 인물 : 태오(이성재) 온통 속물들로 가득한 대치동에서 유일하게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태오(이성재)는 사실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마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소년의 미소를 잃지 않았으며, 사회의 낮은 곳을 살피길 주저 하지 않는다. 해맑기까지 한 서래(김희애)가 그런 태오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 늦게 만났을 뿐 두 사람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인연이었다.
명대사
“나 그때 알았어. 이 사람 남자다. 나 여자다.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나, 여자 윤서래, 기쁘더라. 또 떨리고, 좋았어.”
'거침없는 사랑'(2002)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방송국의 자극적인 소재가 아닌, 정면으로 불륜이라는 이름의 사랑에 대해 그려낸 드라마는 많지 않다.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침없는 사랑'은 ‘결혼 이후에 사랑이 찾아온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끝내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질문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문제적 인물 : 정환(조민기) 유부남인 주제에 미혼인 경주에게 빠져드는 정환(조민기)을 '나쁜 놈‘이라고 욕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정환을 보고 있자면 욕보다는 설렘이 앞선다. 반듯하게 일과 가정을 꾸려온 남자가 아내 아닌 여자에게 끌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함께 고민하게 된다. 결혼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내 심장이 반응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말이다.
명대사
“나는요, 당신이 나한테 뭐라고 하든 그게 다 사랑한다는 말로 들려요.”
'불꽃'(2000)
'애인'이 불륜을 아름답게 묘사하기 위해 육체적인 접촉을 최소화했다면, '불꽃'은 결혼 대신 약혼을 택함으로서 지탄 받을 부담을 줄였다. 그러나 남녀의 끌림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한참 나아갔다. 강욱(이경영)과 지현(이영애)의 키스 신은 등장할 때마다 화제가 될 정도로 대충 하는 척만 하던 당시 드라마들과 구별되었다. 무엇보다 김수현표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답게 지현이 남자 혹은 부모가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불륜’이라는 코드에 지지 않을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문제적 인물 : 지현(이영애) 친구에게 왕자 놔두고 왕자 마부랑 바람났다는 힐난을 들었을 정도로 지현의 선택은 영리해 보이지 않는다. 재벌 2세 약혼자를 두고, 임자 있는 의사와 첫 눈에 반해 버린 지현은 불꽃같은 사랑의 힘을 증명하는 캐릭터다. 지현의 파마머리는 이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불륜녀들('내 남자의 아내' , '세 번 결혼한 여자')의 시초가 되었다.
명대사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내 발등에서 피가 철철 나. 다시 걸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바보 같은 사랑'(2000)
남편에게 맞는 여자, 아내에게 구박받는 남자는 그렇게 삶의 밑바닥에서 서로를 끌어안는다. 국민 드라마로 등극했던 경쟁작 '허준'의 시청률이 60%에 육박할 때 턱없이 낮은 시청률로 고전했지만 이들의 사랑은 불륜이라는 딱지 따위는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절절하고 아팠다. 설사 그 사랑이 '애인'처럼 근사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문제적 인물 : 옥희(배종옥) 옥희는 모자라 보인다. 자신을 하녀 정도로 취급하는 영배(김영호)에게도, 동정심 때문에 처음 관심을 보였던 상우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바보처럼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았던 옥희는 주변 사람 모두를 변화시키고, 마침내 상우와 함께 하게 된다. 그것이 사랑의 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명대사
“세상 사람 모두 용서 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바보 같은 짓이라 해도, 우리도 한번 쯤은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그게 정말 바보 같은 사랑이라 해도.”
'애인' (1996)
'애인'은 불륜의 당사자들을 단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을 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그려냈다. ‘아름다운 불륜’이라는 말을 유행시킬 만큼 윤오(유동근)와 여경(황신혜)의 관계는 서정적인 연출로 그려졌다. 불륜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수상쩍은 기운을 최대한 지워내려는 시도였고, '애인'은 그해의 신드롬이 됐다.
문제적 인물 : 여경(황신혜) '애인'이 유행시킨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윤오가 여경에게 선물한 머리핀은 ‘황신혜 머리핀’으로 불티나게 팔렸다. 세련된 전문직 여성 여경을 위해 황신혜가 준비한 옷과 가방, 화장법이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은 것처럼 불륜과 별개로 자신의 욕구에 무감한 남편을 떠난 여경의 선택 역시 지지를 받았다.
명대사
“그래요. 길 막고 사람들한테 한번 물어봅시다. 자기 자신들한테 솔직해 본 적 있냐고 한번 물어봅시다. 자신이 소중한 만큼 남 존중해 본 적 있냐고 한번 물어봐요. 아무도 우리한테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