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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아스달 연대기> 1화 초반부, 한때 경쟁자였지만 이젠 멸족 위기에 처한 뇌안탈 종족 생존자를 쫓으며 무백(박해준)은 독백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것은 최근 part2로 넘어갔지만 시청률에서도 서사적 재미에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스달 연대기> 스스로에게 필요한 질문처럼도 보인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한글 자모를 뒤집어 발음하며 뇌안탈 종족의 언어라고 할 때? 푸른 피의 뇌안탈과 붉은 피의 인간 사이에서 보라색 피의 혼혈 이그트가 태어났을 때? 상고 시대의 인간들이 승강기 기술로 그것도 노예 몇 명의 힘만으로 절벽을 오르내릴 때? 뇌안탈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타곤(장동건)과 대칸 부대가 몸부림에 가까운 춤사위를 펼칠 때? <아스달 연대기>가 만들어낸 가상 세계의 사건 중 미심쩍거나 헛웃음이 나오는 요소를 하나하나 나열하기란 어렵지 않다. 물론 상고 시대를 배경으로 하나의 매력적인 가상 세계를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도전 의식까지 비판하는 건 너무 엄혹하고 악의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바로 그것, 세계관 창작에 대한 집착이 제작비 540억원짜리 대작을 실망거리로 만든 주요 패착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하기 어렵다. 각 씨족 이름이나 가상의 용어 등 서사 이해를 위한 배경 지식의 진입 장벽이 높아서만은 아니다. 그것이 굳이 쿠키 영상을 추가해서까지 설명해야 할 정도로 서사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아서만도 아니다. <아스달 연대기>의 가장 큰 문제는 가상의 역사 창작이 첫 번째 목적이 되면서 서사가 뒷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앞서의 질문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에 대한 답은 의외로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전작이자 꽤 높은 평가를 받은 SBS <육룡이 나르샤>로까지 소급한다.

<육룡이 나르샤>는 잘 알려진 것처럼 역시 김영현, 박상연 작가 콤비가 집필한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뿌리깊은 나무>는 세종(한석규)의 한글 창제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걸 막으려는 세력 ‘밀본’과 세종 간 갈등을 정치철학적으로 풀어낸 수작이었다. 드라마 속 세종과 그 반대편의 사대부 엘리트주의자인 ‘밀본’의 정기준(윤제문)을 비롯해 각각의 인물에겐 나름대로 논리적 일관성을 지닌 신념이 있으며, 그 신념이 부딪치며 서사적 갈등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처럼 <뿌리깊은 나무>가 탁월한 팩션 사극이었던 건 한글 창제 및 반포라는 강력하면서도 매력적인 모티브를 중심에 놓고 충분히 의미 있는 갈등 구조와 납득할 만한 엔딩까지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리퀄로서의 <육룡이 나르샤>는 시대적 배경인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이란 모티브에서 서사적 추동력과 재미를 만들어내기보단, 전작 <뿌리깊은 나무>의 설정을 설명 및 보강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정도전(김명민)과 이방원(유아인)의 애증 관계는 조선 건국보단, 전작에서 ‘밀본’과 정도전에 대한 반감과 두려움을 드러낸 태종(백윤식)의 전사(前史)를 채우는 데 할애되며, 마찬가지로 전작에서 각 진영의 가장 강한 칼로 등장했던 무휼(윤균상)과 이방지(변요한)의 라이벌 관계와 그 둘이 당대 제일검에 오르는 과정을 세세하게 담아낸다. 덕분에 정작 조선 건국의 가장 중심적인 인물이자 ‘육룡’ 중 하나인 이성계는 이야기의 뒷전으로 물러난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과 세계관의 디테일을 채우는 것을 종종 혼동한다.

더 나쁘면서도 쓸데없는 건, 그들이 <뿌리깊은 나무> 프리퀄을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본인들의 또 다른 전작인 MBC <선덕여왕>의 그것까지 포함하는 통합 세계관을 만들려 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한반도 안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이니 같은 시공간을 공유한다고 가정할 수는 있다. 문제는 <선덕여왕>과의 서사적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신라 염종이 만든 수백년 된 비밀 결사 ‘무명’이 고려의 실세이자 흑막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초국가적이고 초역사적인 비밀 조직이 국가를 좌지우지한다는 설정이 추가될 때, 최고 권력자 이인겸(최종원), 구시대의 충신 최영(전국환), 신진 세력 이성계 등의 권력 투쟁 과정은 어딘가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밀본’이 초기 조선에 원한을 품은 엘리트 사대부 조직이라는 나름의 역사적 구체성을 가지고 있던 것과 비교해, 통일신라 시기부터 후삼국을 거쳐 고려 시대 말기까지 도도히 세력을 유지하는 ‘무명’은 통합 세계관을 위한 작가의 무리한 설정 놀음에 가깝다. 덕분에 김영현, 박상연이 만든 팩션 세계관의 디테일은 방대해졌을지 모르지만 <뿌리깊은 나무>와 <선덕여왕>에서 볼 수 있던 정치 사극으로서의 주제의식과 서사적 긴박감은 희석됐다. <육룡이 나르샤>가 별로인 작품까진 아닐지라도, 세계관 창조를 첫 번째 목적으로 했을 때 할 수 있는 안 좋은 시도는 거의 다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론일 수 있지만, 이것은 <아스달 연대기>에서 더 안 좋은 방향으로 구현된다.

<육룡이 나르샤>의 경험이 김영현, 박상연 작가에게 아쉬움으로 남았는지, 아니면 세계 창조에 대한 더 큰 자신감을 줬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그들은 전작에서 부린 욕심을 더더욱 제한 없이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아스달 연대기>의 문제점으로 상고 시대에 대한 고증 오류, 쉽게 원전을 유추할 수 있는 수많은 레퍼런스의 도용, 뒤죽박죽인 세계관을 이야기한다. 모두 맞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결코 세계관의 교통정리를 통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가령 첫 화에서 뇌안탈 부족에게 농경과 재배 문화를 전파하려는 아스 사람들의 시도는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까지 언급한 농업혁명(지적 발전을 통해 수렵 채집에서 농업으로 이행했다는 믿음) 담론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한다. 하지만 괜찮다. 농업혁명 담론이 우세했던 건 그것이 이야기로서 매력적이고 정합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호모사피엔스의 승리 과정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 부분을 그럴싸한 이야기로 채우는 것이 이야기꾼의 역할이자 재주다. 하여 <아스달 연대기>의 가장 큰 문제는 설정의 부실함이 아니라 설정에 대한 집착이다. 작가들은 아스라는 가상의 시공간 안에서 이야기의 상상력을 발휘하기보다는 그 시공간의 디테일을 채우기 위해 애쓴다. part2에 이르렀음에도 가장 큰 갈등의 축이어야 할 은섬(송중기)과 타곤은 제대로 부딪치지 않고, 누가 진짜 아라문 해슬라의 재림일지에 대한 복선만 주야장천 반복되는 식이다. 이쯤 되면 이것이 은섬의 영웅 서사인지, 가상의 신 아라문 해슬라에 대한 신약인지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작가들은 <육룡이 나르샤>에서 그러했듯, <아스달 연대기>를 본인들이 만들어놓은 아라문 신화와의 통합 세계관으로 구성하느라 정작 캐릭터와 드라마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창작자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대신 창조주 역할에 매몰되어 자신의 세계를 구체화할 때, 그 세계는 구체적으로 왜곡된다. 퓨전 사극 혹은 판타지 사극으로서 인물들이 현대적 어법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허용될 수 있다. 작가들의 전작이 그랬고 김원석 감독의 KBS <성균관 스캔들>이 그러했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굳이 ‘선물’이란 단어 대신 옛말 ‘손시시’나 가상의 고대어 ‘올림사니’ 등의 어휘를 자막까지 써가며 대사에 넣어 가상의 언어 규칙을 채워 넣는다. 그러면서도 정작 인물들은 위병단이나 왕, 매혼제 등 한자에 기반한 단어 역시 아무 위화감 없이 사용한다. 퓨전 사극의 문법으로 슬쩍 허용될 수 있었던 문제가 작가들의 집착 때문에 명백한 세계관 오류가 된 셈이다. 마찬가지로 사유재산 개념과 농업, 강력한 중앙집권적 군사력 등 아스의 화려한 문명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할수록, 그럼에도 왕과 국가가 없다는 설정과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타곤의 야심은 세계관 안에서 제대로 맞물리지 못한다. 다시 말해 가상의 역사로서의 연대기를 써나가는 데 집중하느라 정작 주인공들의 매력과 드라마는 휘발되고, 그 가상 세계의 구체성도 오류투성이가 된 셈이다. 이 때문에 최근 <아스달 연대기>에 대해 한국 드라마의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옹호하는 기사들에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이 어느 ‘설정 덕후’들의 설정집, 혹은 실패한 대본에 그쳤다면 별문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540억원의 돈이 투입되었다면, 수많은 인력이 투입되었다면, 심지어 그 과정에서 누군가 혹사당하고 다치기까지 했다면, 과연 한국 드라마 시장과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노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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