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계 거장' 안판석(57) 감독이 또 하나의 수작을 탄생시켰다. 리얼 멜로 JTBC 금토극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예쁜 누나')'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자극적인 요소는 없었다. 강력한 한 방도 없었다. 평범한 일상이 전해 주는 메시지는 그 이상의 힘을 가졌다. 손예진(윤진아)·정해인(서준희) 커플을 중심으로 두 사람의 성장과 변화를 담아냈다. '우리는 진짜 사랑하고 있는가?'란 물음을 남기며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방송 말미에 손예진·정해인 커플에게 위기가 드리우면서 이야기 전개를 둘러싼 의견이 엇갈렸다. 관심이 컸던 만큼 후폭풍도 뜨거웠다.
- 손예진은 어떤 매력을 가진 배우였나.
"손예진은 아트 무비에 들어가서 연기해도 그 작품을 메이저로 끌어올릴 것 같다. 단 하나뿐인 유일한 배우다. 포지티브한 에너지가 있다.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면 존재만으로도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파워가 있는 배우다. 항상 하는 작품마다 살려 냈다. 그래서 처음부터 '예쁜 누나' 주인공으로 손예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딱 한 사람에게만 연락했는데 그게 됐다. 네거티브함도 다 보고 결정해 줬다. 너무 놀랐다.(웃음) 그리고 200% 임무를 완수했다. '민폐'란 비난까지 꿀꺽 삼키고 견뎌 냈다. 같이 일해 보면 그 친구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손예진은 쫑파티 날 스태프들과 동료 배우들에게 박수받고 퇴장했다. 퇴장하는 순간까지 많이 울었다. 펑펑 울었다. 본인도 무얼 해냈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 진짜 멋있는 친구다. 책임감을 가지고 피하지 않고 그 작은 체구로 다 견뎌 냈다."
- 정해인 칭찬도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
"쫑파티 날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정해인한테 느낀 점을 얘기해 줬다. 보통 새로운 스타의 탄생은 대부분 외모와 함께 온다. 근데 정해인은 연기력으로 온 것이다. 유일한 경우다. 이 얘기를 해 줬다. 클립 3개를 보고 캐스팅했는데 연기를 너무 잘하더라. 얼굴이 안 보이고 연기만 보였다. 본인도 예쁘장한 남자로 소모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더라. 연기를 잘하고 싶어 한다. 믿어도 되는 배우다. 연기 생활을 하는 동안 스스로 내려오기 전엔 안 내려올 것이다. 인성과 자세 이런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드라마 속 준희의 아름다운 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준희 그 자체였다. 따뜻하고 세심하고 용기 있고 생각이 굉장히 깊다."
-최종 엔딩 크레디트까지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다 끝났다는 상실감이 컸다. 실제로 촬영 일수가 점점 줄어 10일이 남고 5일이 남으니 '진짜 끝나면 어떡하나?'란 공포가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손예진도, 정해인도 그랬다. 모든 조연들, 스태프들까지 같은 마음이었다. 이렇게 촬영 날짜가 줄어드는 게 아까운 건 처음이라고들 하더라."
- 결말을 둘러싸고 저마다의 의견이 쏟아졌다.
"두 사람한테 고통이 닥쳐오기 시작하는 대목부터 이러한 반응을 예상했다. 위기가 있어야 소중한 것을 깨닫지 않나. 후반부에 가서 극을 그렇게 전개하리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어느 대목 이후에는 나 또한 관객이자 대본의 첫 독자로서 두 사람이 헤어지면 안 되겠더라. 못 견디겠더라. 김은 작가한테 도저히 안 되겠다고 했다. 너무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헤어지게 하냐고 애걸복걸했다. 모든 방향을 틀어서 결혼시켜야겠다고 했다. 진아와 준희를 결혼시켜서 신혼 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극이라는 건 16권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고 그 꼴을 갖춰야 한다. 재미만 있다고 그게 인생인가. 인생은 고통이 아닌가. 고통을 겪어 봐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각오에 각오를 거듭해서 그런 길을 간 것이다."
- 손예진도 이 지점에 대해 알고 시작했나.
"대본은 지난해 10월에 다 쓴 상태였다. 손예진이라는 배우가 대본 전체를 읽으면 연기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그 부분에 대해 만류했지만, 부정적인 부분까지 꿀꺽 삼킬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손예진이라는 배우를 믿었다. '대본에 너무 감동받았고 사명감이 생긴다'면서 '하고 싶다'고 했다. 대본 전체를 다 본 뒤에 굳게 마음먹은 것이다."
- 다 알았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참 매력적인 배우다. 텍스트로 이해하고 시작했다. 당시 비난받을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다 짚어 냈다. '민폐'란 표현까지 얘기가 나왔었다. 욕먹을 텐데 어떻게 하냐고 하니, '가자'고 하더라. 예술을 사랑하는 배우였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해냈다."
- 제주에서 진아와 준희가 재회한 뒤에 어떻게 됐을까.
"착하디착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알콩달콩 사랑해서 위기 없이 결혼해 살아가는 커플이 얼마나 될까.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위기 없이 살아가는 커플을 본 적이 있나. 인생은 그런 것이다. 누구나 겪는 걸 다 겪어야 한다. 피해 갈 수 없다. 그게 바로 보편성이다. 인간은 보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하나하나가 있는데 결국 한 인생 속에서 평균치를 찾아간다고 생각한다."
- 진아와 준희의 재회는 보편성인가.
"이런 건 특수성이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긴 어렵다. 다시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두 산은 바라볼 수 있으나 만날 수는 없다'는 시가 있는 것이다. 참 어려운 일인데 다시 만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준희의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준희의 성장은 바로 용기였다. 온 마음으로 그 용기를 낸 것이다."
-우산과 비가 진아·준희 커플을 잇는 매개체였나.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웃음) 모먼트를 만들어내면서 갔는데 중요한 때 비가 내렸더라. 그런 대목에서 OST 제목을 '썸띵 인 더 레인(Something In The Rain)'으로 정했다."
- 올드 팝을 사용하는 등 OST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음악이 올드하다는 댓글을 읽었는데 올드하다는 단어를 촌스럽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언어가 본질에 대응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난 오히려 세련됐다고 생각한다. 그게 올드하면 뉴는 무엇인가. 이번에 OST에 사용한 올드 팝은 원곡 버전이 아니었다. 카를라 브루니 버전의 '스탠드 바이 유어 맨(Stand By Your Man)'이 좋았다. 브루스 윌리스는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전문 가수처럼 잘 부르지 않아도 맛이 있다. 그래서 그 버전의 '세이브 더 라스트 댄스 포 미(Save The Last Dance For Me)'를 사용했다."
- 어디서 영감받았나.
"처음에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해 볼까 했다. 작년에 읽었는데 진짜 명작이더라. 2018년에 19세기 소설을 적용하는 것은 어려웠다. 번안하고 극화하는 데까지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때 주인공인 안나 역으로 손예진을 생각했다. 손예진과 작품을 하고 싶었다. 그 작품이 어렵다면 30대 중반의 여성 이야기로 손예진과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 30대 중반 여성들을 직접 만나면서 스토리를 잡아 갔다. 그러던 중 김승일 시인의 '나의 자랑 이랑'을 봤다. 가슴을 쳤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어제와 오늘은 분명히 다르다. 오늘의 일상은 살아남은 자의 일상이다. 일상에 특별함이 있다. 세심히 지켜보면 그 다름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과 진짜 교감하고 싶어서 만든 작품이다. 그런 교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 소위 막장 요소가 없었다.
"피할 길이 없지만, 타임머신이나 암, 출생의 비밀 등 요소들을 빼고 싶었다. 새로운 서사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늘 시도는 해 왔었는데 8회쯤 가서 고꾸라졌다. 이번엔 16회까지 가고 싶었다. 처음부터 짜 놓지 말고 방향성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를 밀고 나가 보자고 했다. 쉽지 않은 실험인데 그러한 실험을 해 본 것이다. 그래서 누구한텐 욕먹고 누구한텐 칭찬받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실험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타임머신이나 암만 하겠나. 드라마는 한 집단의 정서를 좌우하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장르다.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 사심으로 다루거나 값싼 것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
- 초반엔 '누나'에 집중했지만 후반부엔 '예쁜'에 초점을 맞췄다. 의도적인 것이었나.
"누구나 소중히 다루는 게 있지 않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 처음부터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사랑이 무엇이겠나. 진짜 사랑은 깊이깊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주의 깊게 물어보고 들어야 한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쉬운 게 아니다. 살면서 어떤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는지를 기억해 봐라. 진짜 사랑하면 다 외운다.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연애를 했던 한 달의 기록을 떠올려 보라. 100% 생각날 것이다. 없으면 실패한 것이다.(웃음) 사랑은 대충대충 하면 안 된다. 인간을 얻는 것이지 않나. 그런 면에서 진아와 준희는 위대한 사람들이다. 늘 사랑에 최선을 다하지 않나."
- 진아란 캐릭터가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착하니까 사람들이 모든 짐을 진아에게 떠넘겨 버린다. 진아는 꿀꺽 삼키고 다 짊어진다. 그게 고귀한 점이자 비난받는 점이다. 하지만 그게 진아의 매력이다. 자기에게 유리한 걸 좇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말만 준비해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맞춰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반응하는 친구다. 늘 인간적인 선택을 해서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이다. 세상은 비인간적으로 살면 편하게 살 수 있다. 인간적으로 세상을 살면 힘들어진다. 그리고 35세라는 나이는 부모의 감정적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나이다. 그걸 심리학 용어로 '감정의 쓰레기통'이라고 부른다. 아버지가 퇴직해서 소파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엄마한테 세끼를 다 얻어먹지 않나. 엄마는 딸한테 그런 부분에 대해 하소연하고, 아빠는 딸과 술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정작 딸은 양쪽에서 힘들어한다.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운 나쁜 결혼을 많이 한다. 사랑이 아니라 도피처를 찾기 위해 결혼하는 경우들이 있다."
- 단순한 멜로가 아니었다.
"장르로 구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인생 이야기가 있는데 이건 그냥 인생 이야기다. 한 사람의 인생을 더듬어 보려면 가족 관계·교우 관계·직장 관계, 사랑을 다뤄야 한다. 그것이 각각 다른 가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새끼줄처럼 꼬여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
- 진아 엄마(길해연·김미연 역)의 교제 반대가 상투적이었다는 평이 있다.
"서사물에서 상투적인 건 '클리셰'다. 클리셰와 아닌 것이 구별돼야 하는데, 우리가 먹고 자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건 클리셰가 아니다. 뭔가 약간 독특한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꼭 나오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클리셰다. 딸을 컨트롤하려는 엄마? 그건 클리셰가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어떻게 다루냐가 관건이었다. 한 인간의 인생을 구성하는 데 부모 문제는 크다. (반복되다 보니) 지겨울 수 있어도 그 정도는 다루는 게 예의라고 봤다. 어떻게 엄마를 가벼이 보고 지나가나. 엄마가 무한한 사랑을 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사람을 컨트롤하려는 건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컨트롤링'이라는 점을 다루고 싶었다."
- 안판석 PD에게 '예쁜 누나'란 무엇이었나.
"내 인생에서 내가 고쳤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였다."
-차기작 계획은.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최대한 빨리 하려고 한다.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를 하고 3년 만에 '예쁜 누나'를 했다. 점점 나이를 먹는다. 앞으로 얼마나 더하겠나. 그래서 빨리빨리 많이 하려고 한다. 내년 초에 신작을 하려고 한다."
자극적인 요소는 없었다. 강력한 한 방도 없었다. 평범한 일상이 전해 주는 메시지는 그 이상의 힘을 가졌다. 손예진(윤진아)·정해인(서준희) 커플을 중심으로 두 사람의 성장과 변화를 담아냈다. '우리는 진짜 사랑하고 있는가?'란 물음을 남기며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방송 말미에 손예진·정해인 커플에게 위기가 드리우면서 이야기 전개를 둘러싼 의견이 엇갈렸다. 관심이 컸던 만큼 후폭풍도 뜨거웠다.
- 손예진은 어떤 매력을 가진 배우였나.
"손예진은 아트 무비에 들어가서 연기해도 그 작품을 메이저로 끌어올릴 것 같다. 단 하나뿐인 유일한 배우다. 포지티브한 에너지가 있다.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면 존재만으로도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파워가 있는 배우다. 항상 하는 작품마다 살려 냈다. 그래서 처음부터 '예쁜 누나' 주인공으로 손예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딱 한 사람에게만 연락했는데 그게 됐다. 네거티브함도 다 보고 결정해 줬다. 너무 놀랐다.(웃음) 그리고 200% 임무를 완수했다. '민폐'란 비난까지 꿀꺽 삼키고 견뎌 냈다. 같이 일해 보면 그 친구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손예진은 쫑파티 날 스태프들과 동료 배우들에게 박수받고 퇴장했다. 퇴장하는 순간까지 많이 울었다. 펑펑 울었다. 본인도 무얼 해냈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 진짜 멋있는 친구다. 책임감을 가지고 피하지 않고 그 작은 체구로 다 견뎌 냈다."
- 정해인 칭찬도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
"쫑파티 날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정해인한테 느낀 점을 얘기해 줬다. 보통 새로운 스타의 탄생은 대부분 외모와 함께 온다. 근데 정해인은 연기력으로 온 것이다. 유일한 경우다. 이 얘기를 해 줬다. 클립 3개를 보고 캐스팅했는데 연기를 너무 잘하더라. 얼굴이 안 보이고 연기만 보였다. 본인도 예쁘장한 남자로 소모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더라. 연기를 잘하고 싶어 한다. 믿어도 되는 배우다. 연기 생활을 하는 동안 스스로 내려오기 전엔 안 내려올 것이다. 인성과 자세 이런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드라마 속 준희의 아름다운 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준희 그 자체였다. 따뜻하고 세심하고 용기 있고 생각이 굉장히 깊다."
-최종 엔딩 크레디트까지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다 끝났다는 상실감이 컸다. 실제로 촬영 일수가 점점 줄어 10일이 남고 5일이 남으니 '진짜 끝나면 어떡하나?'란 공포가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손예진도, 정해인도 그랬다. 모든 조연들, 스태프들까지 같은 마음이었다. 이렇게 촬영 날짜가 줄어드는 게 아까운 건 처음이라고들 하더라."
- 결말을 둘러싸고 저마다의 의견이 쏟아졌다.
"두 사람한테 고통이 닥쳐오기 시작하는 대목부터 이러한 반응을 예상했다. 위기가 있어야 소중한 것을 깨닫지 않나. 후반부에 가서 극을 그렇게 전개하리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어느 대목 이후에는 나 또한 관객이자 대본의 첫 독자로서 두 사람이 헤어지면 안 되겠더라. 못 견디겠더라. 김은 작가한테 도저히 안 되겠다고 했다. 너무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헤어지게 하냐고 애걸복걸했다. 모든 방향을 틀어서 결혼시켜야겠다고 했다. 진아와 준희를 결혼시켜서 신혼 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극이라는 건 16권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고 그 꼴을 갖춰야 한다. 재미만 있다고 그게 인생인가. 인생은 고통이 아닌가. 고통을 겪어 봐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각오에 각오를 거듭해서 그런 길을 간 것이다."
- 손예진도 이 지점에 대해 알고 시작했나.
"대본은 지난해 10월에 다 쓴 상태였다. 손예진이라는 배우가 대본 전체를 읽으면 연기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그 부분에 대해 만류했지만, 부정적인 부분까지 꿀꺽 삼킬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손예진이라는 배우를 믿었다. '대본에 너무 감동받았고 사명감이 생긴다'면서 '하고 싶다'고 했다. 대본 전체를 다 본 뒤에 굳게 마음먹은 것이다."
- 다 알았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참 매력적인 배우다. 텍스트로 이해하고 시작했다. 당시 비난받을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다 짚어 냈다. '민폐'란 표현까지 얘기가 나왔었다. 욕먹을 텐데 어떻게 하냐고 하니, '가자'고 하더라. 예술을 사랑하는 배우였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해냈다."
- 제주에서 진아와 준희가 재회한 뒤에 어떻게 됐을까.
"착하디착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알콩달콩 사랑해서 위기 없이 결혼해 살아가는 커플이 얼마나 될까.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위기 없이 살아가는 커플을 본 적이 있나. 인생은 그런 것이다. 누구나 겪는 걸 다 겪어야 한다. 피해 갈 수 없다. 그게 바로 보편성이다. 인간은 보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하나하나가 있는데 결국 한 인생 속에서 평균치를 찾아간다고 생각한다."
- 진아와 준희의 재회는 보편성인가.
"이런 건 특수성이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긴 어렵다. 다시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두 산은 바라볼 수 있으나 만날 수는 없다'는 시가 있는 것이다. 참 어려운 일인데 다시 만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준희의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준희의 성장은 바로 용기였다. 온 마음으로 그 용기를 낸 것이다."
-우산과 비가 진아·준희 커플을 잇는 매개체였나.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웃음) 모먼트를 만들어내면서 갔는데 중요한 때 비가 내렸더라. 그런 대목에서 OST 제목을 '썸띵 인 더 레인(Something In The Rain)'으로 정했다."
- 올드 팝을 사용하는 등 OST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음악이 올드하다는 댓글을 읽었는데 올드하다는 단어를 촌스럽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언어가 본질에 대응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난 오히려 세련됐다고 생각한다. 그게 올드하면 뉴는 무엇인가. 이번에 OST에 사용한 올드 팝은 원곡 버전이 아니었다. 카를라 브루니 버전의 '스탠드 바이 유어 맨(Stand By Your Man)'이 좋았다. 브루스 윌리스는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전문 가수처럼 잘 부르지 않아도 맛이 있다. 그래서 그 버전의 '세이브 더 라스트 댄스 포 미(Save The Last Dance For Me)'를 사용했다."
- 어디서 영감받았나.
"처음에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해 볼까 했다. 작년에 읽었는데 진짜 명작이더라. 2018년에 19세기 소설을 적용하는 것은 어려웠다. 번안하고 극화하는 데까지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때 주인공인 안나 역으로 손예진을 생각했다. 손예진과 작품을 하고 싶었다. 그 작품이 어렵다면 30대 중반의 여성 이야기로 손예진과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 30대 중반 여성들을 직접 만나면서 스토리를 잡아 갔다. 그러던 중 김승일 시인의 '나의 자랑 이랑'을 봤다. 가슴을 쳤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어제와 오늘은 분명히 다르다. 오늘의 일상은 살아남은 자의 일상이다. 일상에 특별함이 있다. 세심히 지켜보면 그 다름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과 진짜 교감하고 싶어서 만든 작품이다. 그런 교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 소위 막장 요소가 없었다.
"피할 길이 없지만, 타임머신이나 암, 출생의 비밀 등 요소들을 빼고 싶었다. 새로운 서사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늘 시도는 해 왔었는데 8회쯤 가서 고꾸라졌다. 이번엔 16회까지 가고 싶었다. 처음부터 짜 놓지 말고 방향성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를 밀고 나가 보자고 했다. 쉽지 않은 실험인데 그러한 실험을 해 본 것이다. 그래서 누구한텐 욕먹고 누구한텐 칭찬받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실험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타임머신이나 암만 하겠나. 드라마는 한 집단의 정서를 좌우하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장르다.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 사심으로 다루거나 값싼 것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
- 초반엔 '누나'에 집중했지만 후반부엔 '예쁜'에 초점을 맞췄다. 의도적인 것이었나.
"누구나 소중히 다루는 게 있지 않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 처음부터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사랑이 무엇이겠나. 진짜 사랑은 깊이깊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주의 깊게 물어보고 들어야 한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쉬운 게 아니다. 살면서 어떤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는지를 기억해 봐라. 진짜 사랑하면 다 외운다.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연애를 했던 한 달의 기록을 떠올려 보라. 100% 생각날 것이다. 없으면 실패한 것이다.(웃음) 사랑은 대충대충 하면 안 된다. 인간을 얻는 것이지 않나. 그런 면에서 진아와 준희는 위대한 사람들이다. 늘 사랑에 최선을 다하지 않나."
- 진아란 캐릭터가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착하니까 사람들이 모든 짐을 진아에게 떠넘겨 버린다. 진아는 꿀꺽 삼키고 다 짊어진다. 그게 고귀한 점이자 비난받는 점이다. 하지만 그게 진아의 매력이다. 자기에게 유리한 걸 좇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말만 준비해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맞춰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반응하는 친구다. 늘 인간적인 선택을 해서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이다. 세상은 비인간적으로 살면 편하게 살 수 있다. 인간적으로 세상을 살면 힘들어진다. 그리고 35세라는 나이는 부모의 감정적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나이다. 그걸 심리학 용어로 '감정의 쓰레기통'이라고 부른다. 아버지가 퇴직해서 소파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엄마한테 세끼를 다 얻어먹지 않나. 엄마는 딸한테 그런 부분에 대해 하소연하고, 아빠는 딸과 술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정작 딸은 양쪽에서 힘들어한다.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운 나쁜 결혼을 많이 한다. 사랑이 아니라 도피처를 찾기 위해 결혼하는 경우들이 있다."
- 단순한 멜로가 아니었다.
"장르로 구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인생 이야기가 있는데 이건 그냥 인생 이야기다. 한 사람의 인생을 더듬어 보려면 가족 관계·교우 관계·직장 관계, 사랑을 다뤄야 한다. 그것이 각각 다른 가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새끼줄처럼 꼬여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
- 진아 엄마(길해연·김미연 역)의 교제 반대가 상투적이었다는 평이 있다.
"서사물에서 상투적인 건 '클리셰'다. 클리셰와 아닌 것이 구별돼야 하는데, 우리가 먹고 자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건 클리셰가 아니다. 뭔가 약간 독특한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꼭 나오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클리셰다. 딸을 컨트롤하려는 엄마? 그건 클리셰가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어떻게 다루냐가 관건이었다. 한 인간의 인생을 구성하는 데 부모 문제는 크다. (반복되다 보니) 지겨울 수 있어도 그 정도는 다루는 게 예의라고 봤다. 어떻게 엄마를 가벼이 보고 지나가나. 엄마가 무한한 사랑을 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사람을 컨트롤하려는 건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컨트롤링'이라는 점을 다루고 싶었다."
- 안판석 PD에게 '예쁜 누나'란 무엇이었나.
"내 인생에서 내가 고쳤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였다."
-차기작 계획은.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최대한 빨리 하려고 한다.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를 하고 3년 만에 '예쁜 누나'를 했다. 점점 나이를 먹는다. 앞으로 얼마나 더하겠나. 그래서 빨리빨리 많이 하려고 한다. 내년 초에 신작을 하려고 한다."
안판석 이번에 너무 실망.. 연출도 진짜 별로였음
손예진은 그 대본을 다 보고 들어갔다는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앞으로 손예진 드라마는 믿고 거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