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은 실패한 사랑을 억겁 동안 붙잡고 있다 놓아주는 이야기였다면,
드라마는 실패한 사랑을 다시 시작하고 이어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드라마 기획 의도가 이거더라
이들의 여정에서 우리는 묻게 될 것이다.
참혹하고 비극적으로 끝난 사이였다고 해서
함께 나눴던 아름다운 순간들마저 사라지는 걸까.
시작부터 어긋난 사이라고 해서,
그 끝도 반드시 어긋나라는 법이 있을까.
하여 우리는 끝내 깨닫게 될 것이다.
어느 날엔가 마주친 불행이 과거에 우리가 소홀히 했던
어느 시간의 보복이었다 해서
노여워하거나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난 생의 업보는 생마다 던져지는 질문이며,
이번 생에 다시 시작하게 된 이 어리석고 용감한 사랑만이
어김없이 그들을 덮쳐오는 비극적 운명에 맞설 새로운 변수이자
유일한 구원이고, 희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떤 사람은 수십 년 동안 부부로 사는 것도 지겨운데
전생의 인연이라는 이유만으로 천 년 넘게 붙잡고 있는 건 집착이고 스토킹이라고 하더라
사람의 삶은 길어야 백 년이고, 그 백 년 중에도 수없이 마음이 바뀌잖아
사랑의 실질적인 유효 기간은 3년이라고 하고,
남자든 여자든 다양한 유전자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이성한테 끌리는 게 생물학적 본능이라고 하고
그런데 <라이프 오브 파이> 감독이 말했듯 우리는 현실을 뛰어넘는 걸 보고 싶어 하니까,
나는 픽션에서는 현실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고 싶어
픽션에 현실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스토킹이니 집착이니 치부해 버리고 싶지도 않고
일단 현실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그걸로 끝이잖아
서로 왜 그랬는지 묻고 싶어도 죽은 사람에게 답을 들을 수도, 죽은 사람에게 답해줄 수도 없고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죽음을 뛰어넘어서 도하와 리타/영화가 어디서 어긋난 건지 서로에게 직접 묻고 답을 얻고,
그를 토대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성장하고 화해하고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게 좋았어
리타는 이 사랑을 계속했다가는 우리는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고 다른 사람들까지 계속 해치며 살 수 없다고,
혼자 우리 둘 다 죽어야 이 지옥이 끝난다고 결론을 내리고 도하를 죽였고,
드라마의 영화는 다시 사랑하게 된 도하를 죽일 수 없으니 자기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만,
우리 운명이 다시는 비극이 되지 않게 하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지키겠다는 도하의 약속을 듣고 도하와 다시 함께하기로 다짐해
도하는 그저 나락까지라도 내가 함께하면 되고, 지위도 재산도 다 버리고 리타랑 새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1500년 만에 영화를 통해 리타의 진심을 알게 되고, 리타가 힘들어했던 부분을 스스로 고쳤어
막판에 영화네 선배 언니, 준오 매니저랑 같이 다닌 거, 둘만 오래 같이 있었으면 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웠지만
도하가 과거에 리타를 구하기 위해 어린아이와 노인까지 죽이려 했던 괴물이 되어갔던 것과 달리,
현대에서는 오히려 아무도 해치지 않고 영화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까지 지켜주고,
그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서 웃기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게 좋았어 평범한 현대인으로서의 삶을 잠시라도 누리고,
결국엔 미래에는 아무 괴로운 기억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게 뭉클하고
연인 손에 죽어가면서도 그 연인에게 살라고 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서른 살 이후로도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려는 일념으로 자기 존재 자체를 포기하는 사랑이 너무 크더라
집착이니 스토킹이니 하고 말해버리기에는 너무 크고 간절한 사랑이야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질 운명이었던 도하를 붙잡아서 결국 1600년, 스무 번의 생 만에 이어진 영화의 사랑도 간절하고
둘 다 어리석고 무모한 사랑인데도 그 사랑이 죽음도 몇 번의 생도 뛰어넘어서 결국 기적을 이루는 게 난 좋았어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사랑이지만, 그렇게 누군가를 절절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현실에서도 종종 기적을 일으키니까
몇십 년만 같이 살아도 질려버려, 사랑은 유효 기간이 3년이야,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이러기보단
그런 마음, 그런 사랑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어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