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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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드라마로만 오면 ‘한국 남자 패치’가 붙는 걸까.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tvN <계룡선녀전>, JTBC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이야기다. 각 원작 웹툰의 남주인공 정이현과 장선결은 각각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한 동시에 굉장히 예민한 남자들이다. 생물학과 교수인 이현은 경험에 기초한 지식만을 믿고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관념을 배격하는 실증주의자이며, 유명 청소업체 ‘청소의 요정’ 최고경영자(CEO)인 선결은 모르는 사람과 옷깃만 스쳐도 견디지 못하는 극도의 결벽증을 갖고 있다. 어떤 의미로든 까다롭고 곁에 두기 피곤한 타입의 사람들이다. 다만 다행히도 이들은 자신들의 예민함을 아무 때고 무기처럼 휘두르진 않는다. 이현은 스스로를 선녀라 주장하는 선옥남이 자신의 눈에만 젊은 여성으로 보이는데 대해 혼란스러워하지만, 그에 대한 논리적 해답을 궁리할지언정 옥남에게 까칠하게 굴진 않는다. 선결 역시 호감을 갖고 대화 중이던 여성의 귀에서 귀지를 발견하자 식겁하지만, 그 앞에선 티를 내지 않고 신사적으로 헤어질 줄은 안다. 그들은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과 자신의 세계를 세상에 강요하는 것을 어느 정도 구분할 줄 안다. 이처럼 까다로우면서도 어딘가 아슬아슬한 이들의 정체성은, 하지만 드라마로 옮겨오며 훨씬 단순하고 무례한 방식으로 변화한다.

물론 캐릭터와 대사를 변주하는 건 드라마 제작진의 재량이다. 좋은 웹툰 원작에 세대론적인 관점까지 잘 이식했던 tvN <미생>의 경우 장백기(강하늘) 캐릭터를 장그래(임시완)와 대비되는 냉철하고 냉정한 젊은 엘리트로 그려내면서 주제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 바 있다. <계룡선녀전>과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의 문제는 이현과 선결, 두 주요 남성 캐릭터에게서 원작의 개성을 지우고 한국 드라마 속 흔한 ‘버럭남’ 혹은 ‘까도남’ 캐릭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현의 경우 앞서의 장면 이후 옥남을 해코지하나 싶어 등장한 구 선생(안길강)에게 목청을 높여 대거리를 하다가 핫도그에 발라진 케첩을 구 선생 셔츠에 묻히고선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원작의 이현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과학자로서의 의심을 거두지 않고 탐구하느라 미처 예의를 지키지 못할 때도 있는 인물이었다면, 드라마의 이현은 그냥 예의가 없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선결 역시 만화 원작에선 자신의 위생 기준을 지키는데 신경이 곤두서서 종종 과민 반응을 보였던 인물이라면, 드라마에선 대놓고 까칠함을 드러낸다. 만화 원작에서 오솔을 오해하고 그를 해고할 명분만 궁리하던 선결이 선량한 고용주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 그는 자신이 오솔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고, 오솔이 한 명 몫을 해내는 직원으로서 동료들에게 인정받자 자신의 계획을 일시적으로 포기할 줄도 아는 인물이었다. 반면 드라마 속 선결은 비서를 대동한 채 시종 거만한 표정으로 돌아다니며, 업무 중 실수한 오솔(김유정)을 혼내는 과정에서 “어울리지 않는 옷이며 화장이며 끝나고 소개팅 하러 갑니까? 아니면 괜찮은 고객 있으면 한 번 들이대 보려고?”라며 실수와 관계없는 것까지 싸잡아 모욕한다. 경험적 진실에 집착하던 이현이 드라마를 통해 흔한 ‘버럭남’이 되었다면, 선결은 싸가지 없는 흔한 재벌 3세가 됐다. 원작에서의 그들이 괴팍하면서도 매력적이었던 건, 마냥 ‘마이웨이’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이 실은 세상과의 괴리 안에서 수많은 마음속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민함의 본질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의 그들은 마음속 전쟁은커녕 단 한순간도 참지 않는다. 회식 자리에서 옥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조교들에게 술을 권하며 조용히 시키는 동일한 장면에서조차 드라마의 이현은 벌떡 일어나 “조교들!”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야 만다. 활자로 대사를 보는 만화와 달라 혹여 대사를 듣지 못할 것을 염려한 제작진의 배려일까.

왜 안하무인에 목소리 큰 남성을 TV 안에서까지 봐야 하느냐는 당연한 불만은 차치하더라도, 무례한 남성을 서사가 품어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 캐릭터의 몫이 된다. 단순히 그 성깔을 받아줘야 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무례한 남자와의 이성애 로맨스는 여성의 주체성을 상당히 훼손할 수밖에 없다. <계룡선녀전> 원작에서 자신의 세계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 있던 이현은 옥남을 만나면서부터 흔들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성애적 로맨스는 장치일 뿐, 중요한 건 이현을 포함한 각 인물들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역설적으로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다. 이 구도에서 옥남은 선인의 도를 지닌 굳건한 존재로서 흔들리지 않고 이현과 김금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는 ‘버럭남’ 이현이 옥남에게만 자상해지는 모습에 집중한다. 얼핏 이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제론 까칠하지만 내 여자에게만 따뜻한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끌리는 여성이라는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가 반복될 뿐이다. 심지어 이현과 막역하면서도 적절히 건조한 관계를 유지하던 이함숙조차 이현을 짝사랑하는 ‘츤데레’라는 설정이 추가되어 원작에도 없던 삼각관계가 만들어지고, 함숙과 옥남은 서로를 질투하기까지 한다. 어쩔 수 없다. 무례한 성격파탄자를 매력적인 것처럼 묘사하기 위해선, 예외적 관계에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옥남) 서로 무례한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속으로 설레는(함숙) 여성이 그깟 남자를 두고 다투기까지 해야 한다.

<계룡선녀전>과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가 원작의 장점과 개성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아쉬움과 별개로 이 두 사례는 한국 드라마의 공식에 대한 어떤 진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예민하고 생각이 많아 매력적이던 남성 캐릭터가 굳이 무례하고 목소리 크고 독선적인 남성으로 이식될 때, 원작의 서사 구조 역시 이성애적 로맨스를 중심에 둔 흔한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에 한없이 가깝게 소급한다. 그렇다면 처음에 했던 질문에 이렇게도 답할 수 있지 않을까. 드라마에 한국 남자 패치가 붙는 것이 아니라, 한국 남자 패치가 한국 드라마 패치라고. 상당수 한국 드라마의 서사적 구조는 무례한 한국 남자들을 변명해주거나 실제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꼼수라고.


전문 :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812141628005&code=960801
  • tory_1 2018.12.15 19:03
    선경이 드라마로 옮기고 매력 확 사라짐
  • tory_2 2018.12.15 19:39
    좋은 기사다.
  • tory_3 2018.12.15 19:41

    위근우에 대해선 양가적 감정이 존재하는데 이런 목소리는 필요하다고 봄 

  • tory_4 2018.12.15 20:13
    좋은기사 남주들 무례하고 너무 심하게 폭력적이라 짜증나 결핍 출비 트라우마라는 사연도 주지마나
  • tory_5 2018.12.15 20:16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08/08 21:53:26)
  • tory_6 2018.12.15 20:42

    다 받는다. 그래서 저 원작 웹툰들이 좋았던 건데 드라마로만 오면 캐릭터가 가장 당위성이 배제된 채 

    역겹고 오만한 보편적 캐릭터로 변이하는 거 정말 기분 나쁘다.

  • tory_7 2018.12.15 22:19
    공감 가는 기사다. 무례하고 안하무인 남주에겐 몰입 안되고 불쾌하기만할뿐
  • tory_8 2018.12.15 22:35

    한남이 만들어서 한남 묻는거 아닌가 계속 이딴식으로 굴거면 제작진에서 한남 아예 빼버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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