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미로운 퍼즐 맞추기
일단 흥미롭다. 제각기 다른 사연의 죽음과 그때마다 발견되는 학대 받은 아이와 서정주의 시 구절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소라 엄마 동숙(김여진)과 비밀스런 연락을 주고받는 ‘붉은 울음’은 누군지, 아동 심리 상담사 차우경(김선아)과 형사 전수영(남규리)에게서 언뜻언뜻 엿보이는 폭력성의 배경은 무엇인지, 또 새로이 부각되고 있는 한울 센터 직원 이은호(차학연)는 과연 조력자인지 아니면 범인에 가까운지, 알고 싶은 것들도 많다. 이런 의문들이 채널을 돌릴 수 없게 만들긴 하나 퍼즐 조각이 너무 복잡하면 맞추기를 포기하고 싶어지기 마련이 아닌가. 시청자가 재미를 느끼고 몰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더 늦기 전에 맞춰지는 그림이 하나 둘씩 나와 줘야 하지 않을까?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가 여럿 등장하지만 귓전을 울리는 대사는 소라 엄마의 “형사님, 저 돈 나 주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하나다. 남편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300만원을 갖게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소라 엄마. 김여진 씨가 <내 뒤에 테리우스>의 ‘심은하’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바로 후속작 <붉은 달 푸른 해>에 투입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그러나 웬 걸, 소라 엄마에게서 심은하의 어떤 흔적도 눈에 띄지 않는다. 배신한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차우경과, 남편의 보험증서를 찾는 동숙을 교차 편집한 장면은 명불허전, 역시 김여진! 절박함과 불안, 해방감으로 뒤섞인 다양한 감정들이 표정 곳곳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와 달리 보정 탓인지 시술 때문인지 속내를 읽기 어려운 몇몇 연기자들의 경직된 표정은 마이너스 요인이다. 캐릭터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는 용기를 보여줬으면.
◆ 장르적 재미, 그 이상의 이야기
◆ 가스라이팅을 깨부순 여성 주인공의 등장
MBC <붉은 달 푸른 해> 속 우경(김선아)이 보는 정체불명의 소녀(채유리)가 현실이 아닌 환각이란 점은 확실하다. 우경은 소녀의 오빠로 추정되는 신원미상의 소년을 차로 치는 사고를 저질렀고, 그 죄책감이 남은 자리에 자꾸만 소녀의 환각이 불쑥불쑥 침투해 들어온다. 그러나 우경이 보는 환각은 진실의 실마리를 품고 있어서, 우경으로 하여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죽음을 발견하게 만든다. 누군가 일찌감치 눈치 채고 개입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지 모르는 아동학대의 흔적이 농후한 죽음들을. 우경의 남편(김영재)은 끊임없이 정신과 진료는 받고 있는 거냐고 물어오지만, 그런 그가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는 동안 우경을 믿어 보기로 한 지헌(이이경)은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
남의 집 가정사라는 이유로 외부에서는 좀처럼 들여다보기 어렵거나 신경 쓰지 않는 범죄인 아동학대는, 자칫 의심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사람이 하필 끝없이 환각을 보는 우경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우경은 자신이 보는 소녀의 환각에 대해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어서 반복해서 보는 것’이라 굳게 믿고, 소녀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을 결심한다. 그런 각도로 본다면, <붉은 달 푸른 해>는 윤리적인 선택을 내리기 위해 온 세상이 자신을 향해 벌이는 가스라이팅을 떨쳐냄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구원하는 여성의 서사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