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한 옷 입는 때깔도 그렇고, 입에 달고 사는 듯한 와인 취향이나 시간 날 때 옆집 드나들 듯 방문하는 브로드웨이행 여가 생활도 그렇고, 한국 체류하는 기간 동안 머무르는 곳까지...
굉장히 부티 나고 고급스러운 라이프 스타일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도배한 것 같은 인간인데 실제로는 그 모든 취향이 본투비가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하듯 쌓아올린 요소들일 거라고 생각하니 현재와의 그 갭에 미치겠는거 있지.ㅠㅠ
모르긴 몰라도, 와인 같은 것도 처음부터 즐겼다기보다 금융계에 뛰어들어 한 몫 크게 벌고 상류 클래스들을 접하게 되면서 그 편입 과정에서 따라하듯 몸에 익혔을 것 같고.
어쩌면 이게 소위 있는 놈들이 즐긴다는 자본의 맛이구나 싶어서 점점 빠져들었거나, 근본 없다고 무시 당하고 싶지 않은 오기로라도 버릇처럼 입에 붙였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해봄.
유진한은 학창 시절에도 꽤나 많은 차별과 편견을 겪어야 했겠지...?
와튼 스쿨 같은 명문대면 상황이 좀 낫다곤 해도 인종차별이 아예 없진 않을 거 아냐.; 오히려 무식하고 노골적인 차별보다도 드러내지 않고 자행되는 암묵적이고 은근한 차별을 더 숱하게 겪어 봤을 것 같고.
암만 봐도 가정 형편 상 고등학생 때부터 공부 빡세게 해서 전액장학금으로 갔을 것 같은데... 범생이 같은 학생 유진한 넘나 보고 싶은 것...ㅠㅠㅠㅠㅠ
그치만 긱이나 너드과는 절대 아니었을 거야... 그 비주얼과 그 독기 있는 성격에 의도적 인싸 내지는 자발적 아싸라면 모를까 절대 어디 가서 따돌림 당하거나 무시 당하고 참고 있을 성깔이 아님ㅋㅋㅋㅋ 아니, 근데 그것도 약간 보고 싶긴 해...(양가감정)
치매에 걸린 어머님의 기억이 유진한이 대학생이었을 시절에 계속 머물러있는 걸 보면 최소한 그 때까진 온전한 정신이셨을텐데...
그럼 대학 시절~성공가도 진입 요 무렵에 병세가 악화되셨다는 건데, 유진한 성격에 그렇게 어려서부터 고생하며 뒷바라지해주신 엄마께 대학 등록금이니 생활비 부담을 지워드렸을 것 같진 않음.
그럼 아르바이트 엄청 했으려나?? 아님 그때부터 주식 투자 쪽으로 슬슬 수익을..?
어느 쪽이든 간에 중고교 시절엔 가계에 보탬이 되겠다고 알바했을 것 같고, 최소한 엄마 세탁소에서 뭐라도 했을 것인데... 어린 나이에도 주경야독하며 이 악물고 아빠를 원망하고 엄마를 연민하며 돈, 더 많은 돈을 갈구했을 유진한을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진다...ㅠㅠㅠㅠㅠ
그런 의미에서 난 얘가 그렇게 썩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을 것 같지가 않다... 뭘 어떻게 상상해봐도 유진한 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가 너무 맘에 걸려서...
성공하기 전까진 엄마를 편히 부양할 마음으로 자기 고삐를 늦추거나 다른 길로 샐 틈이 없었을 것 같고(실제로도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출세했고) 성공한 후에는 좀 여유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는데 이 때는 이미 엄마는 그렇게... 되셨구ㅠㅠㅠㅠㅠ 다른 사람이나 관계로부터 위안을 얻거나 결핍을 채우기에는 인간 불신이나 돈에 대한 맹신이 어느새 너무 견고해져버려서 오히려 본격적으로 물질로 자신의 공허를 채우기 시작했을 것 같음.
너무 빠른 나이에 너무 큰 성취를 맛봐버려서... 강렬한 성공 경험이 자신의 이후 인생을 결정지어버린 느낌이랄까.
독하게 공부하고 독하게 벌어서 큰 성공을 맛 보고 예의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엄청난 힘을 손에 넣었으니 자기 자신이 밟아온 길에 대해 후회하거나 반추할 이유도, 계기도 없는 거지.
무의식 중에 뭔가를 느끼고 있다손 치더라도 굳이 그걸 끄집어내서 스스로를 괴롭힐 만한 필요성도 없고.
혜준이 말마따나 모든 것은 다 엄마를 위해서라고 변명하기 얼마나 좋아. 정작 당사자인 엄마는 온전한 정신도 아니셔서 이런 유진한을 꾸짖어 줄 수도, 보듬어 줄 수도 없으신데...ㅠㅠㅠㅠㅠㅠ
솔직히 와튼에서든 금융회사에서든, 바하마에서든 유진한이 갸륵하고 꿋꿋하게 삶의 무게와 슬픔을 견디고 살아가는 한국 사람을 한 번도 못 마주쳤을 것 같지 않음.
근데 그 이상으로 돈의 망자를 더 많이 보지 않았을까. 역지사지의 공감을 하며 상대를 연민으로 들여다보기도 전에 돈 앞에서 무너지고 추해지는 사람을 더 많이 봐왔고, 또 자기 경험칙에 의거해 그게 당연한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고 믿으니까 어떤 개인에 대해 그렇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살펴볼 일 자체가 없었을 것 같아.
그러다 혜준이를 만난 거지.ㅠㅠㅠㅠㅠㅠㅠ(과몰입러 급오열중)
처음부터 확 꽂히는 명확한 호감은 아니고, 약간의... 설명할 수 없는 모종의 느낌이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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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는 표현도 어떤 의미론 어울리겠지만, 그보다는 비슷한 종류의 아픔과 그늘을 지닌 사람끼리 무의식 레벨에서 감지하는 직감적이고 본능적인 어떤 분위기가 둘 사이를 짧게 스치지 않았을까 싶어.
아니고서야 다른 사람들과의 첫만남에는 없는 이 미묘한 기류를 설명할 길이 없음ㅠㅠㅠㅠ
많은 첫인상들이 그렇듯 이런 찰나의 이미지는 일상적이고 표면적인 요소들에 파묻혀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버리게 마련인데, 비창 3악장의 애수를 통해 유진한은 이혜준에게 어머니를 투영하며 한층 그 인상을 공고화하게 되지.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혜준이 개인을 본다기보다, 혜준이 너머의 엄마를 보는 것에 가깝게 느껴졌는데... 혜준이가 유진한에게 명확하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한 건이 바로 예의 스무딩 오퍼레이션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유진한은 자신이 행사한 폭력에 휘둘리며 괴로워하는 혜준이를 보며 다시금 엄마가 얽힌 트라우마를 떠올리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님.
엄마를 닮은 어딘가 슬픈 기색이 있는 여자이면서도, 불법공모에 가담하지 않아서 600억 달러를 순식간에 날아가게 만든 미친년이기도 한 이혜준으로 인해서 유진한은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양심의 가책이라든가, 애써 부정해오던 자괴감을 자각하기 시작하는 거지.
남과는 다르게 특별히 느껴지는 이혜준과 더 친해지고 싶고 교감을 나누고 싶지만, 문제는 목적 달성을 위해 이루어지는 비지니스적이고 가식적인 사교가 아니라 순수한 인간적 차원의 교류를 맺어본 적이 거의 없기에 이혜준에 대한 어프로치도 평범한 사람의 시선에서 보면 기괴하고 황당하기 이를 데 없음.
이혜준에게는 호감이 있지만,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뿌리 깊은 경제관념은 순전히 별개의 문제라서, 혜준에게 접근하는 동시에 그녀의 나라에 금융 위기를 일으키려는 짓은 철저히 분리되어 동시 진행되지.ㅎㅎ;
친해지고 싶은 건지, 상대를 깔아뭉개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병실에서의 기브 앤 테이크적 접근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ㅋㅋㅋ;
솔직히 대신 총을 맞아준 사건으로나마 혜준이가 유진한이 자꾸만 접근하는 의도의 순수성을 더이상 의심하지 않게 된거지, 그게 없었으면 평생 하던 방식대로 어필해봐야 절대 벤치에서의 허심탄회한 대화는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 같아.
어쨌든 14화를 기점으로 유진한에게 있어서 이혜준은 이제 더이상 엄마의 대타나 투사체만이 아니고, 돈으로 등가교환하듯 얻을 수 있는 욕망의 대상도 아니며, 오히려 자기 안의 양심과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적인 존재라는게 확실해진 것 같아.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대학생 유진한 이야기에서 유진혜준까지 흘러 왔는지 모르겠는뎈ㅋㅋㅋㅋ
아무튼! 지금도 젊긴 하지만 그보다도 더 풋내났을 어린 시절을 자기 딴에는 풍족하고 알차게 보냈다고 믿고 있겠지만 실은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부어도 근본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와 갈망을 안고 있던 유진한을, 다 합해서 10번도 채 만나지 않았을 혜준이가 꿰뚫어보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손짓해준다는게...
이거야말로 운명적 만남이라는 말 말고 뭐라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ㅠㅠㅠㅠㅠㅠㅠㅠ
종방 앞두고 문득 가슴이 벅차올라서 길게 한 번 주저리 해봤어.ㅠㅠㅠㅠㅠ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