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사라지지 않을 상처를 잠시 진정시켰을 뿐인데, 안녕이라고?
나이가 어리든 적든, 수월하든 버겁든, 살아가는 동안 많은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안녕 드라큘라>는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문제들을 극복하려 애쓰는, 그냥 사람 사는 얘기다. 1화 마지막 장면 안나(서현)의 대사, “8년 사귄 여자 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차였어. 그리고 엄마가 일방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날 외면하고 다른 남자에게 의지할까봐 두려워.” 자신의 비극을 두 줄로 요약해주겠다더니 진짜 명쾌하게 잘 쏘아 붙인다. 대치 중인 엄마 미영(이지현)과 안나의 투샷을 보고 있자니 두 사람의 심정이 열 번 백 번 짐작이 됐다. 나는 엄마이자 딸이기 때문이리라.
두 사람이 날선 설전을 벌일 때마다 마치 일인이역처럼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맥락은 달라도 비슷한 상황이 나와 딸 사이에도 숱하게 벌어졌다. 딸은 ‘엄마는 그때 내 마음이 어땠을지 관심도 없었잖아’ 라며 비죽거리고 나는 ‘그렇게 최선을 다했는데 그딴 소리를 하느냐’ 받아친다. 그러면 늘 ‘다 엄마가 좋아서 한 일들이잖아’ 라는 답이 돌아온다. 말문이 턱 막히고 억울해진다. 그래서 나는 최근 정신이 흐려지신 우리 엄마에게 가서 ‘엄마 그때 내 마음 몰랐지?’ 한다. 답이 있을 리 없다. 엄마도 하고픈 말이 있을 텐데.
2부작 <안녕 드라큘라>는 엄마 미영의 대사 ‘엄마는 안나 편이야. 네가 나중에 인생을 되돌아볼 때 엄마가 모든 순간 네 편이 돼주지는 못했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는 네 편일 것’으로 마무리 됐다. 그러나 이 모녀 관계는 물론 어른들로 인한 유라(고나희)와 지형(서은율>의 서러운 이별, 전 남자 친구의 양다리 사실을 알게 된 서연(이주빈)의 아픔도 잠시 진정된 것일 뿐 완전한 안녕은 아니다. 안나가 유라와 지형을 감싸며 지형 어머니에게 이 아픔 어른이 되어도 다 기억하니 그만하라고 외쳤지만 어른을 넘어 늙어 죽을 때까지 기억날 게다. ‘안녕’이란 인사는 만났을 때의 인사다.
◆ 어디가 힐링이라는 거죠?
딸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엄마,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 부촌과 서민 사이의 계급 격차. <안녕 드라큘라>는 하나의 서사로 이어내기 어려울 것 같은 소재들을 모아 만든 옴니버스 드라마다. 그리고 역시나 이 세 가지 주제는 좀처럼 하나의 서사로 엮이지 않는다. 안나(서현)와 서연(이주빈), 유라(고나희)가 겪는 상실의 서사가 지닌 무게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8년간 사랑한 연인 소정(이청아)과의 이별도 모자라 자신의 영역을 자꾸 침범해 오며 자신이 자기 좋을 대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 엄마 미영(이지현)과도 맞서야 하는 안나의 고통 앞에서, 구남친 상우(지일주)와의 갈등으로 함축된 서연의 고통은 상대적으로 납작해 보인다. 유라와 지형(서은율)이 경험하는 계급 격차의 갈등 또한 신문 사회면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내용 이상을 그리지 못한다. 드라마가 이야기를 지형의 관점에서 묘사하면서 유라가 살고 있는 현실을 묘사하는 건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드라마가 이 주제를 어느 위치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암시한다.
무엇보다 <안녕 드라큘라>는 주인공들이 겪는 고통을 공들여 묘사하고는, 그들이 알아서 고통을 이겨낼 것을 주문하면서 ‘힐링’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기만적이다. 미영은 끝까지 안나에게 진지하게 사과하지 않는다. 안나의 방을 함부로 뒤지고, 안나가 감당해야 할 몫의 이별에 멋대로 개입하고, 무엇보다 안나의 성 정체성을 알고 난 뒤에도 그걸 애써 부정하려 했다는 사실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도 성 정체성을 부정 당한 사춘기 시절의 안나(이재인)가 일기장에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쓴 걸 보고 상처 받았노라는 이야기를 하며 두 사람의 잘못을 동률로 만들려 든다.
서연은 상우에게 나름대로 쏘아붙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상우는 단죄나 처벌을 받지 않은 채 무사히 극에서 퇴장한다. 유라와 지형을 몰아세우며 계급의 성을 쌓아 올린 아파트 주민들 또한 잠시 기분 찝찝할 순간만 경험한 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
물론 현실은 녹록치 않으며 모든 드라마가 사이다 해법을 보여줘야 한다는 법도 없다. (그랬다면 오히려 비현실적이었으리라.) 하지만 이처럼 상처 입고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그저 마음가짐으로 이겨내라는 이야기를 하며 극을 끝내는 것은 지나치게 무책임하지 않은가? 마음가짐으로 개인의 구원을 꾀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고통을 재생산하는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이럴 거면 최소한 ‘힐링’이라는 말은 홍보과정에서 아꼈어야 한다.
◆ 공평하지 못한 이별
문제는 세 사람의 이별을 다루는 이 드라마의 태도가 그리 일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서연과 유라가 결별의 상대와 직접적으로 맞부딪히는 갈등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지나간 시절에 손을 흔든다면, 안나는 모든 감정을 정리한 뒤에야 상대를 마주하게 된다. 그 차이는 안나의 상대가 동성 연인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사실 드라마 속에서 안나가 가장 많이 부딪히는 대상은 엄마 미영(이지현)이다. “고작 열 살이었던” 어린 안나 앞에서 아빠와 밑바닥까지 내보이는 싸움 끝에 이혼한 엄마는 이후 안나에게 집착하며 살아간다. 안나는 자신을 “착한 딸”이라 부르며 필사적으로 보호하려 했던 엄마의 말을 “살아야 할 이유”로 받아들인 채 미영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딸이 되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이 억압감은 안나가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고 난 뒤부터 본격적인 우울증으로 발현되고, 연인의 이별 통보를 계기로 폭발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안나의 20대를 지배했던 소정(이청아)과의 서사는 고작 추억의 폴라로이드 사진 몇 장으로 축소된다. 안나와 소정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은 안나가 엄마와 비로소 화해한 뒤에야 등장한다. “너 아니었으면 내 20대는 특별하지 않았을 거야. 30대는 너 없이도 잘살아볼게. 내가 살아보고 싶은 대로”라는 안나의 말 역시 이별하는 연인의 대화라기보다 드라마 내내 이어지는 안나의 자기 성찰적 내레이션과 그리 차이가 없는 대사다. 요컨대 안나와 소정의 레즈비언 서사는 모녀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계기로만 소모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안녕이라는 말로 뭉뚱그리기엔 아쉬움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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