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책임을 외면하는 일본 정치가들과는 대조적으로 아키히토 일왕은 그동안 추도사를 통해 반성의 뜻을 밝혀왔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일본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일왕은 “전후 오랫동안 이어진 평화의 세월을 생각하며,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고 말했다.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은 패전 70주년이던 2015년 추도사 때부터 일왕이 추도사에 새로 넣은 것이다. ‘전후 오랫동안 이어진 평화의 세월을 생각한다’는 부분은 올해 새롭게 추가됐다.
지지(時事)통신은 “평화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쟁의 책임이나 반성의 표현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의 추도사는 예년과 같았다.
1993년 이후 역대 총리들이 사용해왔던 “아시아 제국의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긴 데 대해 깊이 반성한다”는 표현은 2차 아베 내각 발족 후인 2013년부터 6년째 빠졌다.
전후 역대 총리들이 했던 ‘부전(不戰·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의 맹세’란 단어도 역시 6년째 없었다.
다만 ‘맹세’라는 표현을 아예 쓰지 않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다. 역사를 겸허히 마주 보고,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그 결연한 ‘맹세’를 관철해 나가겠다”며 간접적으로 비슷한 표현을 했다.
중앙일보 취재팀과 마주친 참배객들은 “야스쿠니 참배는 일본인의 의무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유럽 식민지가 될 위기의 아시아 국가를 구하기 위한 정당한 행동”, "위안부는 돈이 필요했던 매춘부들”, “선조들이 살아있을 때 지은 죄값은 재판을 통해 모두 치렀다. 죽은 사람을 향해 돌을 던지는 건 좋지 않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낮 12시가 되자 인근 부도칸에서 열린 정부 추도식의 아베 총리 추도사가 경내에 울려 퍼졌다. 이어 약 3분 동안의 묵념이 끝난 뒤 일부는 “천황 폐하 만세”를 외쳤다.
아베 총리는 직접 참배를 하지 않는 대신 시바야마 마사히코(柴山昌彦)자민당 총재 특보를 보내 공물료를 지불했다. ‘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 명의로 ‘다마구시’(玉串·물푸레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단 것) 공물료를 사비로 냈다.
2013년 말 야스쿠니를 직접 참배해 파문을 일으켰던 아베 총리는 종전기념일엔 6년째 이런 방식으로 간접 참배만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