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7시 38분에는 갑작스럽게 성수대교가 무너져 버스를 비롯한 수십 대의 자동차가 48m의 상판과 함께 강물에 처박혔다.
특히 연수양이 재학하는 무학여고의 피해가 가장 컸다. 당시 행당동에 있던 학교에 가고자 압구정동에서 버스를 타고 등교하던 학생이 많았던 탓이다.
이날 무학여고에서는 총 8명의 피해자가 나왔다. 연수양도 그중 하나였다. 가족은 하릴없이 그의 등교를 기다려봤지만, 연수양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가족에게는 그의 혈흔이 묻어 있는 가방 한 개가 전달됐을 뿐이다. 이 가방에는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 한 통이 발견돼 많은 국민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편지에 따르면 연수양은 최근 아버지와 갈등을 겪었다. 체벌을 당하기까지 했지만 연수양은 의젓하게 되려 아버지를 위로했다.
어리지만 깊고 깨끗한 마음씨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편지였다. 그래서 더 슬프고 짠하게 느껴졌다.
연수양의 죽음에 유족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아버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화병을 앓다가 1996년 딸의 곁으로 떠났다.
이 사연은 가수 조관우의 노래 '실락원'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편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시공사 측에서 정기 점검을 소홀히 해 발생한 인재였다.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쳐 총 49명의 사상자를 냈다.
성수대교는 1997년 1월 1일부터 철거 및 재건설에 들어갔고, 1999년 11월 22일 재개통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때의 충격 진짜 잊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