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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m.blog.naver.com/joongseokryu/120008473726

아래 글은 수년 전에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스크랩해놓은 것이다. 1996년 당시 이 글은 네티즌들의 화제가 되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삼성 SDS사장을 지내고 정보통신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남궁석 전장관이다. 그가 불의의 사고로 하나뿐인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고 나서 아들을 못잊어하며 쓴 편지형식의 글이다. 부자지간의 정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글이어서 가끔씩 꺼내보곤 했던 글이다. 장성한 아들을 둔 아버지가 꼭 읽어야 할 글이다. - 에버그린 -




편지1 : 한 수만, 딱 한 수만 물릴 수 있다면



꿈인가 생시인가. 뺨을 한 번 꼬집어 보고, 벌떡 일어나 구룡산 봉우리를 바라본다. 허허, 생시인 게 틀림없구나.

네가 정말 우리 곁을 떠났단 말이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이냐.

네 부모의 부덕을 자책하기엔 너무나 가혹하고, 인연이라 체념하기엔 너무 허무하고, 하늘의 뜻이라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아프구나.

남궁 훈, 아타나시오…..

1970년 5월 2일 오후 7시 30분 생.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키 179.5센티미터.

몸무게 78킬로그램. 시력 좌우 각각 1.5. 혈액형 A. 군필.

눈 크고, 코 큰 잘생긴 사나이.

1996년 8월 1일 새벽 2시 45분

불의의 사고로 유명(幽明)을 달리하였으니

네가 이 세상에 머문 기간이 꼭 26년 3개월,

날짜로 따져 9,581일이로구나. 아, 무슨 말을 먼저 쓸까.



남궁 훈, 아타나시오. 그간 너는 우리 가족 모두의 위로였지.

할머니, 할아버지, 큰엄마, 고모, 외숙모.......

아빠 엄마는 그분들이 너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에 젖곤했었지.

공수부대 제복을 입은 늠름한 대한민국의 군인.

아빠 엄마의 결혼 25주년 기념사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네 얼굴을 이제 지워야 한다니 참으로 쓸쓸하구나.



남궁 훈, 아타나시오. 아, 가슴이 아파 온다. 얼굴이 뜨거워진다.

눈물이 난다. 이제 한 번은 흥건히 울어야지. 그간 울 수가 없었어.

사람들은 날더러 초연하란다. 운명이라 생각하란다.

인연이라 생각하란다. 자네도 정녕 그렇게 생각하나.

네 몸을 운구차에 싣고 화장터로 향하는 차 안에서 엄마가 참 많이 울었다.

"훈이 뜨거워서 어떻게 해, 훈이 뜨거워서 어떻게 해." 나도 엄마를 끌어안고 함께 흐느낄 밖에…….

"아니야, 거긴 뜨겁지 않아, 시원할 거야. 거기서 훨훨 날아 하늘나라로 갈 거야."

이승에서 26년 3개월간 머물다 간 자네의 육신은 이렇게 불태워져

할아버지 할머니가 잠드신 선영의 아래 자락에 뿌려졌네.



남궁 훈, 아타나시오. 아메리카 1만 마일,

그때 우리 참 신나게 달렸지. 아빠는 운전사, 자네는 조수.

아빠는 자네가 지도를 읽고 안내하는대로 달리기만 했었지.

그래도 35일 동안 길을 잘못 들어선 적이 없었지. 아, 한 번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도로 공사 관계로 길이 지도와 달라 골든 게이트 브리지로 가는 대신 골든 게이트 파크로 나갔지. 덕분에 구경 하나 더하고 한인회 사무실을 발견, 즐겁게 휴식을 취했지.



남궁 훈, 아타나시오.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자네를 맞이하던가.

아빠 방에 있던 단테의 『신곡』을 자네도 읽었지.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당에 다다르니 젊은 시절의 연인 베아트리체가

꽃마차를 타고 마중을 나왔다고, 단테는 말했지.

자네는 누가 맞아 주던가.

그 정도는 만들어 놓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죄지은 사람은 지옥에 가고 죄없는 사람은 천당에 간다고 했는데,

나는 믿네, 자네가 천당에 간 것을. 죄지을 시간조차 없이 서둘러 세상을 떠났으니.

무에 그리 급했나, 이 사람아.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가 있고,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이 피고,

미움과 슬픔과 고통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편히 쉬게나.



남궁 훈, 아타나시오. 나는 인연을 믿고 싶네.

약국에서 배달을 하던 시절,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는 은행잎 두 개를

공중에서 받아 입에 물고 어느 약국에 들렀지. 약국 아주머니는 이렇게 탄성을 질렀어.

"어머, 이렇게 예쁜 은행잎이 있다니, 그거 나 줘요."

그 후 그 약국은 내가 배달하는 약만 팔았지.

떨어지는 은행잎 하나가 맺어 주는 인연이 이러하거늘 부모와 자식으로 만난 26년 3개월간의 우리 인연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고 말겠는가.



남궁 훈, 아타나시오. 이 땅에서처럼 하늘나라에서도 자네는 여행을 많이 하겠지.

유럽 여행 48일, 베트남 여행 21일, 미국 여행은 가족과 함께 1만 마일이나 하지 않았나.

중국, 인도, 남미, 아프리카를 다녀오겠다고 하더니….이제

아름다운 하늘나라에서 영(靈)과 육(肉)이 하나인 '하늘새'가 되어

시간과 공간의 굴레를 벗어나 훨훨 날아다니게나. 날 수 있을 거야, 자네는…….



유럽 여행 17일째, 프랑크푸르트에서 로마행 기차를 타고 쓴 일기는 너무나 아름답구나.

그래, 너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8인치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했지.

서울 하늘이 탁하다고 그 큰 망원경을 짊어지고 시골로 내려갔었지.

아마추어 천문가의 눈에 비친 유럽의 밤하늘.



"유럽에 온 이래로 별들이 이렇게 많이 보인 날은 없었다.

유난히도 맑은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면서 마치 자장가를 불러주듯

빛나고 있었지만 쉽게 잠이 들진 않았다.

유럽에선 마차부 자리와 백조, 그리고 견우와 직녀성이

우리 나라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고 공기도 유럽 쪽이 더 맑아 보였다."



유럽 여행 19일째, 이탈리리 베네치아에서 쓴 일기를 옮겨 본다.

자네가 이렇게 속 깊은 사람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네.

스물세 살 때 벌써 '버리는 것'을 알다니.



"어렵사리 온 배낭여행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오늘 기차 안에서 역시 나는 아직도 '얻을 것'보단 '버릴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모든 나쁜 것을 버리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나의 것이 될 수 없으리.

한낱 하찮은 인간으로서 공(空)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선의 길을 걸을 순 없겠지만.

그 동안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또 앞으로 나와 부대끼며 살아갈 많은 사람들,

과연 이들에게 나란 존재가 어떻게 비추어질지 궁금하다.

나의 욕심, 질투심, 고집, 심술, 온갖 잡다한 생각을 내 몸에서 떼어낸 뒤,

그 이후에 무엇을 얻을 것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 여행 동안 나는 무엇을 얻기보다는 쓸데없는 것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큰 얻음이겠지."



남궁 훈, 아타나시오. 우리 한 수만 물릴 수 없을까.

8월 1일에서 8월 2일 사이에 일어난 이 한 수를 물리고

7월 31일 상태에서 우리 한 번 다시 시작해 볼 수 없을까.

뭐 그리 야박한가. 한 수만 무르세, 응.

아니면 환생을 해서 돌아오게. 알아볼 수야 없겠지만

내가 죽기 전에 이 세상에 다시 와서

맺힌 한이 있으면 한 번 풀어 보세.

무심한 사람. 가슴에 맺힌 이 뜨거운 응어리를 나 혼자 어떻게 풀란 말인가.

엄마가 가족 사진을 보면서 또 울고 있네.

아빠, 엄마, 누나, 동생 그리고 그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자네의 얼굴을 하염없이 어루만지면서.



남궁 훈, 아타나시오. 하나 큰 걱정거리가 있네.

나야 이제 묘를 간수해 줄 아들이 없는 몸이 되었으니

화덕에 들어가 한줌의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면 되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모셔 오던 선영을 어떻게 해야 하겠나.

장손인 곤이가 있으니 이제 그 쪽 줄기에 맡길 수 밖에.

자네를 믿고 후사를 당부코자 했는데 나보다 먼저 가 버렸으니.



아, 이 난감함을 어찌해야 하나.

집안에 족보를 잘 간수해 두는 일조차 필요없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허망한 노릇인가.

자네는 엄마 아빠의 자랑이요 긍지였을 뿐만 아니라

이 집안의 미래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네.

참으로 어리석은 아비가 아닌가.



남궁 훈, 아타나시오. 잘 가게.

가슴속 깊이 자네를 묻어 두기로 했네. 말로는 잊었다고 하면서…….

이 편지를 어디로 보내면 자네가 받아 볼 수 있겠나.

하늘나라에도 우체국이 있는지. 그리고 이름만 써도 배달이 되는지.

하늘나라 베아트리체 공화국 Arira2시 Hoon가 5002번지.

일단 이 주소로 보내니 한번 우체국에 들러 보게.

Arira2는 자네의 PC통신 ID이고, 5002는 최신 패스워드가 아닌가.

장례식에는 자네를 아는 많은 분들이 오셔서 수고를 하셨네.



곽 신부님이 오셔서 영안실 안치기도를 하셨고,

영결미사는 신내동 본당 신부님이 하셨네.

운구와 선영에 재 뿌리기는 자네 친구들이 와서 했네.

재원이, 완섭이, 성진이 애인, 영준이, 선태, 황이, 종일이, 태엽이,

도경이 등등. 장례를 치른 다음다음 날인 일요일에 논현동 취영루에서

자네 친구들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는 것으로 그들과도 마지막 인사를 하였네.



남궁 훈, 아타나시오. 정말 잘 가게나. 정말 잘 가게나.

이제는 우리도 자네를 잊겠네. 가느다란 휘파람을 불면서

잊으려고 노력하겠네. 잘 안 되더라도 참겠네.

그래야 하지 않겠나. 그 수밖에 없지 않겠나. 참아야지. 잘 가게.

이렇게라도 편지를 쓰지 않고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네.

그래서 쓴 거라네. 이 편지는 자네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쓴 것이라네. 아빠의 이 이기적인 마음을 용서하게.

이 편지를 자네가 받아 보리라 생각하니 그래도 위안이 되는군.

마음이 좀 편안해져. 아빠는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하겠네.

그래야 자네도 마음이 가벼워지겠지.



1996년 8월 7일 0시 38분.

아버지 남궁석, 바올로.
  • tory_1 2020.07.06 15:37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03/28 16:37:22)
  • tory_2 2020.07.06 15:38

    마음이 아프다ㅠㅠㅠㅠㅠ 

  • tory_3 2020.07.06 15:39
    아........아....ㅠㅠㅠ
  • tory_4 2020.07.06 15:40
    자식 먼저보낸 부모마음은 진짜 상상도 못하겠다.
    화장장이나 장례식장만 가도... 부모보낸 곳이랑 자식보낸곳이랑분위기가 달라ㅜㅜ
  • tory_5 2020.07.06 15:43

    '나를 위해 쓴 것이라네.' 이 말이 너무 사무친다. 어찌 이기적이겠어요.

    자식 먼저 보낸 장례식장에 가봤지만 너무 힘들긴 했어. 위로는커녕 같이 무너지는 기분이라... 제3자도 아픈데 부모는 어쩌겠어

  • tory_6 2020.07.06 15:45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06/28 10:06:42)
  • tory_7 2020.07.06 15:58

    결국 이 글 쓰신분도 2009년에 돌아가셨던데...하늘에서 아드님과 재회해서 행복하게 계시겠지?

  • tory_8 2020.07.06 16:06

    아 .. 처음 보는 글인데 눈물샘 폭발 ㅠㅠㅠㅠㅠㅠ 

  • tory_9 2020.07.06 16:26
    129일된 아들 맘마 먹이면서 봤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ㅠㅠ
  • tory_10 2020.07.06 16:52
    자꾸 들어와서 보게 돼 먹먹하다 ㅜㅜ
  • tory_11 2020.07.06 17:13
    너무너무 가슴이 아픈 글이다 ㅜㅜ
  • tory_12 2020.07.06 18:18
    ㅠㅠㅠㅠㅠ 어휴
  • tory_13 2020.07.06 19:28
    너무 절절해서 이분 찾아보니..이미 아드님 곁으로 가셨네 ㅠㅠㅠㅠㅠㅠ 그 마음을 진짜 누가 알까..아드님 8월1일 운명하신거 같은데...이날은 내 생일이자 내딸의 생일이라 더 먹먹하다...누구는 생명을 시작하는날 또 누구는 생을 마감하고 너무 먹먹한 기분이다.
    하늘에서 아드님이랑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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