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유머
주로 남성 래퍼들이 여성과의 성관계를 묘사하거나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해서 쓴 가사들 때문이야. 여성의 몸을 성적인 관점에서 묘사하거나, 여러 여성과 만나고 성관계를 맺는 일이 마치 최고의 성공인 듯이 묘사한 가사를 찾기는 어렵지 않아. 그런 일이 많은 돈을 벌고 명품 옷을 입고 비싼 자동차를 갖는 것과 함께 성공의 척도로 묘사되기도 해. 즉 사람 대 사람으로서 여성과 감정을 교류하고 진솔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보다는 단지 성적으로 쟁취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관점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경우가 흔하게 발견돼. 비단 한국에서만 그런 건 아니야. 미국 유명 힙합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가수의 양옆에 노출 의상을 입은 여성을 세워 두고 마치 승리자처럼 웃는 장면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지.




여성에 대한 신체적·성적 폭력을 가사에 담아 논란이 된 일도 있었어. 한 래퍼는 만나고 싶은 여성을 “때려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가사를 썼어. 여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과 여성을 때리는 일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 말이야. 마치 여성은 남성이 내키는 대로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소유물’인 것처럼 여겨지게 해. 만약 여성을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었을까?

이런 일도 있었어. 급진적 여성주의자를 “XX년들”이라고 욕하면서 “다 강간하겠다”라는 내용의 가사가 공개된 거야.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남성인 래퍼 자신을 떠받들거나 장식하는 액세서리처럼 표현하는 경우도 오랫동안 있어 왔지만, 이 가사는 한 발 더 나아가 특정 여성에게는 성범죄를 ‘해도 된다’ 또는 ‘할 수 있다’고 공언한 꼴이지. 이런 가사들을 정말 ‘힙합 문화’의 특성 또는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본래 힙합 문화는 미국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등 유색 인종이 사회적 차별에 자유롭게 저항하고 기득권을 비판하는 성격을 띠고 탄생한 문화야. 미국에도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화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이렇게 폭력과 차별을 공공연히 승인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아.




힙합은 이런 ‘남성성’의 주요 특성, 특히 돈과 여성을 성공의 척도로 삼고 이를 자랑하는 내용이 가감 없이 표출돼 온 장르이기도 해. 최근에는 남성성의 또 다른 특성이 힙합에 하나 더 나타났어. 바로 스스로를 ‘루저’ ‘찌질이’ ‘잉여’ 또는 ‘흙수저’로 정체화하면서 그 고통의 원인을 여성이나 소수자에게 돌리는 방식이야.

주로 사회 경제적인 변화 때문에 이런 변화가 나타나. 더는 우리 부모님 세대만큼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가 아니고, 당장 취업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남성’으로서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우니 패배감에 휩싸이는 거지. 취업·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 등을 포기하는 ‘N포 세대’라는 말이 사회적 현상이 된 점을 떠올려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앞서 언급한 것처럼 래퍼의 여성 혐오적 가사에 나타나는 남성성을 분석해 본 연구도 있어. 한 래퍼의 가사에는 보편적으로 ‘자학’ 정서가 존재했다고 해. 연애와 사랑은 늘 실패하지, 경제적으로 성공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현실은 답답하고 절망스럽지. 그런데 사회 경제적인 상황을 당장 스스로 바꾸긴 어려워. 그렇지만 ‘나를 만나 주지 않는 여성’을 비난하는 건 쉽지. 그래서 자신이 충분히 ‘남성적’이지 못하다는 ‘실패’의 이유를 ‘돈을 밝히고 예쁘지도 않고 나를 만나 주지 않는’ 여성을 비난하면서 그들에게 돌리는 식으로 풀어 쓰는 거야.

뒤에서 한 번 더 다루겠지만, 이런 정서는 특정 래퍼 한 명만이 아니라 남성들이 많이 이용하는 주요 온라인 공간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 이 래퍼가 10대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좋았고, 그의 가사가 ‘진정성’이 있다고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던 점 역시 이런 감성이 특정 개인만의 생각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지. 타자(여성)에게 책임이 있어야 나의 ‘남성성’이 더 이상 불안하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그만큼 널리 형성됐다는 점을 보여 주는 현상이기도 해.



문제는 이처럼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방식이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야. 여성을 비난하고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고 해서 여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일시적으로 감정을 해소하는 창구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방식으로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지는 않아.

그러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굳어진 ‘남성성’을 둘러싼 통념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를 똑바로 인식하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는 태도가 생산적이지 않을까? 수많은 특성을 지닌 나 자신을 고리타분한 통념에 가둘 필요가 있을까? 저런 통념이 생기던 때와는 달라진 사회에서 남성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면 어떨까? 신나는 비트와 진정성 있는 가사를 담은 힙합 문화를 즐기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듯해.

왜요, 그게 차별인가요? : 무심코 사용하는 성차별 언어 | 박다해 저자, 김예지 삽화
  • tory_1 2024.04.27 15:29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4/04/27 16:00:45)
  • tory_2 2024.04.27 15:46
    힙합은 한녀의 장르 한남은 자격이 없다
  • tory_3 2024.04.27 16:17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4/04/29 16:53:03)
  • tory_4 2024.04.27 17:00
    그래서 남자가 하는 힙합 안들어
  • tory_5 2024.04.27 17:17
    왜요, 그게 차별인가요? : 무심코 사용하는 성차별 언어, 박다해 저자, 김예지 삽화, 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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