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수정의 여성을 위한 변론/ ⑤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중략)
친구 한명에게만 남겼던 ‘비밀’
죽은 뒤에 나를 찾아온 그녀는 20대 후반의 갓 결혼한 공무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찾아온 것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녀는 수년간 공무원이 되려 공부한 끝에 4전5기 만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런데 어렵게 공부해 공무원이 된 그녀가, 임용된 지 불과 10개월 만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대체 그녀는 왜 죽어야 했단 말인가. 그렇게 원했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그녀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사랑하는 남편과 행복한 삶만 꿈꾸면 됐는데 말이다.
그녀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그는 그녀의 휴대폰에서 친한 친구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확인하고서야 그녀가 왜 병이 들었고, 자살에 이르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녀는 공무원으로 임용된 뒤 성희롱과 성차별에 시달려온 것이다. 그는 그녀의 카톡에서 실명이 확인되는 가해자들의 성희롱 행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였고, 인권위원회는 조사 결과 성희롱 사실을 확인했다. 이 일로 관계기관은 발칵 뒤집어져 성희롱 전수조사를 하고 성차별적 문화 개선, 엄벌 등의 성희롱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책을 마련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죽음이 공무상 재해가 아니라는 공무원연금공단(이하 공단)의 판단에 있었다. 공단은 그녀의 발병과 그로 인한 자살은 그녀의 기질로 인한 것일 뿐 직장 내 성희롱 등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고 봤다. 그녀가 당한 언어적 성희롱 몇번이 그녀의 우울증을 발병시키거나 악화시키기에는 미흡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녀는 입사 뒤 6개월간 시보(일종의 수습) 공무원이었다. 6개월간의 근무성적이 좋으면 정식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었다. 그녀를 성희롱한 사람은 모두 그녀의 근무성적을 평가하는 상급자였다. 정식 임용을 앞둔 그녀는 그들의 부당한 지시나 성희롱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그녀의 근무공간은 매우 좁은 연구실 같은 곳이었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 성희롱 가해자와 함께 근무해야 했고, 심지어 나중에 그녀가 성희롱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린 뒤에도 4개월 가까이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하고 같은 공간에서 근무했다. 게다가 그녀는 가해자들을 포함해 직장 상사들에게 “이쁜이”라 불리며 수시로 커피를 타는 등 업무와 무관한 성차별적인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가해자를 알 수 있었던 여러차례의 성희롱 외에도 “나는 딸을 안을 때 가슴이 닿는 느낌이 좋다”, 회식 뒤 “쉬었다 가자” “둘이 같이 가서 옷을 골라달라” 등 직장 상급자의 농담을 가장한 성희롱 발언이 그녀 또는 다른 여성 동료들에게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었음이 그녀가 남긴 기록에서 확인됐다. 그녀의 여성 상급자도 성희롱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그녀들 또한 시보 공무원에 불과한 그녀와 다를 바 없이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못했다. 정식 공무원이 되고 승진을 해도 성희롱이나 성차별적인 관행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여성 상급자들을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전히 암울할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을까.
(후략)
http://naver.me/5qswN0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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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한명에게만 남겼던 ‘비밀’
죽은 뒤에 나를 찾아온 그녀는 20대 후반의 갓 결혼한 공무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찾아온 것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녀는 수년간 공무원이 되려 공부한 끝에 4전5기 만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런데 어렵게 공부해 공무원이 된 그녀가, 임용된 지 불과 10개월 만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대체 그녀는 왜 죽어야 했단 말인가. 그렇게 원했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그녀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사랑하는 남편과 행복한 삶만 꿈꾸면 됐는데 말이다.
그녀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그는 그녀의 휴대폰에서 친한 친구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확인하고서야 그녀가 왜 병이 들었고, 자살에 이르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녀는 공무원으로 임용된 뒤 성희롱과 성차별에 시달려온 것이다. 그는 그녀의 카톡에서 실명이 확인되는 가해자들의 성희롱 행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였고, 인권위원회는 조사 결과 성희롱 사실을 확인했다. 이 일로 관계기관은 발칵 뒤집어져 성희롱 전수조사를 하고 성차별적 문화 개선, 엄벌 등의 성희롱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책을 마련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죽음이 공무상 재해가 아니라는 공무원연금공단(이하 공단)의 판단에 있었다. 공단은 그녀의 발병과 그로 인한 자살은 그녀의 기질로 인한 것일 뿐 직장 내 성희롱 등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고 봤다. 그녀가 당한 언어적 성희롱 몇번이 그녀의 우울증을 발병시키거나 악화시키기에는 미흡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녀는 입사 뒤 6개월간 시보(일종의 수습) 공무원이었다. 6개월간의 근무성적이 좋으면 정식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었다. 그녀를 성희롱한 사람은 모두 그녀의 근무성적을 평가하는 상급자였다. 정식 임용을 앞둔 그녀는 그들의 부당한 지시나 성희롱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그녀의 근무공간은 매우 좁은 연구실 같은 곳이었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 성희롱 가해자와 함께 근무해야 했고, 심지어 나중에 그녀가 성희롱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린 뒤에도 4개월 가까이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하고 같은 공간에서 근무했다. 게다가 그녀는 가해자들을 포함해 직장 상사들에게 “이쁜이”라 불리며 수시로 커피를 타는 등 업무와 무관한 성차별적인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가해자를 알 수 있었던 여러차례의 성희롱 외에도 “나는 딸을 안을 때 가슴이 닿는 느낌이 좋다”, 회식 뒤 “쉬었다 가자” “둘이 같이 가서 옷을 골라달라” 등 직장 상급자의 농담을 가장한 성희롱 발언이 그녀 또는 다른 여성 동료들에게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었음이 그녀가 남긴 기록에서 확인됐다. 그녀의 여성 상급자도 성희롱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그녀들 또한 시보 공무원에 불과한 그녀와 다를 바 없이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못했다. 정식 공무원이 되고 승진을 해도 성희롱이나 성차별적인 관행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여성 상급자들을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전히 암울할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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