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cy17-SGeXU
https://youtu.be/XHFUhdHXolg
https://youtu.be/TF58rWp2tP0
https://youtu.be/xqfmWuwTtao
당시 합동수사본부장: 보안사령관 전두환.
http://mnews.jtbc.joins.com/News/Article.aspx?news_id=NB11952710
-합동수사본부는 이미 계획된 조직이었다는걸 알려준 증언
전씨는 회고록에서 보안사령관이 합수본부장을 맡도록 돼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합수본부장으로 12·12 때 계엄사령관을 체포해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합수부 안을 만든 보안사 법무참모 박준광 씨 기억은 달랐습니다.
[박준광/당시 보안사 법무참모 : (전 사령관이) 육본 보안부대로 오셔가지고 합동수사본부 안을 짜라. 안을. 그래서 계엄사령관 결재를 내일 내로 받아 내일 새벽에 할 수 있도록 해라.]
김재규 체포 전에 합수부 구성을 지시했단 겁니다.
[박준광/당시 보안사 법무참모 : 10·26이 나기 전에 8월 달에 을지훈련이 있었어요. 계엄에 관한 규정에 대해서 브리핑을 해달라고 사령관의 요청이 있어서…그럼 보안사의 안은 어떤지 그걸 만들어봐라.]
보안사 주도의 합수부안은 그렇게 10·26 사건 두 달 전 만들어졌습니다.
[박준광/당시 보안사 법무참모 : 보안사 안으로 해서 간단하게 만들어서 그 후에 보고를 한 게 있고 그걸 갖고 부산 부마사태 때 한 번 사용했고요.]
10·26 직전 부마항쟁 때는 역부족이었다고 합니다.
[박준광/당시 보안사 법무참모 : 보안사 부산 보안부대장실에서 회의를 하는데 중앙정보요원이 리드하듯이 주도하더라고요. (그때까지 중정이 살아 있었군요?) 살아 있었겠죠.]
김재규 체포로 중앙정보부가 와해되자 전면에 나섰던 겁니다.
[박준광/당시 보안사 법무참모 : (그러면 그 지시에 합수부장은 보안사령관으로 하라 이렇게 된 겁니까?) 뭐, 특별히 그런 이야기는 안 했지만 그 뜻은 그 거기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만들었죠.]
계엄 시 합수본부장을 누구로 한단 규정은 없던 상황을 틈타 전씨가 미리 손을 쓴 겁니다.
이후 신군부는 10·26 재판 검열에 총력을 다했습니다.
공판을 앞둔 김재규 일당의 태도 변화 4단계 범행 미화, 혁명 과시, 국민적 지지로 구출을 예상합니다.
재판에 투입된 공판검열팀의 존재도 처음 확인됩니다.
지침대로 민주나 혁명이 들어간 범행동기는 철저히 삭제됐습니다.
당시 전두환 합수부의 타깃은 바로 김재규였습니다.
+ㅈㄷㅎ과 합수부
https://www.google.com/amp/s/m.khan.co.kr/amp/view.html%3fart_id=201812050600015&sec_id=940100
전두환은 1979년 3월 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10·26 이후 합수본부장이 되었다. 그런데 합수본부에 대해서는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수본부가 10·26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임시 기구였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합수본부는 1979년 10월26일에 구성돼 전두환의 권력 장악이 마무리되면서 계엄령을 해제한 1981년 1월24일까지 존속했다.
<제5공화국 전사(前史)>(5공 전사)는 합수본부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싣고 있다. <5공 전사>는 “계엄하에서 수사 관할이 다른 모든 정보 수사기관(보안·헌병·검찰·경찰·중앙정보부)의 업무를 조정 감독하고 주요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수본부의 설치 이유를 들었다. 애당초 합수본부가 만들어진 것은 대통령 시해사건 조사라는 명분 때문이었지만, 전두환은 계엄 상황을 핑계로 이를 상설기관으로 만들었다. 사실 ‘합동’수사본부라고 하지만 경찰 출신 3명이 수사단 일부를 맡은 것을 제외하면 다른 중요 부서들은 모두 군 고위 장교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사실상 보안사 중심의 기구라고 볼 수 있다. 즉, 전두환은 보안사를 중심으로 검찰·경찰·중앙정보부(중정) 등 다른 공안기관까지 모두 지휘하고자 했던 것이다.
https://youtu.be/XHFUhdHXolg
https://youtu.be/TF58rWp2tP0
https://youtu.be/xqfmWuwTtao
당시 합동수사본부장: 보안사령관 전두환.
http://mnews.jtbc.joins.com/News/Article.aspx?news_id=NB11952710
-합동수사본부는 이미 계획된 조직이었다는걸 알려준 증언
전씨는 회고록에서 보안사령관이 합수본부장을 맡도록 돼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합수본부장으로 12·12 때 계엄사령관을 체포해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합수부 안을 만든 보안사 법무참모 박준광 씨 기억은 달랐습니다.
[박준광/당시 보안사 법무참모 : (전 사령관이) 육본 보안부대로 오셔가지고 합동수사본부 안을 짜라. 안을. 그래서 계엄사령관 결재를 내일 내로 받아 내일 새벽에 할 수 있도록 해라.]
김재규 체포 전에 합수부 구성을 지시했단 겁니다.
[박준광/당시 보안사 법무참모 : 10·26이 나기 전에 8월 달에 을지훈련이 있었어요. 계엄에 관한 규정에 대해서 브리핑을 해달라고 사령관의 요청이 있어서…그럼 보안사의 안은 어떤지 그걸 만들어봐라.]
보안사 주도의 합수부안은 그렇게 10·26 사건 두 달 전 만들어졌습니다.
[박준광/당시 보안사 법무참모 : 보안사 안으로 해서 간단하게 만들어서 그 후에 보고를 한 게 있고 그걸 갖고 부산 부마사태 때 한 번 사용했고요.]
10·26 직전 부마항쟁 때는 역부족이었다고 합니다.
[박준광/당시 보안사 법무참모 : 보안사 부산 보안부대장실에서 회의를 하는데 중앙정보요원이 리드하듯이 주도하더라고요. (그때까지 중정이 살아 있었군요?) 살아 있었겠죠.]
김재규 체포로 중앙정보부가 와해되자 전면에 나섰던 겁니다.
[박준광/당시 보안사 법무참모 : (그러면 그 지시에 합수부장은 보안사령관으로 하라 이렇게 된 겁니까?) 뭐, 특별히 그런 이야기는 안 했지만 그 뜻은 그 거기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만들었죠.]
계엄 시 합수본부장을 누구로 한단 규정은 없던 상황을 틈타 전씨가 미리 손을 쓴 겁니다.
이후 신군부는 10·26 재판 검열에 총력을 다했습니다.
공판을 앞둔 김재규 일당의 태도 변화 4단계 범행 미화, 혁명 과시, 국민적 지지로 구출을 예상합니다.
재판에 투입된 공판검열팀의 존재도 처음 확인됩니다.
지침대로 민주나 혁명이 들어간 범행동기는 철저히 삭제됐습니다.
당시 전두환 합수부의 타깃은 바로 김재규였습니다.
+ㅈㄷㅎ과 합수부
https://www.google.com/amp/s/m.khan.co.kr/amp/view.html%3fart_id=201812050600015&sec_id=940100
전두환은 1979년 3월 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10·26 이후 합수본부장이 되었다. 그런데 합수본부에 대해서는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수본부가 10·26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임시 기구였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합수본부는 1979년 10월26일에 구성돼 전두환의 권력 장악이 마무리되면서 계엄령을 해제한 1981년 1월24일까지 존속했다.
<제5공화국 전사(前史)>(5공 전사)는 합수본부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싣고 있다. <5공 전사>는 “계엄하에서 수사 관할이 다른 모든 정보 수사기관(보안·헌병·검찰·경찰·중앙정보부)의 업무를 조정 감독하고 주요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수본부의 설치 이유를 들었다. 애당초 합수본부가 만들어진 것은 대통령 시해사건 조사라는 명분 때문이었지만, 전두환은 계엄 상황을 핑계로 이를 상설기관으로 만들었다. 사실 ‘합동’수사본부라고 하지만 경찰 출신 3명이 수사단 일부를 맡은 것을 제외하면 다른 중요 부서들은 모두 군 고위 장교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사실상 보안사 중심의 기구라고 볼 수 있다. 즉, 전두환은 보안사를 중심으로 검찰·경찰·중앙정보부(중정) 등 다른 공안기관까지 모두 지휘하고자 했던 것이다.
보안사령관이 전두환....ㅎㅎㅎ 알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