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를 당한 자들의 반항, ‘임인궁변(壬寅宮變)’
가정제는 명(明)의 12번째 황제로 묘호는 세종이다. 중국의 황제들을 살펴보면 제대로 된 인물은 별로 없고 말종같은 인물이 많은데, 아무래도 지구상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환락에 젖어 살다보니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오직 하나 '죽음' 뿐이었다. 그래서 중국의 많은 황제들이 불로장생을 꿈꾸며 단약이라는 것을 먹었는데, 이 단약은 납과 수은이 들어간 것으로 오히려 자신의 수명만 줄이는 꼴이었다.
가정제는 불로장생을 위해 단약 외에도 하나 더 먹는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11~14세 어린 아이들의 '월경 혈'이었다. 가정제는 이 연령대의 어린 여자아이들을 궁녀로 뽑아 하혈약을 강제로 먹였으며 이 아이들에게서 짜낸 월경액과 약가루를 섞어 '홍연'이라는 불로장생 약을 지어 먹었다. 육신의 청결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생리 기간에 먹을 것을 주지않고 약간의 이슬만을 마시게 하였으며, 매일 새벽 황제의 화원에 궁녀들을 보내 이슬을 모아오도록 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병에 걸려 쓰러졌다. 참다못해 저항하는 아이들에게는 매와 형벌로 핍박했다.
가정 21년의 어느날, 황제는 의원이 만들어준 약을 먹은 후 ‘단비(端妃)’로 봉해진 조씨의 거처로 간다. 단비가 거처하는 곳은 ‘익곤궁’이었고, 황후가 거주하는 ‘곤녕궁’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단비 조씨는 가정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지만, 또한 시시때때로 학대를 받고 있었다.
단비를 모시던 궁녀중에서, 양금영(楊金英)이라는 소녀가 있었는데, 가정제에게 성적 학대를 받는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하게 자신의 운명을 걱정하던 단비궁의 궁녀들과 결탁하여, 가정제가 다음번에 익곤궁에 오면, 황제를 죽이기로 계획한다.
이날, 황제가 왔다. 단비와 잠자리를 같이 한 후 잠이 들었다. 단비는 황제를 모신 후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 기회를 틈타서 양금영과 궁녀들이 달려들어서, 가정제를 죽어라 눌렀다. 황제는 꿈에서 깨어나서, 소리치려고 해도, 사람들에게 둘려싸여서 입이 막혔다. 어린 궁녀들이 사람을 죽여본 일이 있을 리 없다. 게다가 상대방은 황상이다. 그녀들은 황제를 죽이고 싶도록 원한을 지니고 있었지만, 사람을 죽일 힘과 담량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10대 소녀들에 불과했다.
어린 궁녀들은 그저 끈으로 목을 졸라죽일 것만 생각했다. 그래서 끈을 이용하여 가정제의 목을 걸었고, 손으로 잡아당겼다. 가정제는 죽어라 저항한다. 그녀들은 끈에 고리를 묶었는데, 이것 때문에 아무리 졸라도 목을 제대로 조을 수가 없었다. 나머지 몇몇 궁녀들은 마음이 급해지자, 자신의 비녀, 머리장식을 빼내서 황제의 몸을 찔렀다.
어려서부터 귀하게만 자란 가정제는 이런 경우를 당해본 적이 없었다. 여러 궁녀에게 눌려서 꼼짝을 할 수 없을 뿐아니라, 놀라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 과정은 짧은 몇 분간이었다. 그러나 궁녀들에게는 평생처럼 길게 느껴졌다.
황제가 죽지 않는 것을 보자, 일부는 겁을 먹었다. 황제는 사람이 아니라, 진룡(眞龍), 혹은 진명천자(眞命天子)라고 생각했던 시절이다. 그가 사람이 아니라 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워졌고, 장금련이라는 궁녀가 익곤궁을 빠져나가서 황후가 거주하는 곤녕궁으로 가서 자수한다.
황후 방씨는 궁녀들이 황제를 죽이려 한다는 말을 듣자, 깜짝 놀라서 익곤궁으로 달려간다. 양금영 등은 형세가 불리해지자, 황제를 버리고, 사방으로 도망친다. 그러나, 황궁안에서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는가? 결국 하나하나 다 붙잡혀 온다.
황후는 황제의 목에서 끈을 풀어주고, 사람을 보내어 어의를 오게 한다. 이때 가정제는 아직 목졸려죽지는 않았지만, 놀라서 혼절해 있었다. 상처는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그저 궁녀들이 비녀와 머리장식으로 마구 찔러서 온 몸에 피가 났을 뿐이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심한 충격을 받은 가정제는 이후 몇달간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꼼짝없이 몸져 누워버렸다. 황후 방씨는 우선 일에 가담한 10여명의 궁녀들을 모조리 능지처참(사람의 생살을 포 떠서 죽이던 형벌)에 처했다. 저잣거리에 어린 궁녀들의 회 떠진 살점들이 전시되었다. 또한 황후 방씨는 이 틈에 눈엣가시였던 단비 조씨도 함께 이 일에 연루시켜 제거하는데, 처음 황후에게 자수한 궁녀는 물론, 일이 발생한 처소의 주인이었던 단비 또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이 사건이 가정 21년에 발생하였고, 임인년이어서, 이를 역사학자들은 ‘임인궁변’이라고 칭한다.
가정제는 자신이 총애하던 후궁인 단비가 임인궁변으로 인해 처형되자 황후 방씨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었는데 몇 년 뒤 황후가 거처하던 곤녕궁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가정제는 그저 그를 방관만 하면서 황후를 구출하지 않았다. 결국 가정제의 '생명의 은인'이었던 방씨는 자신이 목숨을 구해주었던 가정제에 의해 불에 타죽고 만다.
임인궁변 이후 가정제는 완전히 국정을 포기해버린채 두 번 다시 자금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틈을 타 탐관오리와 간신배들이 더욱 기승을 부렸고 한때 강성했던 명나라는 점점 더 멸망을 향해 치달았다.
'만력야학편' 31권에 보면 이때 능지처참을 당한 궁녀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양금영, 요숙휘, 관매향, 유묘련, 진국화, 황숙련, 양옥향, 유금향, 장춘경, 장금련 등이다. 이렇게 하나하나의 이름이 불리워지니 한낱 금수만도 못한 학대를 받다 잔혹하게 처형된 이 아이들도 누군가의 귀한 딸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