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서글픈 성매매'…지구 반바퀴 돌아 한국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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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으로 인해 성매매를 하게 된 베네수엘라 여성들.[연합뉴스]
베네수엘라는 전 세계 미인대회 입상자의 30%, 가장 많은 우승자를 배출하며 ‘미녀 국가’로 불렸다. 그런 베네수엘라 여성들이 최근 전 세계인을 상대로 한 성매매 주범으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베네수엘라 여성이 성매매를 하다 발각돼 강제 출국조치될 예정이다.
서울경찰청 풍속수사팀은 외국인 여성을 불법 고용해 성매매 업소를 조직적으로 운영한 일당 14명을 검거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서울 강남구 일대 오피스텔 10곳을 대량 임차해 약 8억원 상당의 불법 수익을 올렸다. 조직은 업소 운영과 자금을 관리하는 총책, 건물계약 및 성매매 대금을 전달하는 중간관리책, 외국인 여성을 업소에 공급하는 일명 ‘에이전시’를 운영한 브로커, 외국인 성매매 여성 등으로 이뤄졌다.
성매매에 가담한 여성들 5명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베네수엘라 국적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관광비자로 입국했지만, 처음부터 성매매가 목적이었다. 점조직으로 퍼져 있는 브로커를 통해 알음알음 소개받아 성매매 업소로 흘러든다. 경찰은 이 여성들을 전원 출입국외국인청으로 신병 인계했다.
특히 베네수엘라 국적 여성이 국내에서 성매매를 하다 발각된 건 이례적이다. 어쩌다 이 여성은 지구 반대편인 대한민국에서 성매매하다 내쫓기는 신세가 된 것일까.
베네수엘라와 인접한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공공기관 ‘여성-양성평등 전망대’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보고타의 성매매 여성 중 35.7%가 외국인이다. 이 중 베네수엘라 여성은 무려 99.8%였다. 페루 경찰은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베네수엘라 여성들을 성매매에 이용한 인신매매 조직을 검거했다. 베네수엘라를 과거 식민 지배했던 스페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 텔레그래프, 더선 등은 “스페인에서 매춘업에 종사하는 20세 전후 베네수엘라 여성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는 살인적인 물가 상승률에 시달리고 있다. 휴지 값만도 못한 지폐 가치에 돈으로 접어 만든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베네수엘라인도 등장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올해까지 자국을 탈출하는 베네수엘라인이 53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체 인구(3280만명)의 약 16%에 달하는 규모다.
이런 사정 속에서 베네수엘라 여성들은 해외 성매매로 내몰린다. ‘생계형’ 성매매인 셈이다. 콜롬비아 쿠쿠차에서 성매매를 하는 한 여성은 지난 11일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받은 한 달 월급으로 밀가루 한 봉지 겨우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콜롬비아 칼라마르에 있는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다른 여성은 AFP에 “생계 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춘을 선택했다”며 “2016년까지 신문사에서 일했지만, 신문을 찍어낼 종이가 없어서 회사가 망했다”고 털어놨다. 영국 더선은 “스페인의 베네수엘라 매춘 여성 중에는 고국에서 의사, 교사 등 번듯한 직장을 갖고 있던 경우도 제법 있다”고 전했다.
베네수엘라는 사증 면제 협정을 통해 최대 90일까지 한국 무비자 관광 및 체류가 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사증 면제국가 증가 등에 따라 불법체류자가 급증하고 있다”며 “관련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 및 수사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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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생존 위해 밀수 · 절도 · 구호품 의지… 일부 유럽원정 성매매도
계란이 ‘꿈의 식품’ 된 지 오래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상품가격은 의미가 없다. 자고 나면 천정부지로 가격이 올라 눈에 띄는 대로 물건을 사야 한다. 몇 시간 뒤면 가격이 변하므로 비싼지 싼지 따져볼 겨를은 물론 망설일 필요조차 없다. 그나마 물건이 있는 상점도 드물다. 베네수엘라 국회가 지난 1월 9일 발표한 2018년 인플레이션율이 170만%, 정확히 169만8488%로 상상조차 되지 않는 숫자다. 국회 주장대로라면 한국 가격으로 따지면 1000원 하던 사과가 1년 만에 1700만 원으로 오른 셈이다. 더구나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인플레이션율을 무려 1000만%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카라카스에서 300g 사과 1개가 243볼리바르 소베라노(Bs.S) 정도인데 내년에는 2430만 Bs.S로 오른다. ‘한 국가 두 대통령’ 카오스 상태인 정치적 분쟁의 결말을 넘어 181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남미 민주주의 원조국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베네수엘렌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지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배신했어요.”
세 자녀의 엄마인 마리릴 알마는 지난 2월 자신의 힘으로는 아이들을 더 이상 먹여 살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급기야 첫째 아이의 양육권을 포기했다. 일주일 전에는 사흘 일하면 계란 12개를 살 수 있었지만, 이제 같은 개수의 계란을 사려면 엿새를 일해야 한다. 계란은 서민들의 값싼 단백질 공급식품이지만 카라카스에 사는 대다수 사람에게는 ‘꿈의 식품’이 된 지 오래다. 둘째와 셋째 아이라도 살리려면 첫째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는 방법밖에 없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알마는 과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지지자였지만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태도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올해 52세의 리스베스 아네즈는 지난해 5월 구금됐다. 그녀의 죄목은 휘발유 밀수.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가격에 주변 나라에서 휘발유를 몰래 들여오다가 당국에 검거됐다. 정부의 엄격한 법 집행으로 그녀는 118일을 창문조차 없는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석방 이후 그녀는 마두로 반대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매일 거리로 나섰다. 그녀는 영국 인디펜던트지 인터뷰에서 “감옥생활이 내 삶을 바꾸었다”며 “진정한 악이 무엇인지 이제 알게 됐다”고 말했다.
마두로 정권은 화폐교체로 하이퍼 인플레이션 위기를 막고 있다. 지난해 8월 마두로 대통령은 10만 볼리바르 푸에르테(Bs.F)를 1Bs.S로 바꿨다. 물론 이전에도 화폐교체는 있었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역시 2008년 1월 1000볼리바르를 1Bs.F로 평가절하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치솟으면서 과거의 화폐로는 유통이 불가능해졌다. 돼지고기 1㎏을 사려면 궤짝에 돈을 넣어 다녀야 할 만큼 기존 화폐로는 거래가 어려웠다. 물론 화폐교체는 땜질식 처방으로 현재 추세대로라면 매년 새 화폐를 내놓아야 한다. 현금이 사실상 의미가 없어 대부분의 거래가 카드로 이뤄지는 실정이다. 정부는 미국 달러 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에서 ‘달러’가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4일 AFP통신은 “베네수엘라에서 달러는 왕”이라고 전했다. 카라카스에서 3000Bs.S는 1달러로 환산된다. 월평균 최저임금 4000Bs.S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다.
현재 최악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일반 베네수엘렌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 아예 삶을 포기하고 정부 구호품에 100% 의존하거나 밀수와 절도 같은 범죄에 나서는 방법이다. 아니면 미국과 인근 국가로 나간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친인척들이 보내주는 돈에 의지하는 경우도 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베네수엘라를 탈출한 여성들은 중남미는 물론 유럽, 아시아로 가서 몸을 팔기도 한다. 베네수엘렌들은 임시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과 마두로 대통령 지지자로 갈려 있다. 저소득층에서는 석유 기업 국유화를 단행하고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강화한 중남미 좌파의 상징인 차베스 전 대통령을 계승한 마두로 대통령을 여전히 지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최대 석유매장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 정책, 부정부패로 얼룩진 사회주의 정부로부터 등을 돌리는 베네수엘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