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세형(38)씨가 시집 ‘별의 길’을 내기 전이다. 출판사 ‘이야기장수’의 이연실 대표는 올해 6월 그를 처음 만났다. 그날 두 가지에 놀랐다.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나온 그가 랩톱 컴퓨터를 열어 보여준 시가 150여 편이나 됐다. 게다가 좋았다. ‘만약 시들이 영 아니라면 어떻게 말을 하나.’ 이 대표의 마음 한구석엔 고민도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시들을 보고선 이 대표는 말했다. “시집으로 내시죠.” 이번에 놀란 쪽은 양세형씨였다. 그는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신중한 출발이었다.
[시는 나의 심리 치료법]
-시를 쓰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처음부터 시라고 생각하고 쓴 건 아니에요. 거창하게 늘여놓지 않은 글을 쓰면 나중에 보기에도 좋으니까 쓰기 시작했어요. 손으로 쓰거나, 스마트폰에 적어뒀죠. 1년쯤 된 것 같아요.”
-“시집에 실은 작품은 대부분 웃기기보단 슬픈 이야기다. 모든 것이 꼬일 때,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었을 때 주로 썼다”고 한 적이 있어요.
“머릿속에 맴도는 감정을 바깥으로 끄집어낸 다음에 보면 인정을 하게 되더라고요. 마음도 풀리고요. 그러니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좋은 감정이 들 때 ‘뭐가 좋았지’ 곱씹으면서 쓰기 시작하죠. 바람이 좋았고, 햇빛이 좋았고… 그럼 그걸 문장으로 써봐요. 그런 뒤, 행도 바꿔보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글로 표현하면 ‘아, 내가 이런 기분이었구나’라고 정리가 돼요. 그럼 행복이 훨씬 더 커지는 걸 경험했죠.”
-그래서 시 쓰기를 ‘놀이’이자 ‘멘털 치유법’이라고 표현한 거였군요.
“맞아요. 제가 예전엔 게임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시는 그 어떤 게임보다 재미있어요. 그래서 제발 한번 써보시라고 많이 권해요.”
그의 시는 단순하면서도 삶의 단상이 담겨 있어 곱씹게 된다. 이를 테면 이런 구절들.
‘몰랐다/너와 난 먹는 물이 다른 존재였다’(시 ‘다름’ 중)
‘너도 나도 뒤돌면/뭣도 없더라’(시 ‘어차피 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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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들어올 때 노 젓다가 부러진다]
이연실 대표가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시집이 나오기 바로 전날이었다. 출판사로선 가장 바쁜 때다. 그런데 갑자기 양세형씨한테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용건은 “오늘 꼭 함께 밥을 먹자”는 것. 식사 자리에서 그는 이런 말을 이 대표에게 건넸다. “책이 나오면 이제 정말 바빠질 거예요. 독자들의 반응이나 판매량처럼 신경 써야 할 수치들도 많을 거고요. 어쩌면 오늘이 가장 설레고 행복한 날 아닐까요. 그래서 오늘 감사함이 가득한 채로 꼭 맛있는 밥 한 끼를 함께 먹고 싶었어요.”
(...)
그는 시집의 인세 수익을 ‘등대장학회’에 기부할 예정이다. 재심 전문으로 잘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를 TV 예능에서 만난 게 인연이 됐다. ‘등대장학회’는 살인범으로 몰려 21년 6개월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장동익씨가 이사장인 공익재단이다. 장씨와 같은 피해자들이 재심으로 누명을 벗고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보상금과 손해배상금으로 재단 설립에 필요한 출연금을 마련했다. 이들의 사건을 맡은 게 박 변호사다. 양세형씨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 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기부를 하는 이유가 있나요.
“박준영 변호사님한테 ‘등대장학회’를 만들 거라는 얘기를 듣고 기다리던 중이었어요. 시집을 내려고 마음먹었을 때 마침 재단을 설립했다는 소식을 들었죠. 잘됐다 싶었어요. 개인적인 후원 외에, 시집 수익도 이곳에 기부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돈을 벌면 우선 내 주변 사람들부터 챙기고 싶었고 이제는 다행히 도움을 주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 됐어요. 그렇다면 이제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어요. 제가 개그를 했잖아요. 어쩌면 개그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몰라요. 과거에 잘못 살았던 시간을 그나마 갚을 수 있는 기회가 기부라고 생각해요.”
-글이란 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오, (코미디언인) 제가 처음 들어보는 좋은 질문! 하하. 글은 제가 해석하지 못하는 감정을 끄집어 내서 정리한 다음에 다시 (마음에) 넣을 수 있게 만드는 수단이에요.”
-양세형만의 언어로 ‘실패’를 정의한다면 뭘까요.
“실패는 ‘쉴 때’다. 실패를 했다는 건 일단 엄청나게 노력해서 도전했다는 의미잖아요. 굉장히 큰 에너지를 쓴 거죠. 그런데 실패했다고 해서 바로 뭘 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뜻이에요. 그럼 과부하가 오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소파에 앉아 있거나, 혼자서 걷거나, 이런 시집(앞에 있던 ‘별의 길’을 집어 들며)을 좀 보기도 하면서 쉬어야 해요. 하하.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만 아는 고생이 있잖아요. 그렇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했다면, 일단 쉬고 재충전해야죠.”
-경험에서 나온 말 같아요.
“제가 승부욕이 강해요.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이죠. 노력해서 도전했는데 실패? 어, 안 되지. 다시 도전! 이런 식으로 살아왔어요. 내 체력이나 정신력은 점점 떨어지는데 도전은 계속한 거죠. 그러다 보니 과부하가 와서 힘든 때가 있었어요. 번아웃을 겪기도 했고요. 사람들을 웃기는 게 좋아서 개그맨이 됐는데, 정작 나는 웃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간신히 샤워하고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가서 잠은 차에서 자고요.”
-일을 엄청 많이 했던 때네요.
“방송을 10개쯤 할 때였죠. 사람들이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하던데, 신나게 노를 저었더니 노가 부러지더라고요. 그래도 배를 밀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기분이죠. 그때 들었던 생각이 이거예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보다 돛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겠구나. 그래야 노가 부러져도 바람의 힘으로 흘러가지.’ 그래서 돛을 만들려고 노력했죠.”
그에게 시는 심리적 돛 중 하나였을 테다.
(...)
‘별의 길’ 서문엔 그의 수능 점수 얘기가 나온다. ‘88점’ 일화다. 고3 때 그는 애초 수능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마음을 고쳐먹은 건, 정성껏 도시락을 준비한 어머니 덕분이었다. 결과는 88점.
400점이 만점인 수능에서 88점을 맞았다고 인생도 88점인 건 아니다. 그의 시집이 증거가 아닐까. 그가 이 시집에 고이 담은 88편의 시는 수능에서 맞히지 못했으나, 인생에서 답을 찾은 312점의 승화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URL : 양세형 “눈 뜨면 불행… 다음 생을 기대하려던 순간도 있었다” (hankookilbo.com) (전문)
한국일보 / 김지은 기자 / 2023. 12. 29. [실패연대기] <24> 코미디언 양세형 2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