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과 "아이리시맨"과 같은 영화는 과거의 남자들을 기념한다. 그리고 아카데미 유권자들은 그것 때문에 그 영화들을 좋아한다.
우리는 모두 다양성에 있어 아카데미가 갖고 있는 결점에 대한 많은 논평을 읽었다. 8,500명의 유권자들이 실제로 최우수 작품상 후보로 지명한 영화들을 보면 그것이 드러난다. "더 페어웰"과 "허슬러"와 같이 장기간 호평을 받았던 히트작들조차 충분한 아카데미 유권자들에게 접근하여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그 업계 내부자들이 누구인지를 상기시킨다. 대다수가 60세 이상의 백인 남성.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작가 지부 스티븐 킹처럼) 그들이 혹시나 놓쳤을지도 모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고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취향대로 투표한다.
"다양성 이슈가 기대에 못미쳤지만, 나는 예술 분야에 있어 다양성을 결코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완성도만 볼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잘못된 것이다." 킹은 트윗을 남겼고, 비판이 쏟아졌다.
아카데미는 최근 전체 회원 중 유색인종 비율을 16%로, 국제 회원을 20%로, 여성은 32%로 늘렸다. 하지만 이 투표 기관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백인 남성들은 분명하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 작년에는 그들은 ‘그린북’에 대한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반항적으로 그 영화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번에 아카데미가 선택한 최우수 작품상 후보를 살펴보자. 주목할만한 예외인 2편의 현대 영화 '기생충'과 '결혼 이야기'를 제외하면, 7편의 영화가 모두 과거를 되돌아보는 작품이다. 거기다 '작은 아씨들'과 '조조 래빗'처럼 남성과 여성 캐릭터에 모두 초점을 맞춘 앙상블 영화를 제외하면 다른 5개의 작품은 절대적으로 남성에 관한 영화이다.
1969년을 배경으로 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향수 어린 "원스 어폰"은 카우보이, 남자다운 남자들, 미친 히피들, 그리고 영화배우들로 대표되는 오래 전 평온했던 할리우드 시대를 기념한다. 피트는 뉴욕 타임즈가 "빈티지 헐리우드의 멋진놈"으로 묘사한 것처럼, 과묵한 연기를 통해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수상할 적기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 그의 차분한 남성성에 남녀 모두가 반응하였다.
하지만 로비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아닌 "밤쉘"에서의 연기로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녀와 타란티노는 거의 목소리 제거 되었던 그녀의 역할을 어쩔 수 없이 옹호해왔다. 그 영화에서 테이트는 타란티노의 표현을 빌리자면 "평범한 일상 생활"을 보낸다. 그녀는 주인공 릭 달튼 옆집에 살고, 웨스트우드로 드라이브를 하고, 그녀의 남편에게 토마스 하디의 '더버빌가의 테스'를 선물한다 (훗날 로만 폴란스키가 만들 영화). 그리고 자신이 출연한 필 칼슨의 영화 '싸일렌서 파괴부대'를 본다.
(중략) 타란티노만이 남성 캐릭터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토드 필립스의 "조커", 마틴 스콜세지의 "아이리시맨", 샘 멘데스의 "1917", 제임스 망골드의 "포드 v 페라리"는 대부분의 스크린 타임을 남성들에게 바치고 있으며, 여성은 아내,어머니,딸,여자 친구의 역할로 진열장식장 역할을 하고 있다.
(..) 3시간 30분간의 러닝 타임과 화려한 캐릭터들의 상당한 캐스트를 가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마틴 스콜세지는 '아이리시맨'의 여성 묘사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마피아 청부업자 프랭크 시런의 딸 페기 역을 맡은 안나 파킨의 거의 침묵을 지키는 연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수십 년간의 시간이 오가는 이 복잡한 내러티브의 영화에서 가장 비중있는 여성 캐릭터지만. 다시 말하자면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대사가 거의 없다. 스콜세지는 사이트 앤드 사운드 잡지 인터뷰에서 시나리오 작가였던 스티븐 제일리언에게 부탁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페기에게 자신의 아빠가 식료품 주인을 두들겨 팬 이후 부터는 어떤 대사도 주지 말라고 말이다. 영화에서 그녀는 범죄자로서의 아빠를 무언으로 심판하는 역할을 한다.
(..) "이 영화에서 아주 훌륭한 안나 파킨은 오직 한 줄의 대사만 갖고 있다. 하지만 그 딸은 모든 걸 알고 있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프랭크가 그녀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이유고, 그것이 그가 그녀에게 사랑을 바라는 이유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범죄를 알고 난 이후 그와 대화하기를 거부한다."
그것은 타당한 미학적 선택이다. 그래서 이러한 명백한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들의 시네마틱한 업적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들과 감독들이 좀 더 깊이 있고, 생각과 복잡함과 갈등을 가진 여성들이 남성들을 둘러싼 더 나은 상황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들에게 그런 것은 별로 흥미가 없는 일로 보인다.
또한 스테이크를 써는 사람들(고령의 백인 남성들)은 이런 영화들에서 그런 점들이 빠진 것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린북'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한 것을 상위로 올린다. 올해 오스카 유권자들은 (위 영화 제작자들처럼) '#미투', '#타임즈업', '#오스카쏘화이트'와 같은 구호가 없던, 이제는 백미러로 멀리 사라져가는 남성이 지배하던 과거의 시절을 더 애틋하게 바라보고 싶어한 것 같다.
https://www.indiewire.com/2020/01/oscar-nominees-reveal-academy-voters-1202203496/
막문단 뼈를 때리는듯....
요즘 미국 매체에서 이런 식의 분석(?) 많이 나오는 편인데
얼마전 배니티페어도 비슷한 글을 썼음.
"(가장 많은 부문에 후보에 오른) 네 편의 영화 중 세 편의 영화 조커, 원어할, 아이리시맨은 문화적으로 위태롭다고 느끼는 백인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한편인 1917은 말그대로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백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영화들이 이 특정한 시기에 도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아카데미 유권자들은 업계가 뭘 주든간에 그걸 반드시 섭취할 필요가 없지만, 그들은 보통 대안을 찾기 위해 멀리 앞을 내다보려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백래시네... 갈수록 정말 정떨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