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글..은 아니고 댓글인데 여따 자세히 풀어봄
예매했다가도 상영관에 사람 적으면 취소해버리고, 째끄만 상영관은 아예 가지도 못하게 된 이유.
작년 여름이었어. 부천에 놀러갔다가 로스트 인 더스트라는 영화가 개봉해서 가까운 롯시로 예매했거든.
(위치는 부천시청역과 신중동역 사이에 있는 롯시 부천점이야.)
주변에 다 식당가 골목인데다 길목에 공사하고 있어서 입구를 찾기 어려웠어. 예매 시간 다 돼서야 겨우 문을 찾아서 들어가 보니 평범한 고층 상가건물이야. 좁고 조용하고. 엘리베이터 타고 롯시 안에 들어가니까 대낮이라 그런지 사람이 엄청 없더라. 그다지 교통편이 좋은 위치가 아니었으니, 사람이 없을 만도 했지.
그 땐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어. 영화 시작 시간이 몇 분 지난데다 달려오느라 땀이 한바가지였거든. 무튼 뛰어서 올라가 보니까 겨우 2분 정도 늦었는데 벌써 상영이 시작됐더라고? 얼른 들어가서 좌석 찾아 앉으면서 주변을 살짝 보니까 나까지 한 네다섯 있었나봐. 사람이 적으니까 광고도 안 하고 그냥 바로 상영을 시작한 건가 싶었지.
아래는 대략적인 좌석도
가운데 통로쪽에 초록색이 나고. 맨 뒤는 직원이 앉아있었던 거 같아. 같이 보다가 끝날때쯤에 뒷문으로 다시 나가더라고.
내 왼쪽앞 좌석에는 어떤 여자 팔이 팔걸이에 걸쳐져 있었고, 오른쪽 뒤에는 여자 머리꼭지가 보였어. 좌석에 가려져서 얼굴은 안 보였지만. 맨 왼쪽엔 그냥 사람 앉은 형체만 봤고. 어두워서 자세히는 안 보였는데 다들 여자인 거 같아서, 속으로 '역시 다들 크리스 파인 보러 왔구나...' 싶었어. 근데 사람이 이렇게 적다니 ㅜㅜ 대안습.. 이랬지.
영화는 전체적으로 조용했고, 솔직히 평가가 갈릴 만한 내용이긴 한데 무튼 넘어갈게. 중요한 건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야.
영화 후반부에(아직 안 끝남) 맨 뒤에 앉아있던 직원?이 뒷문으로 나갔어. 그리고 상영관 안에 나를 포함한 넷은 정말 숨소리조차 안 내고 영화를 다 본 후에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어. 영화 끝나면 직원이 앞문 열고 퇴장 도와주려고 기다리잖아. 여긴 상영관이 작아서 그런가 인원이 적어서 그런가 엔딩롤 나오는 순간 불도 그냥 다 켜버리더라. 그래도 아무도 안 나가고 부시럭거리면서 나갈 채비도 않고 스크린만 봤어.
난 이때까지만 해도 왠지 의리 지키는 느낌(?)이 들어 훗 파인너츠(크리스 파인 팬덤)들.. 리스펙트.. 이랬거든.
엔딩롤까지 다 올라가고 나서, 가방을 챙겨 일어서면서 같이 영화 본 파인너츠(?)들 얼굴이나 볼려고 했어.
그런데... 일어나니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거야.
나 혼자였어.
분명 영화 끝나고 아무도 나가지 않았거든.
움직인 기척도 소리도 없었어.
어떻게 된 거지?
진짜로, 뒷문이 열린 건 영화 후반부 그 때 한 번이고 그 후론 아무도 일어난 적 없어.
직원이 앞쪽 출구 열고 나서 줄곧 날 보면서 '나가려나? 안 나가려나? 아직 안 가려나?' 기웃거렸기 때문에 나도 좀 신경이 쓰여서 출구쪽을 주시하고 있었어. 그런데 단 한 명도 나가지 않았단 말이지.
주변에 이 일을 얘기해 보니 가능성이 두 가지인데.
1. 원래 나 혼자인데 사람이 있다고 잘못 봤다.
2. 영화에 넋놓고 있느라 사람이 나가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우선 1번. 내 앞의 여자 팔은 절대 못 봤다고 할 수 없어. 그냥 형체가 보였다 정도가 아니라 스크린 불빛이 반사돼서 하얗게 빛났거든. 영화 중간중간 계속 보였어.
그리고 2번 가설. 좌석도 보면 알겠지만 약 90여석 되는 엄청 작은 방이고, 상영관 입구에 통로같은 게 없이 바로 뒷좌석에 뒷문이 붙은 구조라 누가 나가면 문소리+바람소리가 나니까 모를 수가 없어. 앞문이야 당연히 상영 도중에 열리면 빛이 들어올 거고.
여길 그 후로 (사람 많을 때) 두세 번 가봤는데 누가 코 훌쩍이는 소리까지 다 들리더라. 사람이 일어나서 뒷문으로 나가거나 앞으로 나가거나...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모를 수가 없어.
아니 뭐 모를 수 있다 쳐. 그런데 애초에...! 내 뒤라면 몰라도 앞에 두 사람은 일어나면 당연히 내 코앞인데 보일 거 아냐? 팔걸이에 팔 올려놨던 여자가 의자 너머에서 내가 안 보이게 기어서 이동하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 팔걸이의 여자 팔은 언제 사라진 걸까?
약간 멍해져서 가방 챙겨서 일단 앞으로 내려갔어. 현실감이 안 느껴졌어. 영화가 끝나면 영화 안의 세계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잖아? 그 때 느끼는 기시감이 묘할 정도로 무거웠거든. 영화 안의 세계와, 넷이서 그 영화를 보던 세계, 2중의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왔다는 기분? 뭔지 감이 오려나...
내가 일어나니까 그제야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눈치보다가 들어오셔서 청소를 시작했어. 좀 믿기지 않아서 출구쪽에서 좌석들을 눈으로 살피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가운데 통로를 타고 올라가면서 좌석 바닥을 훑어보다가 내가 앉았던 자리만 의자를 펴서 턴 다음에, 그대로 또 통로를 따라 눈으로만 훑으면서 뒷문으로 나갔어. 나 외의 다른 좌석은 건드리지도 않고.
멍한 채로 엘리베이터에 타서 밖으로 나왔어. 진짜로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구.
영화관 밖으로 나와 좀 걷다 보니까 머리가 좀 식었어.
왜 예매 시간 정각에 광고도 없이 상영이 시작됐지?
원래 보는 사람이 없으면 광고를 스킵하나? 세네 명은 광고를 틀어봤자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아무도 없어서 영화를 틀어버린 건가?
이건 그렇다 치고..
청소 아주머니는 뭐야? 관객이 어디 앉는지 확인하나? 중간에 누가 나갔을 수도 있는 건데 왜 내 자리만 확인하고 청소한 거냐구.. 왜 출구에서 남자직원이랑 둘이 나만 쳐다보고 있었던 거야..? 마치 상영관에 나만 앉아있었다는 것처럼?
한여름인데.. 갑자기 막 팔에 털이 쭈뼛 서면서 소름이 돋았어.
귀신이었던 걸까? 아니 뭐 귀신도 영화 볼 순 있겠지. 크리스파인을 구경하러 온 귀신일 수도 있잖아.
나한테 해코지 한 거도 아니고 무서울 일은 아니지만..
근데 내가 심령 현상을 경험했고 그게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났고 또 내 착각이 아니라고 깨달은 순간 느껴지는 그 심장 쪼그라들 정도로 무서운 감각 알려나. 말로 표현은 못 하겠는데.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끔찍한.
암튼 이후로 작은 상영관이나 사람 없는 시각에 영화관 절대 못 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