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여보세요...난-나는 지금 처음 전화해보는건데, 어, 그냥 얘기하면 되나요?"
에린은 심장이 덜컥하는걸 느꼈다.
종종 생기고는 하는 일이었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신가요?"
"제-제가...제가 잘못을 저질렀어요."
그녀는 이런 이야기들을 몇년간 계속 들어왔다.
비극, 죄책감, 애통, 후회, 모든 이야기들을.
"괜찮아요, 내게 얘기해봐요."
'얘기해봐요', 그게 가장 처음 해야 할 말이었다.
에린은 이런 전화를 처음 받아본 그 날 인터넷을 통해 몇가지를 배웠다.
가이드라인. 자살 충동을 가진 사람의 전화를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에 대하여.
그녀는 모든 지시사항을 외웠다.
'일단 상대가 이야기를 하게 내버려두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라'
"제-제가 차로 사람을 치었어요."
이런, 이거 좀 심각한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방금 일어난 일인건가요?"
"아뇨, 아뇨, 방금은 아니에요. 오십년도 더 된 이야기에요."
"그래요..."
'발신자가 울기 시작한다면, 그냥 울게 내버려두어라.'
남자가 울기 시작했다.
"전방주시를 제대로 안하고 있었거든요. 내 잘못은 아니에요.
그냥-그냥, 좀 술을 마실 일이 있었단 말입니다. 맥주 한잔이었나, 기껏해야 두잔이었어요!
누가 시발 맥주 두 잔 마시고 취한답니까? 그건 음주운전이 아니었어요."
'발신자는 욕하거나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그냥 내버려두어라.'
"괜찮아요. 이름이 뭐지요?"
"오스카."
"내게 얘기해봐요, 오스카."
에린은 교통사고나 음주운전에 대해 이야기하고싶지 않았다.
사랑스럽던 작은 엘라인을 생각하게 만드는 주제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미 전화를 받았고-이야기해야만 했다.
"난 그 여자애가 누군지 몰라요. 어렸는데, 네, 어린애였어요. 어린애였다고..."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에린은 전화기 너머에서 흐느끼는 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였다.
"대체 무슨 병신새끼가 브랜트우드 한복판에서 애를 혼자 놀게 내버려둔답니까, 애초에?
내가 뭘 어쨌어야 했겠어요? 평생을 감옥에서 썩으라고? 실수 한 번 했다고 남은 생을 다 망쳐버리라고?"
'차분함을 유지하고, 발신자를 지지하라.'
"어디-어디서 사고가 일어났다고요?"
건너편 남자의 목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브렌트-브렌트우드요."
"언제요?"
"1966년 쯤, 삼월...이십 오일이었습니다."
엘라인이 숨을 거둔 날이었다.
엘라인이 경찰이 끝까지 찾아내지 못한 뺑소니범에게 치인 그 날이었다.
"나는..난 내 여생을 망치고싶지 않았어요," 남자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 행복한 날을 보낸적은 한번도 없어요. 한번도-하루도요...내가 괴물인걸까요?"
'절대 발신자를 판단내리지 말아라.'
"더이상 못 견디겠습니다. 오십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매일 아침을 똑같이 보내고 있어요,
똑같은 감정이 가슴 속에 응어리진채 매일 아침을 깨어나요. 잊을수가 없어요, 잊을 수가, 잊을 수가, 잊을 수가..."
'발신자에게 물어야 할 네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다. 첫번째: '자살을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고있습니까?''
두번째: '어떻게 자살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자살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셨나요, 오스카?"
"네," 남자가 꺼져가듯이 전화 건너편에서 속삭였다.
"로프로, 차고에서요. 지금 당장."
세번째 질문: 자살에 필요한 도구를 손에 넣으셨습니까?
네번째 질문: 언제 자살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두셨습니까?
"지금 당장 죽어버릴겁니다. 더 이상, 더 이상은, 매일 매일 그 여자애의 얼굴이 떠올라요."
"나도 그래요," 에린은 대답했지만, 목소리가 너무 낮아 남자는 듣지 못했다.
이러한 질문들의 저의는 상대방의 위험도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모든 네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다면, 상대방에게 구급차를 보내거나 가까운 응급실에 방문하라.
"당장 해버릴겁니다."
에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목에 로프를 감고있어요."
에린은 처음 임신 사실을 알게된 날을 떠올렸다.
길가에 쓰러진 엘라인을. 술독과 서로에 대한 혐오로 점칠된 남편과의 십년을. 결국 자신을 떠나버린 남편을 떠올렸다.
에린은 끝까지 찾지 못했던 음주운전자를 떠올렸다.
"해버릴겁니다. 난 그래도 마땅해요."
남자의 목소리는 약해졌고 울음을 터뜨릴것만 같았다. 에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도 내가 이래 마땅하다고 생각하나요?", 남자의 목소리는 애걸하듯이 들렸다. 그는 흐느끼고 있었다.
"내가 정말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엘린은 수화기를 귀에서 떨어뜨리고 그 때묻은 플라스틱 조각을 잠시 쳐다보았다.
전화 너머에서 남자의 흐느끼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가이드라인은 이러했다: '상대가 정말로 현재의 자살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되었을 때에만 전화를 끊어라.'
에린은 눈물을 훔치고, 다시 전화를 들어 귀에 가져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