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타닥타닥
아궁이에 밥 짓는 소리가
수증기와 뭉게뭉게 서산 넘는 저녁 무렵

아직 이른 저녁이었다
우리는 동네 어귀에서 땅따먹기나 구슬치기 따위의 시답잖은 놀이를 하며 저녁 신호에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골 마을이라 마을 초입에는 무시무시한 얼굴을 한 장승 두개가 세워져 있었고 그 길을 따라 들어와서는 마을 중앙 공터에는 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을 법한 커다란 고목 나무가 있었다.
무슨 나무인지는 몰랐으나 우둘투둘한 나무 껍질은 한평생 농사일 하신 우리 할배 손 같이 거칠고 투박했다. 그래서 우리 할배만큼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겠거니 했다.

우리 같은 꼬맹이들은 어른 서넛이나 맞잡아야 겨우 끌어안을 수 있는 커다란 고목 나무에 오르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며 놀았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었으나 뭔가 다른 것은 늘 있었다.

늦가을 무렵에는 동네 할매들은 꼬맹이들을 단속 시켰다. 고목 나무 밑 평상에 삼삼오오 모여 아가들은 해 떨어지면 얼릉 집에 가는기라. 했다.

보초를 서듯 꽤 쌀쌀한 날씨인데도 솜바지를 꺼내 입은 할매들이 돌아가며 그 자리를 지켰다.

그맘때 쯤이 되면 스산한 날씨 탓인지 마을 아이들이 한 밤 중 잠이 깨어 고목 나무 주변을 어슬렁 거리거나, 나무 아래 평상에서 잠든 채 발견되곤 했다. 깨어 돌아다니던 아이는 기억이 없고 잠든 아이는 고열에 시달리며 헛소리를 했지만 며칠 열병 처럼 앓고 나면 곧 나아지곤 했다. 그리고 소꿉친구였던 지금은 이름도 흐릿해진 몇 명의 아이들은 그런 일이 있은 후 도시로 떠났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금새 잊혀진 채 다른 계절이 찾아 왔다.

저녁밥을 두둑이 먹고 좋아하던 티비 프로그램을 가족과 함께 보고나서 느릿느릿 학교 갈 준비를 해 놓고 잠자리에 들었던 평범한 날이었다.

쌀쌀한 날씨에 코까지 이불을 덮어썼는데 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진선아 놀자~ 진선아 놀자~

이 밤에 누굴까. 아까 낮에 예쁜 구슬만 다 뺏긴 현미가 떠올랐다. 근데 현미 목소리는 아닌데.
부시시 눈을 비비고 멍 하니 앉았는데 이제는 현미목소리다.

진선아 노올~자~

뭐야. 내복에 잠바를 대충 꿰어 입고 마당으로 나갔는데 현미는 없고 이제는 대문 밖에서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꼬맹이들이 겁도 없이 잠도 안자고. 약간 겁도 났지만 뭐 때문에 아이들이 이 시간에 다 깨어 어른들 몰래 뭘 하고 놀려고 하는지 궁금함에 조바심이 났다. 대문을 열고 나가니 애들은 벌써 골목을 돌아 달려가 버렸다.

야아.. 같이 가아..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발소리가 멀어지자 겁이 났지만 내일 학교에서 겁이나서 따라가지 못했다고 말할 순 없었다. 꺾어신은 운동화를 직직 끌면서 자취를 따라 가니 유난히 달 밝은 밤에 동네 아이들 몇몇이 웃으며 고목나무를 사이에 두고 강강술래를 하듯 손을 맞잡고 빙빙 돌며 연신 깔깔대고 있었다.

어쩐지 얼굴은 낯이 익은데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 아이들 대여섯 명. 어쩔 줄 몰라 엉거주춤 넋이 나간 채로 구경만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나를 보더니 깔깔대며 손짓을 했다.

쭈뼛대며 그 아이 손을 잡고 다른 편에는 다른 아이의 손을 잡았다. 맞잡은 손은 차갑고 끈적였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는 다시 시작 됐고 나도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놀이는 끝날 줄을 몰랐다. 그 큰 나무를 수십 번 빙빙 돌았는데도 아이들은 돌림노래같은 감정 없는 웃음 소리를 내며 지치지도 않은 채 팔짝 팔짝 뛰었다.

식은땀이 나고 곧 토할 것 같은 순간 오른 손을 맞잡은 아이가 갑자기 내 얼굴에 얼굴을 바로 들이댔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까맣게 허공인 아이가 실룩 웃었다.

이제 가.

눈을 뜨니 옆집 할매가 내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자 토악질이 나왔다. 한참을 구역질을 하고 엄마 얼굴을 보니 눈물이 줄줄 나는게 겨우 볼을 타고 느껴졌다. 나는 고목 나무 평상에 넋을 놓고 앉아있었다고 했다.

그 날은 학교를 가지 않고 엄마 품에 안겨 아기 처럼 잠을 잤다. 그리고 꼬박 3일을 앓았는데 꿈에서도 내내 나무 주변을 뱅글뱅글 돌고 돌고 그 눈 없는 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꿈을 꾸고 일어나면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 다시 잠이 들고 또 꿈을 꾸게 되는 거였다.

열병이 끝나고 학교를 가도 되겠다고 얘기를 들을 때 쯤엔 약간 기억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두려운 마음은 남아있었다. 그 아이들은 누군지 내가 본 게 진짜가 맞는지 궁금했지만 엄마는 내가 그 일에 대해 말하지 못하도록 엄청나게 혼을 냈다.

절대로 뭐가 보여도 본 것을 들키면 안돼. 그냥 시간이 지나면 어찌어찌 살아는지니 괜찮을거야. 괜히 부정탈라 쓸데 없는 소리 절대 말어. 알겠지?

뭐가 보인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네- 했다. 추석을 왁자지껄 하게 보내고 겨울이 되고나니 기억은 희석되어 고목나무를 근처를 오가도 그저 그게 꿈이었겠거니 마음을 놓게 되었다.

겨울방학을 앞둔 어느날 하교길이었다. 청소 당번이 늦게 끝나 터덜터덜 돌맹이를 차며 혼자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나를 불렀다.

진선아~ 노올자

작게 속식이는 소리. 고개를 들어보니 누군가 흔들흔들 고목 나무에 매달려 그네를 타고 있었다.

그네가 있었나.
생각하는 찰나 그게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느껴졌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춤추듯 나무에 매달려 앞 뒤로 흔들 흔들 하는 그 움직임을 정신 놓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보고있으니 그게 무엇인지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목이 꺾인 여자가 굵은 가지에 목을 메고 웃고 있었다. 눈은 누군가 도려낸 듯 눈 알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고 검붉은 피딱지같은 것들이 진득하게 그 주위에 말라붙어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새빨간 입은 귀 밑까지 찢어져 웃는 것 같았는데 입술은 연신 씰룩 씰룩 이상하게 움찔 거리고 있었다.
그 흔들거리는 형상을 보고 있으니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비스듬히 꺾인 목을 하고 여자는 깔깔 웃으며 나른하게 흔들렸다.

진선아 놀자~

순간 누가 내 뺨을 쳤다. 이른 저녁을 드시고 평상으로 모여들던 할매들 중 하나였다.

아야 정신 드나?

근데 무서워 할 필요 없는기라. 이제 보여도 절대 눈길도 주지 말고 해 떨어지면 고목 나무 근처에는 얼씬도 말어. 알았제? 어여 드가라이.

얼얼한 뺨을 부여잡고 축축해진 바지를 연신 치켜올리면서 집에 가서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고목나무에서 본 그것을 부모님께 얘기했는데 아무 말도 없이 듣고 있던 아버지는 난감한 듯 했고. 엄마는 얼굴이 백지장 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이후로 잊혀질 만 하면 그것이 보였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것에 대해 얘기하거나 떠올릴 수록 그것의 모습은 더욱 기괴하게 선명해 졌다. 고목 나무를 지날 때는 눈을 감았지만 눈을 감아도 나무에 매달려 흔들 거리는 그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다음 해 새학기 나는 친가가 있는 서울로 전학을 와야했다.

어른들의 조각 난 이야기를 꿰어 짐작한 바로는 옛날 옛적 동네 과부가 홀로 아이를 키우다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고 반쯤 미쳐 그 나무에 목을 매 그 혼령이 나무를 못 떠나고 스산한 계절에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왜 꼬맹이들에게만 해꼬지를 한 건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때의 기억도 희미해졌지만 문득 시선의 끝에 힘없이 흔들리는 새하얀 두 발이 보일 때가 있다.
  • tory_1 2019.06.20 12:23
    홀린 애들이 자꾸 나오면 굿이라도 해서 달래줘야 할 것 같은데... 딱하다...
  • tory_2 2019.06.20 14:12

    이런 이야기 좋다 꿈같은거는 불호라 이런거 많이 올라왔으면 ㅠ.ㅠ

  • tory_3 2019.06.20 15:22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19/12/18 07:13:31)
  • tory_4 2019.06.20 15:40

    와 이런거 너무 무서워ㅠㅠㅠ

  • tory_5 2019.06.20 17:57
    덤덤하게 적혀있어서 더 스산하고 으스스해
  • tory_6 2019.06.20 18:21
    어느 시골 마을에 실제로 있었을 것 같은 이야기다.. 분위기가 공포방에 딱 어울려.
  • tory_7 2019.06.21 09:31
    으스스하다 잘 읽었어 재밌당
  • tory_8 2019.06.21 14:17

    자기 애는 갈 곳에 갔고 자기는 못 가서 이승에서 다른 애를 찾는 건가...

  • tory_9 2019.06.23 18:46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0/02/16 20:03:47)
  • tory_10 2019.06.26 02:05
    으어 무섭당 ㅠ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전체 【영화이벤트】 화제의 오컬트 애니메이션 🎬 <키타로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 시사회 8 2024.05.14 609
전체 【영화이벤트】 올해 가장 사랑스러운 북유럽 성장 영화! 🎬 <오늘부터 댄싱퀸> 시사회 3 2024.05.14 437
전체 【영화이벤트】 따사로운 위로, 힐링 무비! 🎬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파워 공감 시사회 19 2024.05.09 3796
전체 【영화이벤트】 기막힌 코미디 🎬 <드림 시나리오> ‘폴’과 함께하는 스윗 드림 시사회 34 2024.05.07 4376
전체 디미토리 전체 이용규칙 2021.04.26 574273
공지 꿈글은 오컬트방에서 작성 가능합니다. 2021.02.25 264224
공지 공포방 공지 69 2017.12.18 279483
모든 공지 확인하기()
550 공포괴담 [펌] 부산 남포동 심야버스에서 소름돋는 실화 (현실공포) 82 2019.06.22 13419
549 실제경험 술 진창 퍼붓고 호랑이 본 이야기 24 2019.06.21 6397
» 공포괴담 고목 나무 이야기 10 2019.06.19 3892
547 공포자료 [펌] 공포보다 더 공포같은.. 교도소 에서 만난 사람들 72 2019.06.19 11618
546 공포괴담 Reddit) 할머니를 너무 꽉 안지는 말렴. 15 2019.06.17 7724
545 공포괴담 [펌] 마지막 인사 58 2019.06.17 9821
544 실제경험 아빠친구의 방문과 아빠의 꿈 (사진O,안무서움) 43 2019.06.16 5924
543 공포괴담 [펌]나는 네 딸을 유괴했다. 장소는 편지 안에 적어두었다. 71 2019.06.14 9666
542 실제경험 난 이제 취객들 도와주기 무서워 32 2019.06.13 7910
541 실제경험 납치범이었을까 소름돋았던 경험 16 2019.06.13 4957
540 공포괴담 [펌]외할머니의 신기 27 2019.06.13 6951
539 공포괴담 [펌]학창시절(90년대 후반) 부산에서 봤었던 싸이코패스 이야기 12 2019.06.12 6524
538 공포괴담 [펌]내게는 언니가 있다. 21 2019.06.12 6055
537 공포괴담 실화) 기가 센 사람 14 2019.06.11 8844
536 공포괴담 [펌]그녀석 집의 냉동실에는... 27 2019.06.11 5297
535 공포괴담 직장동료의 신기한 동생이야기 20 2019.06.10 6350
534 실제경험 소소한데 점 본 얘기 써볼게 33 2019.06.10 8676
533 공포괴담 [레딧] 18살이 되는 해, 사람들은 '스킬포인트'를 영구적으로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은 갖고있는 20포인트를 모두 '행운'스탯에 몰아넣기로 결심한다. 16 2019.06.10 7127
532 공포괴담 [펌]무더운 여름밤, 괴담으로 식히세요~[괴담+스압주의] 13 2019.06.08 3435
531 공포괴담 [펌]저희 어머니가 불교를 믿는 계기 24 2019.06.08 7828
목록  BEST 인기글
Board Pagination 1 ...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 86
/ 86

Copyright ⓒ 2017 - dmi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