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현관문에 우유투입구 있는 토리들 있어? 이거 잠금 잘 풀리니?
그냥 나는 이게 내 상상이나 꿈 같은데 엄마한테 얘기하니 좀 찜찜하다고 하시네.
누구나 어릴 때 한 번 쯤 그런 상상해봤을 거야.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생각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환상 같은 거 있잖아. 이불 밖으로 나온 내 발목을 잡으려고 하는 기괴한 웃음을 띈 이상한 사람이라던지, 밤 새 책상과 의자 사이에 웅크리고 나를 노려보는 여자 같은 거.
그래서 그 날 밤의 일도 그냥 그렇게 내가 상상해 낸 무언가라던가.. 아니면 그냥 꿈일 거라고 생각했어. 아마 꿈일 수도 있을 거야. 벌써 6개월도 더 넘은 일인데 나는 아직도 그 날 밤의 꿈을 꿔. 매일 잠드는 게 두려울 정도로 잊혀 질 쯤 되면 다시 꿈을 꾸거든 그 날의 기억이 조금씩 더 선명해 지는 건 아마 꿈 때문 일거야. 꿈 이야기를 하려면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를 해야겠지.
여름이었어. 에어컨을 틀면 추워서 기침이 나는데, 끄면 다시 숨이 턱턱 막히는 열대야가 기승인 그런 밤. 감기에 걸릴 것 같아서 에어컨을 켜고 자는 것을 포기하고, 맨 바닥에 누웠어. 우리 집은 분리형 원룸이라 주방 겸 거실과 방 사이에 미닫이문이 있고, 미닫이문을 열면 현관문이 보이는 구조야. 아파트이긴 한데 좀 오래됐고. 현관문에는 옛날에 우유나 신문을 넣어주던 구멍이 하나 있는데 지금은 쓰지 않아서 아예 잠가두고 있었어.
뭘 해도 너무 너무 더워서 베란다 문을 열고, 미닫이문도 열고 조금이라도 바람이 통했으면 좋겠다 하고 바닥에 누워 내 체온으로 바닥을 데우고, 또 조금씩 뒤척이다 잠이 들었던 거 같아. 꿈에서도 덥다며 선잠을 자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렸어.
‘딱’
소리가 들리자마자 갑자기 잠이 확 깼는데 뭔지는 모르지만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거든. 가끔 가구들이나 가전제품에서 그런 소리가 나기도 하니까 잘못 들었겠지 하면서. 그런데 저 생각을 하자마자 또 소리가 들리는거야.
‘딱,, 딱’
이렇게 두 번 현관문 쪽에서 들렸어. 나는 문 쪽을 등지고 누워있었는데 문쪽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좀 무서운거야.. 이미 시간은 1시도 넘은 것 같았고 이웃인 것 같지도 않았거든.
‘딱’
이 쯤 되니까 갑자기 울고 싶어지더라. 이미 정신은 맑아질 데로 맑아져서 도저히 잠이 안 올 것 같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근데 돌아보면 안 될 것 같은 거야. 뭔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절대 돌아보면 안 되고 문 너머에 뭔가 있다는 그런 생각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누워서 고민한 것 같아. 그 사이에 소리는 계속 들렸어 간헐적으로 그 때마다 심장이 너무 철렁한거야.
한 30분 쯤 지났을까.. 몇 번이나 소리가 난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났어 한 5분 정도 간격으로. 마지막으로 소리가 난 직후에 정말 벌떡 일어나서 현관문 쪽은 쳐다도 안 보고 미닫이문을 닫고 불을 켰어. 한 3시 정도 됐더라. 그 이후에는 더운 것도 모르고 덜덜 떨면서 이불 덮고 있다가 겨우 잠들었던 것 같아.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그 현관문 우유투입구가 비쭉 들어 올려져 있었어. 너무 소름이 돋았지만 잠금장치가 풀렸나보다 했어 어쨌든 그게 안 잠겨 있으면 밖에서 열 수는 있으니까. 그래도 별 일 아니었지.
그렇게 꺼림직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일 없었으니 별 생각 없이 여름이 지났던 거 같아. 물론 그 이후로 미닫이문을 열어놓고 잔 적은 없어.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나고 꿈이 시작됐어. 배경은 똑같아 그 여름 밤.
꿈에서 시점은 내가 아니고, 내방의 상황을 다 볼 수 있는 거야.
뭔지는 모르겠는데 우유투입구가 열리고 닫히면서 탁탁 소리를 내는 그 장면이 반복 돼.
자고 있는 내 뒷모습과 함께. 이 꿈을 꾸고 자고 일어나면 너무 기분이 나쁜거야.. 차라리 뭔가 속시원 하게 뭐라도 나오면 좋을텐데 그냥 그 때의 느낌, 공기, 소리 그런 게 자꾸 반복되니까 무슨 정신병이라도 걸릴 것 같더라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사실 어제도 같은 꿈을 꿨는데 이번엔 좀 달랐어.
시점이 내가 누워있는 자리긴 한데 현관문이 보여. 반대로 누워있는 거지. 정말 너무 싫더라. 꿈인 걸 알았지만 깨어날 순 없었어. 누가 내 눈을 강제로 벌린 것처럼 꼼짝도 못하고 우유투입구가 열렸다 닫혔다 하는 걸 보고 있었어야 했는데, 갑자기 열린 틈 사이로 보이는 거야. 새하얀 얼굴이. 웃고 있었어. 소리는 안 들리는데 정말 찢어져라 웃고 있는 얼굴이 그 찰나 탁 소리가 나면서 닫히는 투입구 사이로 보였어. 가위 눌린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더라. 그리고서 다음 열릴 때까지 꼼짝없이 보고 있는데 허연 손이 쑥- 하고 들어왔어.
사람의 신체라고 생각할 수 없을만큼 이상하게 움직이는 손 그다음에 팔꿈치, 거의 어깻죽지까지 들어와서 미친 듯이 움직이는거야 마치 나를 잡으려는 것처럼.
그리고서 그 다음에는 얼굴, 그 다음에는 팔. 그 미친 짓거리를 밤새도록 지켜보는 꿈을 꾼거야.
어느 순간 기절한 것처럼 정신을 잃었던 거 같은데 다행이 꿈이더라고 덕분에 늦잠 잤고 씻는 둥 마는 둥 출근하는데, 우유투입구가 열려있더라. 그래서 그냥 그 길로 나와서 친구네 집에 왔는데 잠자는 것도 무섭고 집에 들어가는 것도 너무 무서워.
그냥 회사 일로 바쁘고, 또 요즘 귀신 얘기 많이 읽어서 헛것이라고 믿고 싶은데 좀 찜찜하다. 나올 때 현관 바닥에 손바닥 자국 같은 것도 있었던 거 같아서. 잘못 본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