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노 쿄코란 사람이 쓴 [무서운 그림- 아름다운 명화]란 책을 보면
저자가 진짜 무섭게 느끼는 그림들과 그 이유를 서술해놓았어.
이 중에서 나도 진짜 무섭게 느껴진 그림들을 한 번 뽑아볼까해.
1.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투르누스는 우주의 신 크로노스를 살해했지만
그에게 '너도 제 아이에 손에 죽을 운명'이란 예언을 듣게 돼.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는 족족 자기가 잡아먹지만, 결국 제우스에게 그 역시 살해당하고 말지.
나카노 쿄코는 이 그림에 대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자각하는 표정과
그러면서도 운명에 따라야하는 그 모습이 너무 무섭다고 표현했어.
2. 1581년 11월 16일 이반뇌제와 그의 아들
러시아의 폭군 이반 4세는 임신한 며느리의 복장이 단정치 못하다는 이유로 마구 폭행하여 그녀를 유산시켰다. 아버지에 의해 이미 두 명의 아내를 수도원에 보낸 황태자는 아버지에게 맞섰고 이에 분노한 황제는 자신의 쇠지팡이로 아들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정신을 차린 황제가 아들을 품에 안은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 후였다. 초점 잃은 눈을 부릅뜬 황제는 아들을 부둥켜안아 보지만 죽어가는 아들의 뺨에는 눈물 한 방울이 흐를 뿐이다.
출처 : [페이스북 그림 읽는 시간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저자는 '광기에 파묻혀 일을 저지르는 순간보다 그 속에서 깨어나 자신이 무슨 짓을 한건지 자각하는 순간이 무섭다.' 라고 표현했어.
3. 키클롭스
로댕과 같은 해에 태어난 르동은 신비롭고 상징적인 화면을 구사하는 아주 독특한 화가다. 그가 그린 폴리페모스는 그 어떤 키클롭스보다 섬뜩하고 애처롭다. 르동은 유년시절 외숙부의 수양아들로 보내진다. 그는 형에게 애정을 듬뿍 쏟는 어머니를 보면서 스스로 버려진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런 외로움과 방치, 편애는 르동의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 갈라테이아를 훔쳐보는 키클롭스는 마치 르동처럼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듯 처연하게 훔쳐보고 있다. 눈 하나가 얼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키클롭스의 커다란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근원적 사랑의 결핍은 인간을 외눈박이로 만든다. 게다가 덩치만 큰 어른 아이로 말이다. 세상과 인간을 입체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4. 무대 위의 무희
‘무대 뒤의 은밀함’이란 무용수들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과 관련된다. 당시 무용수들은 주로 노동계층에서 선발되었고, 일고 여덟 살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정식교육을 받지 않아 글을 읽거나 쓸 수 없었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들은 일주일에 엿새씩 늦은 저녁까지 수업과 연습에 몰두했다. 무용수들의 엄마들 또한 인고의 세월을 보내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그들 중 대다수는 드가가 즐겨 그리던 세탁부들이었다.
그들은 집안살림을 갉아먹는 딸들을 위해 가장 밑바닥 직업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딸을 젊은 무용수로 키우는 것만이 노동계급의 가난에서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늘 딸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딸의 처녀성을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비싼 값을 부르는 고객(후원자)을 찾을 때까지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베를리오즈는 오페라를 세련된 탐욕과 겁 많고 헐벗은 희생자를 엮어주는 곳에 비유했다.
돈 많은 후원자들은 발레리나를 마치 우리에 갇힌 사냥감이나 시녀 정도로 여겼던 것! 한 전직 무용수는 “일단 오페라에 들어오고 나면 창녀로서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곳에서 고급 창녀로 길러지는 것”이라고 탄식했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252100027
이 그림에서 주시해야 할 건 무대 위의 무희가 아니라 무희 뒤 편 커튼에 있는 남자인데, 이 검은 남자들은 무희들의 후원자로서 무희들에게 돈을 대주는 대신 무대 뒤편에서 직관을 하거나 성상납을 받는 등의 대가를 얻었다고 해. 화려한 듯 하면서도 의미를 알고나면 오싹한 그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