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출처: https://www.reddit.com/r/nosleep/comments/a30veu/a_demon_saved_my_life_i_wish_he_hadnt/)


내가 악마를 처음 만났던 건 17살쯤 됐을 때였고 그놈이 내 목숨을 구했어.

근로학생 알바 끝나고 집에 가려고 버스정거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필 우산을 안 가져온 날이었어.


늘 그렇듯이 우산 안 가져온 날엔 꼭 비가 오지. 그날도 장대비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거의 발목까지 물이 찰 정도였어.

그러다 갑자기 비가 딱 내 머리 위만 멈추는 거야. 올려다봤더니 거기 그놈이 있었지. 그놈이 내 머리 위에서 우산을 씌워주고 있었어.


그놈은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말만 듣고 빚어만든 몰골을 하고 있더군.

최소 2m는 될법한 키를 해가지고선 비쩍 말라비틀어진 몸매에 구부정한 어깨가 무슨 독수리같은 꼴이었어.


얼굴은 또 살점이라곤 없고 뼈만 앙상해서는 살이 있어야 할 곳은 죄다 푹 꺼진 와중에 정말 친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어.

뻐드러진 회색 이가 다 보이도록 환한 미소를 말이야.


"자네 이야기 못 들었나?" 그놈이 묻더라고.

"뭘?" 내가 대꾸했지.


그러니까 그놈이 받아치더라고. "오늘은 버스 운행 안 한다네. 운전사가 이 날씨에 음주운전하다 꼬라박았거든. 승객은 전원 사망했고."


명랑하다시피한 어조로 말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속이 다 뒤집힐 것 같았어.

그놈 말을 믿을지 말지를 떠나서 당장 이 자리를 뜨고 싶었어. 최대한 이새끼랑 멀어져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거든.


"어....그럼 오늘은 걸어가야겠네." 내가 말했어.

"그래, 그러는 게 좋을 걸세." 그놈이 그러더군. "자, 여기 우산 가져가게나."


그리고선 쓰고 있던 우산을 내게 넘겨줬어. 아무 생각도 없이 우산을 받아들었고 손끝이 스쳤는데, 스쳤을 뿐인데 온몸에 소름이 돋더라.


다음날 아침 뉴스에서 버스 전복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봤어.

그런데 내가 타려던 정거장 바로 다음에 사고가 났다고 하더라. 그놈 말대로 승객 전원 사망이라고 했고.

만약 그놈 말을 무시하고 그 버스를 탔다면 나도 죽었겠지.


그 다음으로 악마를 봤던 건 내가 대학교 2학년일 때였어.

내 기숙사 방에서 수그리고 앉아 아무렇게나 뒤져서 꺼낸 내 책을 읽고 있더라고.


"왔구나." 내가 말했어.

"그래, 내가 왔다네." 그놈이 지껄이더군.


그리고는 책을 덮고 내게 또 환하게 미소를 지었어. 그놈의 거지같은 회색 뻐드렁니가 가득한 미소를.


"오늘은 선물을 가져왔다네."


또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 들었어.


"어, 그래?"

"아주 좋아할걸세." 그놈이 대꾸했어.


그러고는 재킷 속주머니로 손을 뻗더니 핑크색 스프링제본 노트를 꺼내더라. 

표지에는 가지런한 글씨로 "엘렌 하트웰"이라는 이름이 쓰여있었어.


"심리학 수업 같이 듣는 예쁘장한 갈색 머리 아가씨 거라네." 그놈이 마냥 떠들어댔어.

"자네 맨날 그 아가씨를 쳐다만 보지 않았나. 이거 두고 가지 않았냐고 하고선 저녁약속을 잡아보게."


그러고는 책상에 노트를 얌전히 올려뒀어.


"어....고마워."

"감사는 넣어두게나. 다음에 또 다시 봄세."


그리고 눈 깜박할 새에 소리 하나 안 내고 사라져버렸어. 


마지막으로 악마를 본 건 아들을 가졌던 날이야.

이런저런 일을 겪고서 엘렌은 내 부인이 됐고, 난 후딱 씻고 나가서 아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지.

빨리 닦고 나갈 마음으로 샤워부스를 나오자마자 그놈이 서있었어. 젠장,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꼴이었는데.


"잘 지냈나? 나일세." 그놈이 말문을 떼더라.

"깜짝 놀랐어." 

"아 뭐 그럴만도 하지. 그건 그렇고, 자네 잘 듣게나. 오늘 자네는 아버지가 될거야. 아들일 걸세.

아내는 본인 몸 상태를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오늘이 바로 그 날이란 말일세."


내가 아버지가 된다....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었지만 이놈 꼴을 보고 있자니 속이 불편했어.


"근데 도대체 왜 날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거야?" 내내 궁금했던 걸 물어봤어.


그놈은 그저 입이 찢어져라 웃더라.


"아, 운명이란 게 어떻게 흘러갈 지 모르는 거 아닌가. 자네 눈에는 안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손가락을 튕기더니 회청색 연기만 남기고선 사라져버렸어.

그 뒤로 다시는 그놈을 보지 못했지만 이따금 불현듯 그놈이 한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어.

하지만 그것도 몇년 지나고, 수십년 지나고 나니 점점 잊게 됐어.


경찰이 내 집 문짝을 찢어발기며 들이닥치기 전까진 말이야.

그들은 경찰견 수십마리와 온갖 굴삭장비를 대동해 들어오더니 내 집 안팎을 송두리째 들었다 놨어.

그리고 여성의 유해 37구를 발견했다며 내 하나뿐인 아들을 체포했어.


재판 내내 아들은 "악마의 사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검사 측에선 그 말을 믿어주질 않았어.

마침내 내 아들은 사형을 구형받게 됐어.


하지만 난 알아. 내 아들은 거짓말쟁이가 아니었어.

수백 수천개의 연습장 페이지에 똑같이 그려진 얼굴이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살점이라곤 없고 뼈만 앙상해서는 살이 있어야 할 곳은 죄다 푹 꺼진 와중에 정말 친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얼굴이.

  • tory_1 2018.12.18 13:26

    악마는 악마구나 ㅠㅠ

  • tory_2 2018.12.18 13:43
    악마의 사주이긴한데
    여성을 실제적으로 죽인건 아들이지.
    결국 악마보다 더 한 놈이 아들이잖아
  • tory_11 2018.12.19 03:00
    222222 악마는 미끼를 던졌을뿐
  • tory_3 2018.12.18 13:50
    리빙 포인트: 비상우산은 꼭 들고 다니자......
  • tory_4 2018.12.18 14:21
    그냥 사람의 유해도 아니고 "여성"의 유해.....
    유구하다 유구해.....
  • tory_5 2018.12.18 14:28

    2 나도 이런거 보면서무서움 바사삭..(찐토리한테 뭐라고하는거 아니여,,!)

  • tory_9 2018.12.18 20:27

    333333

  • tory_13 2018.12.19 09:44

    4444444444444

  • tory_6 2018.12.18 16:04

    와......................................
    진짜........

  • tory_7 2018.12.18 16:33

    37명이나 죽인 연쇄살인범을 악마한테 홀린 피해자 또는 도구로 표현한 것 같아서 좀 찜찜하다 아 물론 공포적인 면에서도 찜찜한 글이야 찐톨아 잘 읽었어!

  • tory_8 2018.12.18 18:41
    '22222
  • tory_10 2018.12.19 01:24
    으으 위의 톨들이 말한거랑 똑같은 문제로 찝찝해서 더 괴담같다
  • tory_12 2018.12.19 08:18
    결국 악마는 욕망을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존재에 불과하고 악마의 사주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건 인간이 잘못된 욕망을 가졌기 때문인건가
  • tory_14 2018.12.19 10:10
    악마가 또 다른 악마를 끌어냈구나
  • tory_15 2018.12.19 10:12

    어억...아들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큰그림을 그린 건가

  • tory_17 2018.12.20 15:00

    허억

  • tory_20 2019.04.15 21:18

    와...그러게  근데 뭐하러 그렇게까지 공들인걸까 ㅠㅜㅠㅜ 화자는 자기뜻대로 조정당하지 않을거같아서 그랬나..?

  • tory_16 2018.12.19 23:57
    본문도 소름이지만 댓글들의 예리한 지적에 또 생각을 달리 해보게 된다...
  • tory_18 2018.12.20 17:24

    난 저 아들이 단순히 악마에게 흘렸다기보단 악마의 자식이구나 싶었는데... 

  • tory_19 2018.12.21 16:40
    와 아들을 가지라고 세번이나 기회를 주고 알려준거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전체 【영화이벤트】 따사로운 위로, 힐링 무비! 🎬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파워 공감 시사회 6 2024.05.09 570
전체 【영화이벤트】 기막힌 코미디 🎬 <드림 시나리오> ‘폴’과 함께하는 스윗 드림 시사회 25 2024.05.07 1926
전체 【영화이벤트】 우리는 지금도 행복하다 🎬 <찬란한 내일로> 시사회 15 2024.05.03 3945
전체 【영화이벤트】 전 세계 2,50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 원작 애니메이션 🎬 <창가의 토토> 시사회 16 2024.05.02 3774
전체 디미토리 전체 이용규칙 2021.04.26 572430
공지 꿈글은 오컬트방에서 작성 가능합니다. 2021.02.25 264216
공지 공포방 공지 69 2017.12.18 279467
모든 공지 확인하기()
408 미스테리 무당들중에서도 유독 강한 무당이 있니? 29 2018.12.21 11000
407 공포자료 과거 일본에서 성행했던 식인 57 2018.12.19 34425
406 공포괴담 레딧 괴담을 보고 공포방 이용 수칙도 적어봤어 107 2018.12.19 9423
405 실제경험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 매년 한명씩 죽어 65 2018.12.19 10136
404 공포괴담 [reddit] 워싱턴 마운틴 크레스트 등산로 이용안내문 21 2018.12.18 141647
» 공포괴담 [reddit] 악마가 날 살렸는데 차라리 그때 죽었길 바라곤 해 20 2018.12.18 6552
402 공포자료 골동품점에서 구매한 방울의 비밀.jpg 36 2018.12.18 10509
401 공포괴담 [reddit] 인터넷에서 진짜 이상한 설문조사를 찾았어 23 2018.12.17 8838
400 공포괴담 다시는 룸메이트랑 같이 안 살게된 썰 43 2018.12.16 25931
399 실제경험 귀신도 꼴값떤다진짜 ㅡㅡ 130 2018.12.07 23082
398 범죄기사 [완전범죄는 없다] 깨끗한 방, 평온한 모습…얼굴만 검게 변색된 여성의 시신 31 2018.12.04 9756
397 실제경험 궁금한데 무당은 늙으면 어떻게 될까? 92 2018.12.01 13929
396 실제경험 톨들아, 어릴때 햄버거 놀이 기억하니??? 31 2018.12.01 8435
395 공포자료 바퀴벌레의 집.twit 40 2018.11.30 9008
394 공포괴담 일본의 동요 삿짱 이야기.jpg 31 2018.11.27 9605
393 실제경험 신받은지 얼마 안된 무당한테 점을 봤었어. 52 2018.11.23 16259
392 공포자료 나한테 너무 충격적이었던 공포만화... 50 2018.11.22 18726
391 공포자료 사용할 수 없는 라이터(귀신x 놀람x ) 25 2018.11.21 6137
390 공포자료 귀신헬리콥터 알지? 33 2018.11.15 10683
389 실제경험 아가들이 가끔 무서울 때가 있어 40 2018.11.09 12433
목록  BEST 인기글
Board Pagination 1 ...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 86
/ 86

Copyright ⓒ 2017 - dmi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