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업 특성 상 시외 버스를 자주 타는 편이라서, 터미널에 자주 가.
그 날도 날이 어스름해질 무렵,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갔어.
버스 시간이 되려면 15분 정도가 남아서 게이트 앞으로 가서 기다리려고 했다.
근데 그 게이트 앞에 다크나이트 조커 같이 화장을 한 여자가 앉아있더라고.
얼굴은 피부색과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파운데이션을 해서 군데군데 얼룩덜룩하고,
아이라인은 사인펜으로 그린듯 삐뚤빼뚤 1센티 정도 두께에,
초록색 아이섀도를 덕지덕지 바르고, 눈썹은 무서울만큼 얇은 아치형에,
입술은 새빨간 립스틱을 지저분하게 발랐더라고.
긴 머리는 빗은 지 한달은 돼 보였고,
검은 색 옷은 엄청나게 여러겹을 껴입어서,
한 눈에 봐도 어딘가 이상한 사람 같아 보였어.
나는 그 여자를 보고 흠칫 놀라서 걸음을 멈췄는데,
그 여자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마자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찢어질듯한 목소리로
"갸갸갸갸갹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갹!!!!!!!!!!!!!!!!!!!!!!!!!!!!!!!!!!!!!!!!!!!!!!!!!!!!!!!!!"
이러는 거야. 진짜 짐승의 우는 소리도 이것보다는 안 무서울거야.
나는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그대로 도망쳤어.
그래도 버스는 타야해서 한 10분쯤 지나 살금살금 게이트 쪽으로 가보니,
그 여자가 어느새 사라지고 없더라고.
그래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게이트 바깥으로 나가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뭔가 뒤쪽에서 묘하게 쎄한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그 여자가 내 바로 뒤쪽 사각지대에 숨어있다가
내 얼굴 바로 앞으로 다가오면서 아까처럼
"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ㅑ갸갸갸갸갸갹!!!!!!!!!!!!!!!!!!!!!!!!!!!!!!!!!!!!!!!!!!!!!!"
이렇게 소리를 질렀어.
진짜 너무 놀라서 울 것 같았는데 마침 버스가 들어와서 기사님 바로 뒤쪽에 탔어.
그 여자가 내 옆에 앉으면 어쩌나, 해코지를 하면 어쩌나 엄청 걱정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기사님께, "안녕하세요~ ㅇㅇ터미널이요." 이러는거야.
목소리 톤도 아주 평범한 30대 여성같은 목소리라고 해야하나.
내가 너무 놀라서 멍하니 있다가 여자가 버스 뒤쪽으로 가고 나서 기사님께
"저 여자 분, 아까 짐승같은 소리로 저한테 두번이나 소리를 질렀어요.
고속도로에서 난동을 부릴지도 몰라요ㅠㅠㅠ" 이렇게 얘기를 했어.
기사님도 뭔가 좀 꺼림칙하셨나봐.
그래서 잠깐 뭔가 고민을 하시더니 그 여자한테 다가가서
"저기.. 손님. 목적지가 어디세요?" 이렇게 다시 물어봤어.
그러니까 그 여자가 "아, 저 ㅁㅁ터미널까지 가요." 이러더라고.
그래서 기사님이 "ㅁㅁ터미널로 가시려면 여기 말고 옆 게이트에서 버스 타시면 돼요." 하시니까
그 여자가 "ㅎㅎ 알아요. 저 그냥 이거 타고 ㅇㅇ터미널 가서 갈아탈거예요." 이렇게 멀쩡하게 얘기하는거야.
나는 너무 너무 무서웠지만 그 뒤로 몇몇 사람이 더 타서 내 뒤에 사람들이 여럿 앉으니까 좀 안정이 되더라구.
다행히 그 여자는 고속도로에서 난동을 부리지 않았고, 나는 ㅇㅇ터미널 전 정류장에서 내리게 됐어.
나는 버스에서 내려서 무섭지만 궁금한거야. 그래서 살짝 버스쪽으로 눈만 살짝 돌려서 봤는데
그 여자가 나 있는 쪽 창문에 얼굴을 딱 붙이고 입만 찢어져라 웃으면서 나를 보고있었어.
<후기 1>
나는 이 버스를 자주 타서 이 여자를 두 번 정도 더 봤는데,
두 번째로 봤을 때는 그 여자가 먼저 타고 있었고, 다른 기사님이 운전을 하셨어.
근데 그 여자가 버스가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마자
"씨이이이이이이이X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알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
이걸 계속 하는 거야. 쉬지 않고 계속.
그 버스 안에 건장한 남자들도 여럿 타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 여자를 쳐다보지도 않더라고.
그 여자의 기에 눌린다고 해야하나. 괜히 한소리 했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왜 사람들이 요즘에는 다들 예민해서 누가 버스 안에서 통화만 조금 큰소리로 해도
눈치 주고 그러잖아. 근데 아무도 그 여자가 계속 욕을 방언처럼 쏟아내는데도 못들은 척하더라고.
<후기 2>
그 여자를 세 번째 봤을 때는, 처음 그 기사님이었어.
그런데 그 여자가 그 기사님이 운전하는 차를 탔을 때는 진짜 또 멀쩡한거야.
행선지도 똑바로 얘기하고, 차 안에서 일절 난동도 안 부리고.
근데 그 기사님이 운전하시는 버스를 여러 번 탔는데, 이 분이 되게 좋으신 분이고,
진짜 친절하시고, 좀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라고 해야하나.
그래서 나도 탈 때마다 스몰 토크를 자주 나누던 분이야.
그래서 내가 다음에 탈 때, 그 기사님께 그 여자분 기억하시냐고,
기사님 버스 탈 때만 멀쩡하다고 그랬더니, 그 기사님이 그러시더라고.
"요즘 시대가 다들 너무 살기 힘들고 어렵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마음이 아픈 분들이 많아요.
근데 그런 분들도 다 알아요. 누가 자기를 존중해주는지.
우리가 어려운 시기를 함께 사는 사람들이니까, 서로를 좀 더 이해해주고,
아픈 분들은 좀 더 배려해주고 그래야해요." 이러시더라고.
그래서 그 여자를 아픈 사람으로 안 보고, 무섭고 피할 존재로만 생각했던 게 부끄러워지더라.
그래도 나는 일단 내 자신을 지켜야 하니까 조심하면서도 그 사람을 달리 생각해봐야겠다 했는데
그 뒤로는 한번도 보지 못했어.
근데 나도 그런 사람만나면 넘 무서울듯 ㅜㅜ
토리 시외버스 자주 타는데 그 여자랑 같은 버스 탈때마다 긴장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