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삼배 옷을 입은 어머니는 어느 때보다 고왔다.
눈을 붉게 충혈되었고 몸을 가누지 못해 아버지에게 기대어 가쁜 숨을 쉬고 있었지만 가냘픈 아름다움 같은 게 있어 자꾸 눈이 갔다.
아버지의 거친 손이 내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시선은 나에게 없다. 높은 탁자 위에 놓인 언니의 사진을 보고 있다.
아버지가 우시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지금 아버지의 눈가엔 아까 닦아낸 짠 눈물이 맺혀있었다.
오늘은 언니의 장례식이다. 언니는 이유 모를 병으로 언제나 방에 누워만 있었다.
아니, 이유를 모를 병은 아니다. 내가 모르는 것 뿐.
어린 나에게 어른들은 넌 몰라도 돼…. 라며 병명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니 적어도…. 나에겐 이유를 모를 병이다.
방에 누운 언니는 언제나 방 가사리에 붙은 작은 창으로 하늘만 올려다봤다.
가끔 구름이 모양을 바꾸는 것 외에 큰 변화 없는 하늘을 언니는 항상 보고 있었다. 재미있는 영화라도 보는 양 가끔 구름의 모양에 웃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언니는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차가운 물이 들이칠까 창을 닫아버리는 날엔 굉장히 우울해 했다.
언니가 보는 건 구름이 아닌, 구름을 닮고 싶은 자신의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끔 아버지가 심심할까 봐 TV를 가져다 놓아도 리모컨이 손에 닿지 않은 곳에 있으면 채널 하나 마음대로 돌리지 못했다.
그럴 땐 내가 리모컨을 언니 손에 놓아주는데, 그것도 한두 번. 언니는 TV에는 도통 관심을 붙이지 못했다.
작은 방. 작은 창. 언니의 모든 세상이었다.
그 작은 세상에서 언니는 그렇게 어린 날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런 언니가 이틀 전 죽었다.
언니의 죽음은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늘 누워만 있던 사람이 무슨 힘으로 부엌까지 기어가 쥐약을 삼켰을까.
어머니가 싱크대 아래 선반에 놓아둔 그 독한 약을 언니는 물도 없이 삼켰다.
내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언니는 입에 거품을 물고 얼마 전에 내다 버린 죽은 쥐처럼 죽어있었다.
급하게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 건, 그 죽음에 놀라거나 언니가 안타까워서라기보단 약간은 의무감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언니에게 무슨 변고가 생기면 이리 해야 한다.' 라고 거듭거듭 주지시켰었다.
그 학습에 의한 효과였다.
일하다 버선발로 달려온 어머니는 이미 숨이 끊어진 언니를 붙잡고 울었다.
쥐약을 그곳에 둔 자신의 모자람을 탓했다. 구급대원이 오고 아버지가 병원으로 달려올 때까지 어머니는 언니를 붙잡고 여간해선 듣기 어려운 언니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아버지가 드디어 참았던 울음을 다시 토해낸다.
아버지에게 언니는 어떤 딸이었을까.
방에 가만히 누워 있겠다고, 하늘을 보고 슬피 웃는다고 언니가 유한 성격이었던 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니가 던진 리모컨을 한두 번은 맞은 경험이 있다.
나도 언니와 나이 차 많이 나는 동생이란 위치에 언니에게 반항 한번 못하고 모진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처음엔 그런 소리에 언니가 밉기도 했지만…. 곧 이해했다. 학교를 갔다 오고 친구들과 놀고 수학여행을 가는 나의 모습을 언니가 얼마나 부럽게 보는지.
나에게 "쓸모없는 년"이라거나 "빌어먹을 년"이라는 소릴 해도 어느 순간부터 언니를 약간은 측은하게도 여겼던 거 같다.
아버지에게 언니는 언제나 아픈 손가락이었을 것이다.
첫 딸이었고 아버지를 아주 많이 닮았던 언니는 아버지와 가끔 방에서 두런두런 이야길 하기도 했다.
언니의 원망 고함 그런 걸 아버지는 언제나 묵묵히 받아내었다.
그리고 방에서 나오면 마당 한쪽에서 담배를 길게 빨아 피웠었다.
아버지에게 언니는 아마 그런 딸이었을 것이다.
담배 한 개비 같은 딸.
결국, 쓰러진 어머니를 아버지는 이끌고 나갔다.
장례식장이 잠시 정적에 싸인다.
나는 언니의 사진에 다가갔다.
마지막 인사. 그것을 해야 할 시간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언니는 무슨 생각으로 쥐약을 먹었을까.
나는 사진을 보며 나직이 언니를 불렀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날. 언니가 죽은 날 나는 생각보다 일찍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정류장에 오자마자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는 평소보다 빠르게 집에 와주었다.
집에 오니 원래 도착하는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해 있었다.
그날은 기분이 꽤 좋았다. 얼마 전 본 시험에서 점수도 괜찮게 나왔고, 친구와 약속을 잡아 잠시 뒤면 시내를 활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다음날이 토요일이었다.
친구를 집에 불렀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언니와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정확히는 언니 방 한구석에 기생하는 꼬락서니였다.
이런 모습을 친구에게 보일 순 없었다. 친구를 언니에게 보여 언니가 할 폭언을 듣는 것도 나름 고역이었다.
집에 왔을 때 언니는 역시 하늘을 보고 있었다.
내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자 내 들뜬 모양새를 보고 오늘 약속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다.
하늘을 보며 가늘게 떴던 언니의 눈꼬리가 높게 치켜 올라갔다.
언니의 폭언이 시작됐다.
항상 하는 레퍼토리. 언니는 나에게 쓸모없는 것. 발랑 까진 년. 혹은 내 스페어. 넌 내 시중을 들기 위해 태어난 거야 같은 항상 하는 말을 반복적으로 내뱉었다. 소리 질렀다.
그리고 평소엔 전혀 하지 않던 말을 했다.
"친구를 집에 데려와! 왜? 내가 창피하지? 그래서 안 데려오는 거지?!!"
........언니의 몸을 밀어 싱크대 앞까지 끌고 간 건 나도 모르게 한 일이었다.
반항하는 언니의 입을 벌리고 쥐약을 밀어 넣은 것은…. 조금은 의식적으로 한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약을 입에 밀어 넣었을 때, 그것을 그냥 삼킨 건 내가 한 일이 아니다. 언니가 한 일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내가 입에 밀어 넣은 약을 언니는 물도 없이 삼켰다. 왜? 뱉어냈으면 내가 다시 밀어 넣을까 봐?
언니가 거품을 물고 몸부림칠 때, 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부모님이 사놓고 한 번도 쓰지 못한 언니의 책상에 앉았다.
까만 나무 책상은 내가 꽤 탐내 하던 물건이다. 난 방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나에게 이런 물건을 사준 적이 없다.
언니는 자기 물건에 내가 손대는 걸 질색했다.
하지만 뭐, 지금 언니는 저 부엌에서 몸부림치고 있지 않은가.
잠시 뒤, 집 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오셨다.
왜 어머니가 그 시간에 일도 멈추고 온 건진 알 수 없다. 지금도 난 모르겠다.
방에 앉아있는 나. 정확히는 언니의 책상에 앉아있는 나.
그리고 몸부림치는 언니를 보고 어머니는 상황을 파악한 것 같았다.
어머니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나와 언니를 번갈아봤다.
그리고 어머니의 눈동자가 언니를 외면했다.
어머니는 수건을 물에 담가 적신 후 내 손길이 닿았을 쥐약 통이며 언니의 얼굴을 닦아냈다.
언니의 눈동자에 경악이 서린다.
난 그걸 보고 웃었던가? 울었던가?
언니가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언니가 이상이 있을 때 해야 할 행동을 주지시켰던 것처럼 몇 가지 말을 반복해서 했다.
네가 왔더니 언니가 저리 돼 있었다.
어머니는 네 연락을 받고 달려온 거다.
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당연히 어머니도 모른다.
그리고 난 항상 그랬듯이 그 사실을 학습했다.
난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그때 언니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왜 평소에 하지도 않던 친구를 데려오라는 말을 한 것인지, 입에 밀어 넣은 약을 삼킨 것인지.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제 언니의 방은 내 방이 되었다.
친구를 데려오라고?
그래 데려와 줄게 언니가 없는 그 작은 세상에.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02407
지인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어떤 부잣집 아들이 글 속 언니처럼 아팠대. 그래서 방 하나에 애를 방치하다시피 하고 애가 열일곱의 나이에 죽었을 때 가족들이 슬퍼하기 보다는 홀가분해 보였다고 하더라.
뭐랄까, 긴 병에 장사 없다? 효자 없다? 뭐 그런 것 같아. 다들 지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