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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namu.wiki/w/%EC%98%A4%EB%8C%80%EC%96%91%20%EC%A7%91%EB%8B%A8%20%EC%9E%90%EC%82%B4%EC%82%AC%EA%B1%B4#s-1)


1. 개요


1987년에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북리 산 210에 위치한 (주)오대양 공장에서 일어난 집단 자살 사건. 

일각에서는 자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집단 변사 사건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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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자)


2. 박순자와 오대양의 창건


사건의 발단은 박순자가 오대양이라는 종교단체와 기업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박순자는 1974년 횡격막에 병이 생겨 고통받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병이 회복되는 일을 겪었다고 주장한다

(사이비 종교의 특성상 거짓말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박순자는 자신의 병을 고친 게 신이라고 믿어서였는지 신학교를 다니다가 여호와의 증인에 입문했고, 

다시 기독교복음침례회 소위 구원파[2] 신도가 되었다. 

이후 박순자는 구원파를 이탈 구원파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떨어져 나와서 

시한부 종말론을 숭상하는 사이비 종교를 직접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대양이었다. 

오대양이라는 명칭은 박순자가 "나는 오대양을 지배할 사람으로 앞으로 전 세계를 주관하게 될 것이다"라고 공언한데서 나왔다고 한다.


한편, 오대양이 구원파에서 이탈한 것을 두고 이것이 위장 이탈이란 주장이 강하게 제기된다. 

박순자는 구원파의 대전 지역 자금 조달 책임자였고 오대양은 외부의 돈을 끌어모으려는 구원파의 위장 계열사였다는 주장이다. 

과거 구원파와 오대양에서 일했던 관계자 일부가 언론에 제기한 내용이고 

실제로 오대양과 구원파 계열 사업체 간에 자금 거래 내역도 일부 확인되나 

집단 자살 사건 이후 검찰 당국은 수사를 이용해 오대양과 구원파 간의 명확한 관계를 확인하지 못했다.



오대양 교단은 유치원과 양로원과 고아원 건물을 사들이거나 임대해 사회사업을 하는 것처럼 꾸미기도 했고, 

겉으로는 시설을 당시로선 최신식으로 꾸며 고아들을 잘 키우는 것처럼 위장했지만, 

실제 속내는 신도들의 자녀를 세뇌하게 해 아이들에게 부모는 없고 너희는 고아이며 박순자만이 진짜 어머니라고 유도했다. 

심지어 아이들에게 부모를 찾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소리도 공공연히 했단다.


더불어 신도들과 신도들의 자녀들을 모아 집단으로 생활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신도들을 사람답지 않게 통제했다. 

부부들에게는 각방을 쓰고 금욕생활을 강요했고 외출도 금지했다. 

2주에 한 번씩 그것도 많은 사람들끼리 단체로 외출하는 것만 허용했고 

외출 후에는 반드시 외출 시에 같이 나간 상대방이 밖에서 했던 모든 행적을 일일히 보고하도록 했한다. 

그리고 매월 한 번씩 반성의 시간이란 것을 가졌는데 이때 신도들은 한 달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실토해야 했고 규율을 어긴 것이 드러나면, 

벌받는다는 명목으로 가차 없이 집단 구타당했다. 

딸이 어머니가 잘못한 것을 처벌한다면서 어머니를 두들겨 패고 어머니는 이것을 감사해 하는 황당한 일까지 있었단다. 


3. 박순자의 사업실패와 사채


교주 박순자는 갑자기 오대양을 기업으로 운영하기 시작 1984년 공예품 제조회사를 만들면서 회사명도 오대양으로 짓는다. 

처음 오대양은 대전에 수입품 판매장을 만들면서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대전과 용인 등의 공장을 사들이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1986년 4월, 일본의 전자 부품 생산업체와 합작해 당시로선 거액이라고 할 7억원을 투자해 전자 제품을 만들려고 했으나 

사기당한 것으로 드러나 사업은 실패했다.


이 손실을 매꾸기 위해 박순자는 신도들에게 사채를 많이 끌어오라라고 명하고, 

신도들은 자신의 일가친척들에게도 돈을 빌려서 박순자에게 갖다 바친 결과, 

박순자가 신도들을 굴려서 끌어모은 사채는 무려 170억 원에 달했다. 

당연히 채무자들에게 독촉과 사채이자가 쌓여 갔고 가운데 박순자에게 7억원을 빌려 준 이상배라는 사람이

자신의 부인과 함께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려고 오대양 공장을 찾았다가 신도들에게 집단 구타당하자 

이상배는 경찰에 오대양을 고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다른 채권자들도 박순자와 오대양을 고소하면서 경찰은 사기혐의로 박순자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사회에서 주목받게 됐다.


엄청난 사채 이자를 더는 감당 못할 지경에 이르고 경찰과 언론의 압박까지 계속되자 

박순자는 특별히 사채를 가장 많이 끌어모은 열성 신도와 자신의 가족 31명과 함께 오대양 용인 공장의 식당 천장에 4일간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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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집단 자살


1987년 8월 29일, 오대양 직원 김 모 씨는 경기도 용인의 공장에 왔다가 내려앉은, 

숙소의 천장을 보고 이상히 여겨 식당 쪽으로 갔는데 식당 천장에서 죽어 있는 박순자를 포함한 32명을 발견하고 

마침 가족을 찾으러 공장에 온 박순자의 남편에게 알렸다. 박순자의 남편이 경찰에 오후 4시경 신고해 집단 변사가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 현장에서는 사망한 사람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메모들이 발견되었는데 

"사장이 독약과 물을 가지러 갔다"라거나 "xx도 지금 매우 고통을 받고 있다",

"xx가 꿈을 꿨는데 그곳이 지옥이라고 하더라", "남자는 다 잡혀가고 여자들은 다 헤어지고..." 등등의 내용이었단다. 


메모 내용 때문에 처음에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음독하고 죽은게 아닌가 했지만, 

경찰의 부검 결과 독극물은 나오지 않은 대신 하이드라민이라는 신경안정제 성분이 발견되었다. 

직접 사인은 목졸려 죽은 것으로 나왔기에 경찰은 멀미약과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목이 졸려 죽은 것으로 보았다.


경찰 당국은, 가장 먼저 박순자가 공장장인 이경수에게 자신을 목졸라 죽이게 한 뒤 

이어 이경수를 비롯한 남자들이 여자들을 목졸라 죽이고서 여자들이 모두 죽은 것이 확인되자 

박순자의 두 아들들이 철골 서까래에 줄을 매고 자살한 뒤 마지막으로 이경수가 목을 메고 자살한 것으로 결론했다.


이경수의 시신이 무릎을 구부린 채 매달려 있던 탓에 이것을 타살의 증거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발받침이 없거나 목을 매단 곳이 낮을 때 무릎을 꿇는 등으로 자살하는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믿기지는 않겠지만) 

엎드린 자세로 목매달아 죽는 때도 있다.[3]


사망자들의 사망 정황은 드러났다지만, 이 사람들이 집단으로 왜 자살했는지는 명확히 드러난 바가 없이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경찰 당국은 사건의 열쇠를 쥔 것으로 보이는 오대양 직원 11명을 공개 수배했지만, 이 사람들은 그때는 잡히지 않았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건 1991년 7월, 사건 당시 수배되었던 오대양 직원들 중 6명이 자수하면서 의문점들이 일부 밝혀졌다. 

자수한 사람들의 진술로 사건의 열쇠를 쥔 것으로 주목받았던 오대양 총무 노순호, 기숙사 가정부 황숙자, 육아원 보모 조재선 등이 

이미 사건 발생 전에 반성의 시간에서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오대양 직원들에게 살해된 뒤 암매장당한 것이 밝혀졌다.


이 사람들의 자수로 사건이 대전지방검찰청에서 재조사되었지만, 

검찰 당국도 1987년 경찰의 수사처럼 32명은 집단 자살로 결론하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5. 의문점 : 오대양 사건은 집단 타살이다?


하지만 당시 세간에는 죽은 사람들이 자신의 뜻으로 죽은 게 아니라 강제로 죽었거나 심지어 살해당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국회의원 박찬종이 1991년 7월 19일 기자회견을 이용해 박순자가 한때 몸담았던 구원파와 구원파 신도가 경영하던 모 회사가 

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일파만파 번졌다.


구원파가 사건에 개입됐으리라고 의심한 사람들은 박순자는 알고 보면 구원파를 완전히 이탈한 것이 아니고 

모종의 이유 때문에 구원파를 이탈한 척하면서 오대양을 차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원파 신도가 경영하던 모 회사의 자금을 마련하려고 오대양을 차린 박순자는 이 회사의 자금을 조절하고자 

신도들에게 거액의 사채를 끌어오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오대양이 세간에서 주목받고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구원파나 모 회사가 박순자와 31명을 살해했다는 것이 

당시 세간에 떠돌던 타살 의혹의 골자였다.


이에 구원파와 모 회사는 자신들은 박순자와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박순자는 이미 구원파를 떠났고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그 사람들은 주장했다. 

검찰도 이 의혹을 수사했으나 무관하다면서 무혐의로 처분했으나 

대법원 당국은 관련 재판에서 구원파 신자였던 김 모 씨가 

“구원파의 실제 대표는 전 회장 유병언이고 헌금을 자신의 회사 운영 자금에 충당했다.”라고 진술한 점, 

오대양이 끌어 모은 사채 중 일부를 세모그룹 관계자들이 사용한 점을 근거로 관련성을 인정 했다.

[4][5] 또한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오대양교라는 것은 없고 박순자 씨는 구원파의 대구지부 총책으로 헌금 등을 세모 측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6]라고 말했다. 

종합하면, 대법원에 의해 오대양과 구원파의 관련성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다만 당시 수사팀의 오대양이 구원파의 하부 조직인지에 대해 다투어 볼 여지가 있다.


일부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모처에서 살해당하고서 공장 식당의 천장으로 옮겨졌다고 주장했지만,[7] 

사건 현장을 감식했던 경관은 현장의 상황상 다른 곳에서 살해되었다는것은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8] 

또한 사망자들 중 여자들을 부검하니 정액 양성 반응이 나왔기에 죽기 전에 강간당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당시 부검의는 국과수의 정액 양성 반응은 오류라고 반박했다.


1987년 경찰이 결론한 대로 32명 중 박순자를 포함한 29명은 목이 졸려 살해당했고 

박순자의 두 아들과 공장장 이경수는 목을 매 죽은 것으로 검찰도 결론했다. 

그러나 과연 이 사람들이 자의에 의해서 죽었는지면 타의에 의해 죽음을 강요받았는지는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채 미스테리로 남았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으로 재조명받던 중, 과거 8년간 유병언의 측근이었다가 결별하고 

현재 구원파 문제 연구에 전념 중인 침신대 전 교수 정동섭이 

4월 23일 출연한 JTBC뉴스 앵커 손석희와의 인터뷰 중

' 언젠가는 좀 실상이 밝혀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면서 사망 원인에의 미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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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파가 일부 강경세력을 중심으로 결집해 수사를 방해하고 유병언씨를 빼돌리는 일련의 상황은 지난 1991년 '오대양 사건' 수사 당시와 비슷하다. 사진은 1991년 오대양사건으로 구속된 유병언씨가 2차공판을 받기 위해 입정하고 있는 모습.)


6. 기타


당시 사건은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운동이 진행되던 와중에 터져나와서 사회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박순자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무려 270여 명에 달했고 이 사람들은 이후 5공 특위에 오대양 사건도 조사해 달라고 

요구해 국회에서 청문회까지 열렸지만, 딱히 새로운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가이아나에서 벌어진 인민사원 집단자살사건과 두루 유사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당시 언론에선 사이비 종교에의 관심을 환기하게 하기도 했다.


1998년에 개봉된 퇴마록 영화판의 초반에서 오대양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경찰 특공대가 사교 집단의 아지트에 출동했는데 건물에서 아무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경찰 특공대원의 보안경 위로 핏방울이 하나 떨어지고 천장을 수색하니 

집단 자살한 사교 신도들의 시체들이 발견되는 대목이 그것인데 천장 위에서 시체들이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오대양 사건에서 모티브를 삼은 듯하다.


2010년 하성란이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A'라는 소설을 냈다.[9] 


월간조선, SBS 그것이 알고싶다, 시사정경 등 일부 언론에서는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은 언론의 지나친 보도 경쟁과 이권에 관련된 

제보자들의 편파스러운 제보, 일부 정치인의 정치상 이용 등이 어우러져 근거 없는 추측과 오보의 대표 사례라는 주장도 있다. 


오대양 사건을 상대로 삼아 '구원파 배후설', '구원파 소행'을 강하게 주장했던 탁명환, 정동섭은 

당시 구원파에 명예훼손으로 피소되어 재판 중이었다. 

참고로 탁명환은 국내를 대표하는, 사이비 종교 전문가로서 잡지 《현대종교》를 발행했고 

결국 이단 시비가 붙었던 대성교회(現 평강제일교회) 신자에게 살해당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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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탁명환  

활동·업적

기독교계 신문사 기자로 일하다 신흥종교와 이단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연구소(현 현대종교)를 세우고 신흥종교와 이단문제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단․사이비 종교에 대한 고발과 폭로로 테러와 암살위협, 협박이 끊이지 않았다. 1985년에는 차량 폭탄 테러를 당했으며 1994년에 대성교회(현 평강제일교회) 광신도의 테러로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장남 탁지일(부산장신대교수), 차남 탁지원(현대종교 소장), 3남 탁지웅(성공회 신부)가 현대종교를 맡고 있다.


테러와 사망

차량 폭탄 테러(1985년) 등의 신변의 위험을 겪었으며, 1994년 대성교회(現 평강제일교회/구로 오류동 위치)[6]의 신도의 테러로 노상에서 살해당했다.


2월 18일 사이비종교인 영생교에 대한 문제로 출장을 다녀오던 탁명환은 대성교회의 광신도 임홍천이 탁명환의 아파트 근처에 숨어있다가 칼로 탁명환을 찔렀다. 탁명환은 병원에 옮겨졌으나 곧 사망했다. 검찰에서 밝힌 대성교회 광신도 임홍천의 살해 동기는 탁명환이 1994년 1월에 쓴 목사 박윤식을 비판하는 글을 보고 증오감이 깊어져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밝혔다.


사후

사후 시신은 "의학대학에 실습용으로 써달라"는 유언에 따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해부용으로 기증되었고 각막 두 개는 당시 27세와 37세인 여성에게 각각 기증되었다. 그 뒤 2002년 9월 20일 사망한 탁명환의 아버지 탁두섭도 시신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기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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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모 회사의 후신인 세모그룹이 소유한 선사 청해진해운이 세월호 사고를 일으키면서 

이 사건이 재조명됐고 현재 금수원에서 농성 중인 구원파 집단은 세월호 사건과 오대양 사건을 비교하면서 오대양 사건처럼 

자신들의 지도자를 내놓지 않겠다는 정신 나간 내용을 발표했다.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 장기 미제 전담반에서 미제 사건을 선택하면서 김계철이 오대양 사건을 계속 언급한다.


구글에서 '오대양 사건'으로 검색하면, 당시 뉴스 보도 사진들이 검색되오는데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은 시신 사진이 

여과 없이 그대로 보이므로 검색 시 주의.


OCN드라마 구해 줘 에서는 신도를 구타하고 암매장하는 등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거나 패러디를 한 듯한 장면이 많이 보인다.



*****80년대인만큼 오대양 사건이라고 구글에 치면 모자이크 없는 시신 사진들이 진짜 적나라하게 있는데 주의해!!*****

  • tory_1 2018.07.09 17:32

    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tory_2 2018.07.09 23:38

    작은신의 아이들 드라마 사건이랑도 비슷하네 이래저래 암울하네

  • tory_3 2018.07.13 17:08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0/11/20 23:02:45)
  • tory_4 2018.07.13 19:22
    2222 그 일가들 저돈으로 떵떵거리며 잘살잖아 모유명인은 아예 저 유씨일가 사위가 되서 디스패치에 성경공부하고있는거 기사도 나고 ㅋㅋ 누가 지옥불에 더 가까운지 객관적으로 보이지도않나봐
  • tory_5 2018.07.13 23:32
    이런거넘 미스터리하고 무서워 ㅠㅠㅠ
  • tory_6 2020.02.22 20:01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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