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낀 부분만 발췌해 봤어..
어릴 때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음. 나에게는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 거 같아..
── 인간의 무의식을 다루는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저 깊은 무의식에는 죽을 만큼 힘들고 괴로우면 '나'라는 존재를 최소한 유지하기 위하여 나를 낳아 준 부모라도 죽이고 싶을 강도의 아주 감당하기 어려운 분노와 적개심과 절망감이 생긴다고 합니다. 무의식적인 정신분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굉장히 처절한 고통이에요. 그 마음 자체는 죄가 아니에요.
자아 기능 중 현실 검증력이라는 것이 있어요. 아주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나의 모습을 현실에 맞게 검증해서 인간답게 행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평생 동안 갖추려고 노력해야 하는 중요한 기능이지요. 인간은 어떤 계기로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에요. 마음은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가졌지만 행하지 않았다면 괜찮습니다. 잘 살고 있는 거예요. '나'의 정신은 건강한 겁니다.
──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사사건건 지나치게 간섭하는 부모 때문에 괴롭습니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고, 번듯한 직장까지 다니고 있지만, 부모는 언제나 당신 말만 맞다고 하고 당신 말만 따르라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싫은 내색을 보이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야" 하며 서운해합니다. 이렇게 침습적인 부모가 있어요. 습자지에 물이 스미듯이, 자녀의 인생에 침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자식이 스스로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요구하는 삶을 살도록 강요해요. 이것은 자식을 미치도록 힘들게 합니다. 이러면 자식은 내 부모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결혼도 하기 싫고, 아이를 낳기도 싫어질 수 있어요.
아무리 자식이라도 부모가 싫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너무너무 밉기도 합니다. 분노도 느낄 수 있어요. 많은 사람이 그 감정을 두려워합니다. 버리지도 못하고 미워하지도 못하는 부모에게 갖는 그 당연한 감정에 오히려 자신이 더 불안해하고 괴로워합니다. 사실 그런 부모 밑에서 미움이나 분노보다 두려움을 더 크게 갖는다는 것은, 이미 '나'는 그 부모보다 성숙한 사람이라는 증거예요. 스스로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 많은 순간 자신을 채찍질해 왔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런 불안과 두려움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 꼭 내 발목을 잡게 되어 있어요. 내가 원하지 않은 다른 길을 선택하게도 합니다. 참으로 가엽고 안쓰러운 일이지요.
부모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가장 먼저 '부모가 밉다', '부모가 싫다'라는 내 감정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로 인해 생겨난 상처로 많이 고통스럽다면, 부모에게 화가 나고 분노가 느껴지겠지요. 당연히 느껴지는 그 감정을 인정한다고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내가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해결하려면, 우선 나의 마음부터 인식해야 합니다. 나의 마음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의 마음을 알아차린 다음에 내 스스로 그 마음을 소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내가 갖는 감정부터 인정하세요. 미우면 미워하는 감정을 가져도 괜찮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분노의 마음으로부터 도망가지 마세요. 그런 감정을 갖는 것에 지나치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습니다.
── 강박적 순환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어릴 때 받은 상처나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채우려고 같은 패턴의 실수를 반복한다는 겁니다. 특히 대인관계에서 주로 그렇습니다.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해 놓고 정작 아버지를 닮은 사람과 사귀거나 결혼하는 경우가 그래요. 내 안의 핵심의 갈등을 파악하고 이로 인해서 발생되는 중요한 오류를 이해하지 못하면 인간은 그 오류를 반복하고 삽니다.
강박적 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까요? 인생에서 가장 복잡한 관계로 얽힌 사람들에 대한 감정을 분명히 정리해야 합니다. 부모에게 가졌던 분노, 원망, 미안함, 슬픔, 연민 중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뭐였는지, 무엇에 상처받았는지,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타인을 만날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어요.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한 채로 다른 사람에게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 그 기대는 좌절될 수밖에 없어요. 어떤 사람이 조금만 잘해 주어도 그 사람에게 판타지를 갖고는,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또다시 절망하는 일이 반복될 겁니다.
── 인생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되, 문제가 생기면 극복해 나가면 됩니다. 극복한다는 것은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피하지 않고 끝까지 겪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겪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장담할 수 없는 너무 먼 미래는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오늘을 살면 됩니다. 예상할 수 있는 오늘을 살고, 또 오늘을 살고, 또 오늘을 살면 그게 인생을 잘 겪어 내고 있는 거예요.
── 저는 아이들에게 '잘'이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아요. "잘해"라고 하지 않고 "그냥 해"라고 합니다.
꼭 '잘' 해야만 할까요? 꼭 그래야만 한다면 어디 부담스러워서 세상으로 나올 수나 있을까요? 결혼도 부담스럽고, 부모가 되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해도 괜찮고, '좀' 해도 괜찮아요. 결국 '하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속 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 어떤 것을 해낸다는 것은, 꼭 결과를 완벽하게 잘 해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능력이 있어도 결과가 나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결과 보다 '내가 했다'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를 인정해주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내가 했다'는 것은 능력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위기를 참아 내고 필요한 구성을 잊지 않고 챙기는 등의 많은 과정의 단계 단계를 잘 겪어 냈다는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인정받을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