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사람들은 동물보다 훨씬 성장이 느리다. 따라서 사람의 여자들은 성장이 빠른 동물들의 암컷에 비해 육아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이것이 여자와 미숙한 자손 양자에게 위험한 투자임은 자명하다.

혼인 제도는 수컷에게 이 위험을 분담하게 하는 제도다. 즉 먹이를 구해 오고 적대적 환경에 맞서 투쟁하는 등의 역할을 남자가 담당함으로써 보다 안전한 재생산을 꾀하려는 제도가 우리의 혼인 제도다. 이것은 이를 테면 어미와 새끼라는 기본적인 가족 구조에 수컷이 편입된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가들의 경우는 수컷이 담당할 역할을 사회적 체계가 대신하고 있다. 심장 적출법에 의해 나가 여자들은 자손을 충분히 보호할 만큼 강력해졌으며 그들의 땅 한계선 이남에서 나가에게 불리한 거의 모든 요소를 일소했다.

그 시점에서 나가 남자들은 자신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 이상 가족의 기본 구조인 암컷 어미와 새끼의 관계에 수컷이 끼어들 자리가 남지 않게 된 것이다. 역할이 감소되면 권력도 감소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나가의 사회는 여성이 지배한다.

나는 ‘여신의 신랑’이라는 호칭에는 암컷 어미와 새끼의 관계에서 추방되자 더 크고 더 위대한 것에 편입되고자 몸부림치는 나가 남자들의 슬픈 소속 욕구가 반영되어 있지 않나 추측한다.

그러니 이 때려죽이고 싶도록 사랑스러운 손자 녀석아. 네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그 ‘남성미’를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면, 우리 사회가 아직 남자들에게 ‘남성미에 대한 찬사와 존경’이라는 웃기는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남자들에게 수컷 역할을 맡겨야 할 만큼 원시적이라는 사실에 고마워하도록 해라!

— 독설가로 유명했던 우슬라 사르마크 부인이 혈기방장한 손자에게 들려준 애정 어린 충고 中.

눈물을 마시는 새 2권 | 이영도


==========


비혼 여성, 비혼모에게 광광대는 한국남자(줄여쓰면 큰일남)들을 보고 있노라니 눈마새 이 부분이 떠올라서 발췌해봤어. (가독성 때문에 문단은 임의로 나눔)


<눈물을 마시는 새>에는 네 가지 종족이 나오는데 그 중 '나가'는 뱀 종족이고 여존남비 모계사회임.

뱀이라 신체가 너무 조각나지 않는 이상 재생이 가능한데 심장을 적출해서 따로 보관할 수 있는 방법까지 개발한 후 거의 불사의 존재가 됨.

심장적출법 이전에는 어미와 새끼가 약한 기간 동안 생존을 책임져줄 수컷이 필요했지만 이제 수컷이 필요없어지자 점점 남자의 지위가 약해짐.

남자는 성인이 되면 출가외인이 되어 야생에서 살아가거나 이리저리 다른 집안에 몸을 의탁하며 그집 여자들과 잠자리를 가지고 후손을 보게 해줘야 함. 집에 머무는 성인 남자는 번식용이기 때문에 본가에 돌아가지 못함(근친ㄴㄴ).

소수의 남자들은 교육을 거쳐 사제가 되는데(수호자/여신의 신랑) 얘네들한테는 여자들이 존댓말을 써줌(일반 남자한테는 반말). 사실상 유명무실하지만 그래도 나가 사회에서 유일하게 남자가 존중받을 수 있는 지위임.


눈마새가 페미니즘 소설은 아니지만 이영도가 워낙 관찰력이 뛰어난 작가라 진짜 세세한 부분까지 미러링이 되어있어서 재미있어ㅋㅋ 

경제적 독립성만 있어도 여자들이 남자 필요성을 딱히 못 느끼는데 인공자궁이 개발돼서 임신으로 생활에 지장 없어지면 나가 사회가 픽션이 아니게 될 수도ㅋㅋ 지들도 그걸 아니 능력있는 여자들한테 열폭하고 앞길 막으려고 난리겠지
  • tory_1 2021.09.13 21:17

    어떤 분야에서든 거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통찰이 있는것 같음 나도 이 대목 보면서 오 ㅋ 했거든

  • tory_2 2021.09.13 21:56
    나가 세계관도 정말 파워 미러링 한국판 메갈리아의 딸들 수준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눈마새 작품 전체로 봐도 이게 페미소설은 아니지만 빻은 부분 거의 없음.

    2000년대 초반에 남작가가 쓴 판타지소설들이 얼마나 빻았었는지 (물론 지금도 다를바 없지만 ^^) 생각하면 거장은 다르다 싶더라. 여타 판타지에서 여캐는 대부분 남주인공을 보조하는 역할 or 연애대상 or 성녀 or 창녀로만 그려지는데 새 시리즈의 여캐들은 정말 입체적이고 각자 본인의 서사를 확실히 가지고 있음.

    나가와는 반대로 레콘 같은 경우엔 일부다처제 잖아? 일부다처제라는 설정 얼마든지 빻은 방향으로 확장 가능한데 ㅋㅋㅋㅋ 레콘 사회 그린 묘사를 보면 그런 면이 전혀 없는 것도 좋았음. 게다가 오히려 일부다처제가 베이스인 종족이라서 더욱 비혼캐릭터(타이모)가 돋보이기도 했고 ㅋㅋㅋㅋㅋㅋ
  • tory_3 2021.09.13 22:55
    이영도가 거장은 맞아ㅋㅋㅋㅋㅋ 작품도 엄청 많은데 남캐여캐서사 다 클리셰 없이 깊이가 있어. 그-나-마 이루릴 정도가 1예쁜 2여자 3엘프 3요소가 합쳐진 '전형적' 캐릭터지만 서사를 보면 이루릴은 이루릴일 뿐인 것... 아 그리고 2톨 말 때문에 생각난 건데 사실상 눈마새랑 피마새는 페미소설 아님??? 주인공과 서사가... 이거 페미 아니면 뭐가 페미죠...
  • tory_4 2021.09.13 23:08

    이 책 읽으면서 어쩌면 82년생 김지영보다 페미니즘 가치관에 가까운데 ㅈㄹ하지 않는 것을 보고 역시나… 그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라는 결론을 내렸었지. 찐톨 글 보니까 얼마 전에 결혼은 하기 싫은데 아이는 낳아서 키우고 싶다고 친구들이랑 줌으로 회식했던거 생각난다 ㅋㅋ

  • tory_2 2021.09.13 23:19
    윗 톨 댓글 보고 생각났는데 ㅋㅋㅋㅋㅋㅋ 한국 판타지계 거장으로 보통 이영도랑 전민희를 꼽잖아? 근데 룬의 아이들 ㅍ 까지 치면 페미가 연관 검색어로 뜨는데 눈마새는 ㅍ까지 쳐도 페미 연관 검색어로 안 뜸 ㅋㅋㅋㅋㅋㅋ 작품 속의 페미니즘적인 색채는 눈마새가 월등히 짙은데 참 신기한 일이지 ^.^

    https://img.dmitory.com/img/202109/2Wf/lA9/2WflA9wZfYYIwOMsmsIsoE.jpg
  • tory_3 2021.09.14 11:55
    맞아 이거 웃기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들은 책을 읽지 않고 작가 이름만 주구장창 검색하기 때문에... '페미 논란'이란 게 사실상 작가 성별 논란인 경우가 참 많쥬'ㅠ' 남작가는 서사로는 잘 안 건드리더라구
  • tory_5 2021.09.14 14:58
    나도 요즘 이 부분이 생각나더라
    암만 판타지래도 아버지라는 개념이 미신 취급되는 종족이라니... 그걸 또 남자가 만들었다니 증말 신기해
  • tory_6 2021.09.14 19:29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03/13 18:32:17)
  • tory_7 2021.09.14 22:32
    나가 사회는 저런 특성에 더해져서 모계 공동집단으로 가문이 완성되는게 인상깊었어 눈마새 나온게 거의 20년 가까워지는데 새삼 저 시대에 저런걸 짚어냈네 싶다
  • tory_8 2021.09.15 23:10
    ㅁㅈ 나도 이부분읽다가 발췌떠서 친구에게 보내줌 ㅋㅋㅋㅋㅋㅋ 이영도가 남자작가+찐문학쪽+경상도쪽 출신(아마 대학이 그쪽이었던거같은데..) 이런 극남초 환경에서 저런 생각을 한 게 신기할 뿐이고.... 토정보다 노정에 어울리지만, 전작인 드래곤 라자에서 운차이랑 네리아 대하는거나 여캐 대하는거 넘나멋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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