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의 책을 읽다가 현타가 왔었어.
대부분의 여성들은 강간을 당하지 않지만
평생 강간을 걱정하면서 살고 있다는 구절이 있었거든.
그래, 그렇더라. 나톨은 다리를 쫙 벌리며 앉지 못해.
전국 일주 하는 남자, 벤치에 누워 쿨쿨 잠을 자는 남자들이 부럽지만 따라 하지도 못해.
나톨은 강간을 당하진 않았지만
사실 감옥에 갇혀 살아 왔던 거야.
더이상 이렇게 살기 싫어 책을 찾아봤어.
[제가 왜 참아야 하죠?]라는 책이 있더라.
요즘 나톨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읽어봤는데
토리들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번 쪄봐.
저자는 10년 전쯤에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회사 사장한테 성추행을 당해.
참고참다가 동료 직원들과 함께 사장을 고소했는데
세상에 글쎄 이 여자들이 승소를 해 버려.
사장이 한 겨울에 구속 되는데 정말 통쾌하더라.
민사 져서 돈으로 손해를 배상 할 때도 꼬시고.
지금도 가해자가 남성이고, 피해자가 여성이면
피해자를 때리고 강간하고 죽여도 가해자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있는데
무려 십몇년전에 성추행 ‘초범’을 징역살이 시켰다니....
저자가 운좋은 것도 있고 초기에 대응을 잘 한 것도 크더라.
성폭력사건에서 증거, 일관된 진술이 중요한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증거가 될 수 있더라고.
한 직원은 자녀 일기장을 증거로 제출했대.
“엄마가 퇴근한 후 아프다고 누워만 있고 저녁밥도 안 해줬다” 애는 물론 일기장 복사해간다고 싫어했다네 ㅋㅋ
나톨이 그 동안 법, 고소, 뭐 이런것들이 무서워서 그랬을뿐
고소장 쓰는 것도 하나도 안 어렵더라.
물론 가해자가 발악하면서 피해자 공격하는 레퍼토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서
피해자들은 멘탈 금방 나가겠더라. 밑도 끝도 없이 문란한 여자, 나쁜 여자로 막 몰아가.
멘탈 부여잡을 필요성을 많이 느꼈어. 내가 만일 제3자라면 피해자를 어떻게 지지해줘야 할지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책의 절반은 고소해서 승리한 이야기이고
나머지 절반은 그 이후 바뀐 삶에 대한 이야기야.
저자가 고소한다고 할 때 엄마랑 남친이 뜯어말렸대.
남친은 “성폭력을 당한 여자는 흠있는 여자”고 “흠있는 여자를 차지하는 남자는 서열이 떨어지는 남자”가 되니 자기 망신이라는 거였어.
엄마는 가해자의 앞날을 걱정하며 저자를 비난해.
이 둘의 공통점은 저자를 나쁜 여자로 만들고 못났다고 후려쳐셔
계속 공짜로 이용하려 들었다는 거야.
마치 여자를 헤픈 여자로 몰아가 강간을 정당화하는 강간범들처럼.
2차 가해를 하는 가족, 지인, 사회를 이해하고 정리하기 위해 저자는 이론적 베이스를 쌓아가.
몇년 동안 공부하고 공부하다가 자연스레 역사책도 여러권 낸 작가가 되고
일상에서 정의실현을 하며 명랑하게 살고 계시지.
요즘 끔찍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서
무기력해 있었는데 이 책 읽으면서 기운을 쪼금 차렸어.
성범죄뿐만 아니라 나를 이용해먹기 위해 비난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게 되면서
인생을 헤쳐나가기 위한 어떤 심리적 태도 같은 게 생긴 것 같아.
뭔가 좀 기댈데가 생긴 느낌이야.
아는 게 힘이라고 소송 절차나 가해자 레퍼토리 같은 게 파악이 되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더라.
주말에는 한강에 자전거 타러갔다가
발라당 아무렇게나 벤치에 누워 한참있었어.
너무 편하더라.
뷰는 한강 벤치 뷰~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부분 적고 갈게.
“독자 여러분, 본인의 인격이나 성격 결함을 지적받고 너무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나빠서 상종 못할 인간이면 안 만나면 그만인데 왜 자꾸 만나자고 하며 만나면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 흉을 볼까요? 그건 당신을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잘하고 있는데도 더 이용하기 위해, 공짜로 이용하기 위해 ‘사람이 해야 할 도리’를 안 한다고 당신에게 누명 씌우는 겁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착한 사람, 약자들은 더 분발해서 잘 대해주거든요. ‘도리’라는 것은 약자에게만 강요됩니다. 여자 도리, 며느리 도리는 있어도 남자 도리, 사위 도리는 없잖아요. 이제 그럴 필요 없습니다. 사람은 그냥 가만있어도 사람입니다. 굳이 그들이 원하는 도리나 조건에 맞추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아넣어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후려쳐서 나쁜 여자 만들어 이용하기, 문란한 여성 만들어 강간하기 수법이거든요.“
- 박신영, <제가 왜 참아야 하죠?>
쓰다보니 길어졌네.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