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사이렌 나오기 직전에 했던 잡지 인터뷰들이야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계획적이고 음악에 욕심 많은것같아서 재밌게 읽었는데


오랜만에 같이보려고 퍼왔어ㅋㅋ 





<ELLE> 10월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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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발매) D데이까지 5일 남았네요. 이럴 때 속마음은 어떤가요 공개 전날까지 아무래도 신경이 예민해져요. 편안하다가 갑자기 막 걱정되기도 하고. 하루하루 기분의 높낮이가 자주 바뀌어요.  

늘 중의적인 단어와 이미지를 컨셉트로 잘 활용하는 것 같아요. 새 앨범 <워닝>의 타이틀곡 ‘사이렌’도 인어와 경고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죠 ‘가시나’도 그렇고 ‘주인공’도 그렇고 뭔가 경고의 의미를 지녔잖아요. 이를 극대화해서 세이렌에 관한 신화를 떠올렸어요.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공을 유혹해서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위험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존재! 우리가 말하는 ‘사이렌이 울렸다’는 말의 어원도 여기서 왔다고 해요. 

3년 전에 써둔 곡이라고 맞아요. 인어란 소재를 생각하고 난 뒤 이 곡의 가이드를 들어보니까, 흘러가듯 허밍으로 불러둔 게 너무 잘 맞더라고요. 완성된 곡에서도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랑 제가 홀리듯 노래하는 게 겹쳐지는 파트가 있는데 되게 특이해요. (스마트폰을 꺼내며) 들어보실래요? 

파워플하네요. 목소리도 단단하게 들리고. ‘인어’란 티저 이미지를 봤을 때는 좀 더 몽환적일 줄 알았어요 너무 딥하게 들어가면 대중성이 떨어지니까요. 제가 음악을 만들 때나 뮤직비디오를 준비할 때 항상 고려하는 게, 내 취향과 대중의 취향을 취합하고 절충하는 거예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수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직업이니까요. 

‘가시나’ ‘주인공’을 잇는 3부작 프로젝트의 완결판이라고 표현하던데, 서로 어떤 연결 고리가 있나요셋 다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내가 널 유혹하겠다는 느낌도 없고요. ‘사이렌’에서도 “네 환상에 아름다운 나는 없어”라면서 일부러 얼굴을 일그러뜨려요. 갇혀 있거나 수동적인 여자의 느낌이 아니라, 스스로 뭔가 말을 내뱉는다는 점에서 3부작이 완성됐어요. 경고, 경고,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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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의 작사를 맡았고 주요 수록곡의 작곡에도 참여했어요. ‘사이렌’ 외에 자랑하고 싶은 곡은 ‘블랙펄’이요.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풀어낸 곡이에요. 조개가 자기 안으로 들어오는 이물질을 방어하기 위해 액을 뿜어내서 만들어지는 게 진주잖아요. 그게 너무 요즘 사람들, 우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속으론 슬프고 힘든데도 겉으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포장하고 살아가는, 어쩌면 저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곡이에요. 

‘사이렌’ 뮤직비디오를 위해 직접 만들었다는 파일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가사마다 원하는 느낌의 공간과 연출에 관한 이미지를 스크랩했던데 네, ‘가시나’ ‘주인공’ 다 이렇게 작업했어요. (다시 한 번 스마트폰을 꺼내며) 의상에 대한 것도 있는데 보실래요? 

헬무트 랭부터 마르지엘라 쇼까지 레퍼런스가 촘촘하네요. 100% 선미가 기획한 앨범이라 할 수 있겠어요 열심히 공부해야 해요. 왜냐면 저는 지금 프로듀서가 없잖아요. 내가 나를 프로듀싱할 수밖에 없으니까, 내게 뭐가 어울리고, 뭘 잘할 수 있을지 다 알고 있어야 해요. 그렇다고 저 혼자 다 한 건 아니고요, 제가 아이디어를 내면 스태프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함께 만들죠. 회사에서 검수도 해줘요. 

무대 위의 선미는 대중을 ‘홀리는’ 스타임이 확실해요. 사람들은 선미의 어떤 점에 홀리는 걸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전에 보지 못한 캐릭터라서(웃음)? 다만 저는 눈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화보를 찍거나 공연할 때 항상 사람들과 눈을 맞춰요. 카메라를 볼 때도, 그게 단지 기계가 아니라 제가 사랑하는 사람, 대화 중인 누군가의 눈이라고 여겨요. 그런 점에서 관객이 나를 보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나 싶어요. 

본인은 어떤 것에 홀리나요? 선미를 사로잡는 것들은 잡동사니? 쓸모 없는 ‘예쁜 쓰레기’를 모으는 걸 너무 좋아해요. 집에 가면 그런 것들이 한가득이에요. 현관에는 홍학 인형이 하나 서 있고요, TV 옆에는 제 키만 한 튤립 조명이 있어요. 유니콘 인형, 자기로 만든 총 모양의 오브제도 있어요. 활동을 안 할 때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저는 집이 재미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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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몸담았던 회사에서 독립해서 ‘가시나’ ‘주인공’ ‘사이렌’에 이르기까지, 어떤 여정이었나요 선미라는 장르를 만드는 첫걸음? ‘주인공’ 인터뷰 때 얘기했어요. 선미라는 장르를 만들고 싶다고. 저는 ‘제2의 누군가’가 되고 싶지 않거든요. 다행히 나만의 장르를 만드는 과정에 디딤돌 하나는 놓은 것 같아요. 

자신만의 색을 지닌 솔로 아티스트로 성장하면서 스스로도 변화된 모습을 느끼나요 회사를 나온 뒤 저라는 사람을 브랜딩하기 위해 내가 가진 게 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생각했어요. 나는 감정 변화가 잦은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그걸 ‘가시나’에서 온전히 표현했어요.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제 캐릭터를 장점으로 승화한 거죠. 그래선지 요즘은 일상에서 좀 더 편해졌어요. 혹여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해요. 어떤 일이든 결국 내 삶에 일어날 일이었고, 그 뒤에는 또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믿고 나니 감정에 압도되는 일이 줄어들었어요. 

계속해서 진화하는 뮤지션도 있잖아요. 비욘세처럼. 3부작 프로젝트 이후의 계획은 저도 아직 모르겠어요. 늘 그래왔듯 내 감정대로 감수성에 따라 움직일 것 같은데…. 갑자기 베이스 기타를 들고 나올 수도 있고, 제가 좋아하는 옛날 음악 같은 앨범을 만들 수도 있고요. 다만 제가 뭘 하든 대중과 멀어지진 않을 것 같아요  

오늘 이야기하는 내내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에 놀랐어요. 선미에게 ‘대중’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인생의 동반자죠. 누군가 동반자가 있다면 미울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고,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답답할 때도 있을 것 아니에요. 똑같아요. 분명한 건,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거예요.






<GQ> 10월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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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든 음악이든 공개 시기를 고려하잖아요. 그 시기에 맞춰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게 매체의 일이고요. 그래서 여름에는 여름을 좋아하냐는 식의 질문을 그러고 보면 참 많이 하는데, 선미 씨에게는 지금까지 누구도 그런 걸 묻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네요?

집순이는 계절을 안 타나요? 무대에 설 때는 계절을 타요. 겨울에 활동하면 몸이 안 좋더라고요. ‘주인공’ 때가 겨울이었는데 진짜 몸이 안 좋았어요.

계절에 맞춰서 노래를 준비하지는 않고요? 네. ‘사이렌’은 원더걸스가 밴드 포맷을 준비할 때 제가 만든 노래예요. 원래는 타이틀곡이었는데 밴드 편곡이 안 맞아서 그대로 갖고만 있었죠.

대중음악인데 그래도 되나요? 언제 내겠다고 계획을 해도 딱 그 시기에 나올 수 없고, 사실 요즘 음악의 흐름에서 계절은 크게 상관없어요.

맞아요, 정확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트에는 여름 음악! 누구 음악! 이런 게 여전하지만 저는 계절에 영향받지 않는 음악을 하고 싶거든요.

선미는 아티스트보다 작품이 앞에 있는 사람이에요. 가수 선미가 아니라 ‘보름달의 선미’인 거고, ‘24시간이 모자라의 선미’인 거죠. 대중가수에게 일반적이지 않아요. 보통은 선미의 신곡 ‘사이렌’이니까. 맞아요. 노래가 제 이름보다 앞서 언급되는 게 내가 이 곡을 못 소화해서 그런가, 내가 대중성이 없는 건가 생각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가수는 곡이 좋으면 된 거잖아요?

가수 선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 항상 그 곡에 완전히 부합하는 캐릭터와 무대를 만드는 거죠. 배우처럼 접근한달까요. 저도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저는 어떤 곡이 있다면 백 퍼센트 그 곡에 몰입해요. ‘24시간이 모자라’ 때는 핏기 없고 싸늘하고 병약한 아이가 되고, ‘보름달’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아련한 소녀가 되고, ‘가시나’ 때는 미친 사람처럼 이랬다저랬다 난리가 나고. 하하. 내가 그 곡 자체가 되는 느낌?

사실 그 사이에 ‘점프’가 있죠. 원더걸스가 있었으니까요. ‘가시나’ 이전에는 아무래도 박진영의 그림자가 있었지만, ‘가시나’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거예요. 아, 이건 완전히 선미다. ‘가시나’와 ‘주인공’ 이후 저한테도 ‘섹시 여가수’라는 수식이 붙던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곡을 하는 가수인 거죠. 몸매가 육감적이지도 않고, 노출을 하지도 않았어요. 저는 섹시 여가수보다는 정말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하는 가수라고 불리고 싶어요.

‘가시나’ 같은 곡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게, 선미 씨 표현이 재밌던데 “나라는 사람에 대한 ‘덕질’의 결과라고 몇 차례 얘기했어요. JYP를 나온 건 저한테 프로듀서가 없어진 거였거든요. 제가 옮긴 회사에는 프로듀서가 없어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저 같은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좋은 곡을 받을 만한 프로듀서를 알아보자, 얼마인지 알아보자. 하하. 그보다 저는 제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파고들었어요. 제가 제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보는 사람들도 제 색깔을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대중들에게 ‘아, 쟤는 이런 거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렇게 생각해보니까, 저는 되게 감정이 요동치는 사람, 어떤 감정에 압도되는 사람. 그러니까 단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 건데 기분의 업 다운도 심하고, 얼굴은 웃고 있지만 불안하고, 산만하고. 그렇다면 이걸 오히려 제 장점으로 음악에 녹여보는 게 낫지 않나 했어요. 그렇게 ‘가시나’가 나왔는데, 사람들이 이걸 받아주더라고요. 하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기보다 원래 알고 있던 걸 인정한 것에 가깝네요. 네, 맞아요. 이 어둡고 불안하고 산만한 사람을 잘 포장하려는 시도를 안 해 본 건 아닌데 일단 잘 되지가 않았고. 하하.

그런 시도를 한 게 언제죠? 예능 프로그램 나갈 때 제 자신을 차분하게 만들려고 많이 노력해왔어요. 근데 잘 안 고쳐지더라고요.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막 표현하니까 오히려 편해졌어요. 그래서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아예 안 듣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달라 보여요. 원더걸스 이전의 솔로 활동에서는 되게 좋은 연기자였다면, 지금은 연기자 이전에 자신이 즐거운 게 보여요. 특히 춤이 그래요. 이전엔 일을 잘 하는 거였다면, 지금은 노는 거죠. 저는 예전에 무대 위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이런 걸 다 계산하고 올라갔어요. 맞아요. 지금 너무너무 자유로워요. 나를 구속하는 게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줄었어요. 나를 구속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나였으니까.

제일 큰 걸 줄였네요. 이젠 오히려 내 자신을 정면으로 드러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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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쓰는 방식은 바뀌었나요? ‘가시나’ 이후의 인터뷰에서 “트랙을 가지고 곡을 쓴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저는 가사 관련해서 메모를 많이 해놔요. 어울리는 트랙이 있으면 그 가사에 멜로디를 붙이고요. 트랙 위에 멜로디를 대충 스케치할 때도 있지만요. 이젠 해외를 나가도 밖에 잘 안 나가거든요. <비밀언니>에서 슬기한테 들려줬던 곡도 호텔에 있다가 아이폰에 있는 개러지 밴드로 띵가띵가 찍어본 거예요. 근데 그게 반응이 좋아서 의 아웃트로가 된 거죠.

트랙으로 곡을 쓰는 게 맞네요. 네. ‘사이렌’도 드럼 톤부터, 필인, 베이스라인, 사운드밸런스 다 제가 관여한 거예요.

구체적으로 이걸 물어본 건, 트랙 위에 입으로 멜로디 흥얼거리는 게 아이돌의 작곡이라는 식으로 많이 생각하잖아요. 선미 씨는 그게 아닌 것 같아서, 밝혀두면 좋을 것 같아서. ‘사이렌’ 코드도 제가 찍은 거예요. 코드 이름은 잘 모르지만 여러 가지를 해보다가 어떤 진행이 마음에 들면 시작하는 거죠. 중간에 스네어 한 번 치는 것, 목소리를 뾰족하게 뽑는 것, 믹싱할 때 트랙마다 볼륨 조정하는 것 다 제가 참여했어요. 밴드 활동한 게 큰 도움이 됐죠. 그때 여기에 대한 지식과 감각을 얻었어요.

선미 씨는 궁극적으로 프로듀서를 하고 싶은 걸까요? 일하면서 느끼는 건데 저는 지금도 저를 프로듀싱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음엔 이런 거 하자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제가 다 결정해야 하니까.

좀 더 작정하고 해보고 싶진 않고요? 직접 장비까지 다 다룬다거나. 요즘은 집에서 거의 잠만 자요. 스케줄이 매일매일 있어서 정신이 없어요.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다고요.

‘가시나’를 낸 이후 아이콘화된 게 있어요. 아이콘이 됐다는 건 그 이미지를 사용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지는 거죠.제가 요즘 패션 필름이나 뷰티 필름을 많이 찍잖아요? 근데 여기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은 게, 대부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는 거예요. 정해진 춤이 아니라 프리스타일을 원했어요. 영상 찍는 분이 너무 좋은데 못 따라가겠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요즘엔 화보를 찍어도 자꾸 춤을 시켜요.

‘주인공’ 뮤직비디오에서도 프리스타일 부분이 가장 좋죠. 진짜 넘어지기도 하고. 맞아요, 제가 넘어지는 것도 그대로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제가 기술적으로 춤을 잘 추지는 않는데, 몸을 아무렇게나 즉흥적으로 하는 게 신선한가 봐요.

스스로 주도적으로 작업한 ‘가시나’, ‘주인공’을 들으니 예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곡 스타일이 ‘아름다운 그대에게’에 가깝다는 거요. 아주 단순하고 비어있는 곡이죠. 전 그것에 대한 경계는 확실해요. 대중들을 위한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 언젠가는. 언젠가는? 가까운 미래에는 제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그대에게’ 같은 곡을 타이틀로 하는 꿈을 꾸기도 해요.

가까운 미래도 아니고 당장 첫 번째 미니 앨범 <Warning>은 직접 다 쓴 거 아닌가요? 한 곡 빼고요. 한 곡은 외국 곡이어서, 작사만 했어요.

그러니까요. 이번에는 조금이 아니라 선미 씨의 작품이라고 할 만한 쪽으로 훌쩍 넘어간 거죠. 저도 듣다 보면 조금 간 게 아닌가 싶어요. 하하. 아마 앨범을 들어보면 느끼실 거예요.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하나 배운 게 있어요. 제 목소리의 질감을 이용하는 거요. 한 곡이더라도 똑같은 톤으로 노래하는 게 아니고 변화를 주는 거죠. 목소리만으로도 굉장히 다이내믹한 걸 줄 수가 있더라고요. 전에는 몰랐던 거죠. 아, 나한테 이런 톤의 목소리가 다 있었구나,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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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자체가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아가는 과정이네요. 네, 맞아요.

앨범 제목이 <Warning>이에요. 어떤 경고인 거죠? 일곱 개의 트랙이 전부 작게나마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이것도 이번에 깨달은 건데, 제가 가사에 시니컬한 이야기를 많이 쓰더라고요.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약간의 위트를 넣어서 냉소적으로 말하는 게 가사에 항상 있었어요.

제가 유심히 본 건 A를 A라고 말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달까. 비유 뭐 그런 게 아니라 상반된 두 개의 가치 혹은 관점을 충돌시키죠.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그걸 대비 혹은 아이러니로 드러내요. 소름. 이번에 나오는 곡 중에 또 그런 곡이 있어요. 한 번 들려드릴게요.

왜 이런 식의 가사를 쓰는지 생각해본 적 있어요? 소위 ‘병맛미’가 있는 것 같아요. 하하. ‘사이렌’에 “슬퍼해도 난 울지 않아” 라는 가사가 있어요. 유치하죠. 근데 ‘사이렌’은 신화 속 인어 세이렌에게 영감받은 거고, 인어는 기쁠 때 운다는 걸 보고 만든 거거든요. 그래서 가사 뒤에 막 기쁜 멜로디가 나와요.

아이러니는 대중가요보다는 작가들이 탐구하는 영역이죠. 최선을 다해도 망가지고, 좋은 의도였는데 나쁜 결과를 낳고, 뭐 사는 게 대부분 그런 거니까요. 선미 씨가 이걸 자각하고 했을 것 같진 않은데, 결과적으로 그런 걸 쓴다는 게 재밌었어요. ‘가시나’가 단적인 예고요. 저는 ‘가시나’에서 “너는 졌고 나는 폈어”라는 가사가 정말 통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죠, 얼굴 폈다, 라는 표현도 되니까. 저는 말장난이 재밌어요. 웃기고 싶은 건 아니고, 사람들이 이걸로 여러 가지 해석을 하는 게 재밌어요. 노래 튼다고 하고 안 틀었네. 한번 들어보세요. 제목이 ‘Black Pearl’이에요. (노래를 튼다.)

선미 씨는 진주인가요 조개인가요? 조개죠, 조개. 하하. 아, 잠깐만요. 너무 웃겨가지고. 진주를 품은 조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쓴 가사인데요, 써 놓고 보니까 너무 사람 같은 거예요.

이것도 아이러니네요. 아름답지만 사실 보호막이잖아요. 맞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거랑 너무 비슷한 거죠. 성인이 돼서 사회생활을 하면 나의 어두운 모습은 감추고 사니까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그런 병도 있다면서요.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들어요. 여느 아티스트가 프로듀서에 가까운 결정권을 가졌다면 그때부턴 보통 자기 이야기를 시작할 것 같거든요. 자기를 막 표현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그런데 선미 씨는 자기 이야기라기보다 어떤 작품으로서의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말하고 보니 처음 했던 이야기랑 이어지네요. 맞아요. 그런데 저는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사실 내 감정이죠. 바쁘고 힘들다거나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안 한다기보다 모두에게 공감을 받으면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할 수 있잖아요. 이번 앨범에 ‘곡선’이라는 곡이 있어요. “life is so curve”, “this road is so curve”, “body is so curve” 세 개의 곡선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죠. 여자의 굴곡진 몸, 커브길 같은 데서 사람들이 긴장한다는 걸 떠올리고 이런 가사를 썼어요.

앨범 발매 전 인스타그램에 이런 문구를 올렸어요. “이건 좀 다른 선일 뿐이야.” 마이너를 지지하는 맥락으로 읽혔죠. 그러니까요! 사람들이 해석하기 나름인 거잖아요. 제 의도가 어떻건 간에요. 선 긋는다는 말을 쓰잖아요. 그 선이라고 볼 수도 있죠. 상상에 맡기고 싶어요.

자신보다 작품을 앞에 놓는다는 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이야기는 누군가와 공유하지 않겠다는. <비밀언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슬기 씨에게 직접 쓴 노래를 들려주며 “너랑 나랑 오늘 한 얘기 어디가서 하지 말기, 비밀이니까”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에요. 그게 “보안 철저히 하라”는 뉘앙스라기보다 오히려 슬기 씨와 공유하는 이야기를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들렸거든요. 저 또 소름. 혹시 제 앨범 들어보셨어요? 너무 신기해요. 아웃트로가 그 얘기예요. 한번 들어보세요. (노래를 튼다.)

이 노래, 마지막에 슬기 씨한테 들려주던 트랙 아닌가요? 한번 들었는데 기억이 나네. 어떻게 가사를 읊으세요? 깜짝 놀랐네.

근데 아마 PD, 작가 분들도 그 말이 참 좋은 걸 알아서 살렸을 걸요? 시청자들도 기억할 거고요. 헛소리를 하고, 별소리를 다 해도 그냥 우리만 알기. 그런 거였어요.

유튜브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을 봤어요. ‘주인공’으로 엠카운트다운에서 1등했을 때. 방송에는 안 나왔지만 앙코르하면서 신발을 벗어요. 아, 아마 불편해서 그랬을 거예요.

발이 여전히 안 좋나요? 카메라가 떠나자마자 바로 벗어야 하는 상태인데 참고 하는 건가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작품 하려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죠. 하하.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는, 즉흥적인 사람일 것 같지만 활동 과정을 돌이켜보면 항상 인내하는 쪽이었어요. 인내는 책임감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 무대에 대한 책임감. 책임감 때문에 버티는 거죠. 다들 그럴 거예요.

하지만 선미 씨는 요즘 감각적인 젊은이 혹은 아티스트들이 많이 쓰는 필름 카메라 대신 즉석 카메라를 더 쓰는 사람이니까요. 네, 저는 필름 카메라 잘 안 찍는 게 그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그러고 보니 이런 건 안 참네?

일과 다른 영역이긴 합니다만. 네. 참으면서 하는 게 있지만 또 무대를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 판이잖아요. 제 판에서 신명 나게 노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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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으로 한 걸 반성한다”고 말하는 걸 여러 번 본 기억이 나요. 그걸 매우 경계하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했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거겠죠? 저는 무대 위에서 맨날 똑같은 걸 보여주니까 그렇게 되기 쉬워요. 기계적으로 하면 일단 몰입도가 떨어져요. 몰입을 해야 보는 사람도 그렇게 되는 거고요. 이렇게 경계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 무대를 일부러 찾아보는 게 아닌가 해요. 몸이 따라줘야 하는 거라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하.

이번 춤도 힘든가요? 볼 때는 격렬해 보이지 않을 텐데. 코어에 힘이 많이 들어가요. 절도 있으면서도 부드러워야 하죠. 저희 댄서 분들이 한 번 딱 추고 진짜 역대급으로 힘든 안무라고 하더라고요.

앨범은 처음인데 자신 있어요? 네, 자신 있어요. 하지만 자신 있는 거랑 성적은 관련 없어요. 하하. 제 최대치의 노력을 쏟아부어 심사숙고하고 준비했는데 망한다, 그러면 어쩔 수 없죠. 근데 제 무대를 사람들이 기억할 거라는 확신은 있어요.

그건 그저 노력했기 때문만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노력은 다 할 테니까.

재미있네요. 성공할지는 몰라도 기억은 할 거라니. 제가 활동하고 화보 찍고 그러면서 눈빛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거든요? 저는 카메라 렌즈가 사람의 눈이라고 생각하면서 무대를 해요. ‘섹시 여가수’라는 포인트가 따라다니지만, 제2의 뭐라는 말이 나온다는 건 제가 가질 수 없는, 원조만이 갖고 있는 에너지가 있는 것 아닌가요? 누군가의 에너지를 모방하는 것보단 제 걸 만드는 게 훨씬 빠른 길 같아요. 빠르단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섹시 여가수 하면 효리 언니, 엄정화 언니, 김완선 선배님 얘기하지만 다 다르잖아요. 저 또한 다르고요. 저는 저만의 걸 찾은 것 같고, 그래서 기분이 좋아요.

세 번째 보는 거라서 알겠는데, 음악을 떠나 더 편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좋네요. 너무 자유로워요. 잘돼서 자유롭다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을 많이 찾았어요. 여전히 사람들 눈에는 산만하고 말 더듬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저는 제가 나아졌다고 느껴요.

마지막으로 물어보죠. 좋아하는 계절이 뭐예요? 아, 어떡하지. 저 진짜 좋아하는 계절이 없어요.

좋아하는 계절보다는 집에 보일러와 에어컨이 잘 작동하는가가 중요한가요? 음, 활동할 때는 봄. 집에 있을 때는 늦가을요. 저 집에서 암막커튼 쳐놓고 살거든요. 완전히 야행성이라서 가을, 겨울에 해가 늦게 뜨는 게 좋아요. 늦가을만의 빛도 좋고요. 뭔가 몽글몽글한 느낌 때문에 활동할 때는 봄이 좋아요.

지금의 선미 씨도 봄 아닌가요? 저요? 스물일곱인데? 저 몽글몽글해요? 나 봄인가?

  • tory_1 2019.03.05 17:14
    길지만 인터뷰 내용 하나하나 다 정말 좋다. 선미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으로 가수활동을 하고 어떤 생각으로 곡을 쓰고 표현하는지 잘 알 수 있는 좋은 인터뷰다. 선미는 점점 더 기대된다
  • tory_2 2019.03.05 17:34

    선미 인터뷰는 찾아보게 되는 것 같아 올려줘서 고마워 토리!

  • tory_3 2019.03.05 17:36
    와 이런 생각으로 꼼꼼하게 늘 컨셉부터 준비하니까 뮤비, 의상부터 음악까지 맞아 떨어지는구나 싶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네.
  • tory_4 2019.03.05 18:21
    원더걸스때에는 노래에 욕심없는 그저 그런 아이돌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진짜 뮤지션 그 자체로 보여
  • tory_5 2019.03.05 18:41
    와 인터뷰 내용 좋다. 인터뷰 처음 보는데 선미는 이런 사람이였구나. 자신과의 대화를 정말 잘하는 사람으로 보여
  • tory_6 2019.03.05 19:09

    원더걸스 5인체제일 때 가장 안 보이던 사람이 선미였는데 신기하다 이런 음악관과 생각을 가진 사는 사람이었구나 너무 멋있네

  • tory_7 2019.03.05 19:50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19/09/07 00:37:43)
  • tory_8 2019.03.05 20:55
    될놈될이다 진짜 ㅋㅋ나보다어린데 멋있다 ㅜㅜ
  • tory_9 2019.03.06 15:42
    선미팬인데 지금밖이라서 난제 읽어봐야겠다 스크랩해가 찐톨 좋은 글 올려줘서 고마워~!!
  • tory_10 2019.07.16 22:22

    원걸때도 선미만 보였는데...요즘 인터뷰하는 거 보면 자신만의 생각이 있는 것 같아보여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해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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