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5월에 읽은 책들이 너무 좋아서
마음에 밑줄을 박박 그었던 부분들을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써.

너무 오랜만에 여러 권을 읽은 탓에 쉽게 감명 받은 걸지도 모르지만😇 손으로 쓴 걸 모바일로 옮겨 쓰는 과정에서 띄어쓰기가 조금 틀릴 수 있다는 점 감안하고 봐줘!


제목에서 인용한 내용은 이번 달 나의 첫번 째 책이자 아래에 나오는 이라영 작가의 책이야.

여기에 옮겨 적는 책들 전문이 촘촘히 좋으니 내 밑줄을 보고 마음이 당긴다면 구매해서 보기를 추천할게







1. 여자를 대신해 생각해 줄 필요는 없다, 이라영 지음

나는 백인 남자들의 저서로 머릿 속을 가득 채우는 사람을 지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편견이 아니라 경험의 축적으로 얻어낸 결과다. (중략) 백인 남성의 저서를 읽는 것이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백인 남성의 지적 작업만이 눈에 들어오는 그 욕망을 지적하는 것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열 세살이 될 때 까지 읽은 글 중에서 흑인이 쓴 글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누군가는 열 세살에 이 괴이한 사실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예순 셋, 일흔 셋이 되도록 이에 대해 아무런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대체로 많은 ‘지적인’ 한국 남성들의 독서 목록에서 이러한 경향을 발견한다. 저렇게 많은 책을 읽었는데 어쩜 저렇게 편파적인 독서를 했을까. 하지만 세상에서 그들은 전혀 ‘편파적인’ 존재가 아니다. 여성의 글을 많이 읽으면 ‘편파적 독서’지만 주야장천 남성의 글을 읽어도 이는 오히려 보편이다.
‘압제자의 언어’는 그렇게 세상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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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으로 자주 이동하는 사람은 그만큼 타인과 자주 이별한다. 그 헛헛함과 함께 살아가려면 장소 자체와 관계를 맺을 줄 알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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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으로서 거리를 두고 볼 때는 감탄하다가 정작 그 안에 들어가서는 당황하고 무력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게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다. (중략) 내가 모든 문제를 다 감당할 수 없다는 것. 나의 의지와 노력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이것은 무책임하거나 나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영향력을 과신하지 않고 오만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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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픔은 누구에게 등을 보이는가. 내 슬픔은 누구의 얼굴을 바라보는가. 이름없이 공적인 얼굴을 상실한 자들을 애도하고 싶다. 1991년 부산에서 한 노동자는 팔에 다음과 같이 적고 투신자살 했다.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고 미경이다.” 그는 권미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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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의 단편 <마사의 책>에서 마사의 눈 앞에 나타난 신은 처음에 백인 남성이었다. 신과의 대화 과정에서 이 신의 모습은 흑인 남성으로 변하고 다시 흑인 여성으로 바뀐다. 마사가 신에게 묻는다.
“왜 당신을 흑인 여성으로 보기 되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린거죠?”
신이 답한다.
“삶이 너를 준비시킨 대로 본단다”
제 삶이 어디까지 확장 되었는지에 따라 신의 모습은 각각 다른 얼굴로 나타날 것이다. (중략) 어쩌면 내가 그동안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온 신의 얼굴이 수두룩할 지도 모른다.
삶이 쌓일 수록 소망한다. 내 삶이 점점 더 다양한 얼굴을한 신과 마주할 준비가 되었기를. 그 얼굴은 반드시 인간이 아니어도 괜찮다.





2. 붕대감기, 윤이형 지음

옛날에는 너무 지겨웠는데. 세상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안 변할까, 대체 어떻게 해야 이게 변할까 싶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너무 빨라. 빨라서 어지럽고 울컥거릴 때가 많아. 그런 걸 보면 네가 하는 말들이 틀린 게 없는 것 같아. 우린 승객이었을 뿐, 그동안 이 버스에서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었던 거지.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스스로 운전을 할 기회가 주어진 거야. 그래서 이렇게 어지러운 거겠지. 방향 하나하나, 신호 하나하나, 승객들 한 명 한 명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니까. 세연이 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이 될 거잖아. 나는 아무 이름도 갖고 싶지 않고, 끼워달라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단지, 표를 사는 법을 몰라서, 멀미가 너무 심해서, 집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아니면 그냥 길을 잃어서, 멍한 얼굴로 읽을 수 없는 노선표를 들여다보며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 곁에 있고 싶어. 자기 삶이 잘못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고 외로워서 그 사람들이 울고 있을 때, 다가가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줄 거야. 그 사람들에게도 누군가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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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소한의 공부는 하는 걸로 운임을 내고 싶을 뿐이야. 어떻게 운전을 하는 건지, 응급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정도는 배워둬야 운전자가 지쳤을 때 교대할 수 있잖아. 너는 네가 버스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버스 안에 있다고 믿어. 우린 결국 같이 가야 하고 서로를 도와야 해. 그래서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아, 남자들에게는 하지 않는 기대를.



3.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지음

날이 어둑어둑 저무는데도 기다리는 어른은 안 오시고 별안간 무서운 생각이 들어 동네를 향해 달음질칠 때 물빛 하늘에 달이 떠 있어 나를 따라오면 그렇게 위안이 될 수가 없었다. 저 달은 내가 천천히 걸으면 천천히 따라오고 달음박질치면 같이 뛰고 일부러 걸음을 멈추면 저도 느티나무 가지에 걸렸건 동산 위에 떴건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최초의 인식이야말로 자연과의 교감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달이 나를 따라다닌다는 걸 알고부터는 내가 쓸쓸할 때는 달도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기쁠 때는 달도 기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향집을 떠나 처음 서울에 와서 산동네 빈촌에서 마음 붙일 곳이 없었을 때 달이 서울까지 나를 따라왔다는 걸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던가.



4.다큐하는 마음,양희 지음

그는 무언가를 그린다는 것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동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순간, 멈칫했다. 그 말은 다큐멘터리 작업과 완전히 일치하는 말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역시 보여주기보다는 함께하기 위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촬영하고 있는 그 대상과 가능한 오랫동안 함께한다. 함께 있어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연대임을 알기 때문이다. 팽목항에 앉아 하염없이 검은 바다를 바라보며 돌아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들을 그냥 두고 올 수 없어서, 밀양의 철탑 아래 쇠사슬로 몸을 묶은 할머니들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서, 폭탄이 떨어지는 분쟁지역에 남은 이들을 못 본 체할 수 없어서…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을 기록해 기억하기 위해서 다큐멘터리는 바로 그 자리에 함께한다. 당장 누군가를 처벌하고 법을 만들고 난민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함께할 수는 있으니까.


5.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김은주 지음

결국 기존의 젠더 규범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규범을 비판하는 일이고, 이는 규범에 의존하는 삶에 대해 묻는 일이다. 젠더 규범이 누군가의 삶을 지워버린다면, 그러한 삶이 살 만한가 물어야 한다. 젠더의 문제는 살 만한 삶의 가능성을 최대화하고, 사회적 죽음이나 실제 죽음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에 직접 맞닿아 있다.
  • tory_1 2022.05.21 05:46
    첫번째 책부터 제목 보고 읽고싶다고 생각했던 거네 ㅎㅎ 좋은 책들 좋은 구절들 공유해줘서 고마워 찐토리👍 종강하고 읽어봐야겠어 두근거린다!!
  • tory_2 2022.05.21 06:15

    공유 고마워! 나도 찾아볼게!

  • tory_3 2022.05.21 08:32
    고마워!! 하나하나씩 다 읽어봐야지 ㅎㅎ
  • tory_4 2022.05.21 15:26

    다 너무 좋은 구절들이다ㅠㅠ 읽어보고 싶어져. 고마워!

  • tory_5 2022.05.21 16:52
    오 토리가 써 놓은 문구가 끌려서 첫번째 책 샀어! 알려줘서 고마워!
  • tory_6 2022.05.22 10:07
    너무 좋다!!
  • tory_7 2022.05.23 00:23
    모두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구절이다
  • tory_8 2022.05.27 02:41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08/25 18:40:06)
  • tory_9 2022.05.30 17:19
    좋은글 고마워
  • tory_10 2022.12.07 19:28
    고마워
  • tory_11 2023.08.11 16:25
    스크랩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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