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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성 가해자에 대해서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린 한 여자가 강간을 당했다고 묘사하고, 성폭행을 당하거나 구타당한 여성의 비율에 대해 이야기한다. 강간이나 성폭행을 저지른 남성, 폭력적인 가해자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성폭행을 거론할 때 너무 쉽게 여성의 옷차림, 행실, 선택만을 부각한다. 여성에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예방 조치를 하라고 경고하고 그러지 않은 피해자에게는 은연중에든 노골적으로든 책임을 전가한다. 강간은 현실의 남성이 내리는 의도적인 범죄적 선택이 아니라 짧은 치마를 입고 골목을 걸어가는 여자에게 닥치는 그늘이고 어두운 일이므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신문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런 남성들을 대면해야만 할 때는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정상적이고 멀쩡한 남자들과 분명하게 선을 긋기 위해 이들을 '짐승' '괴물'이라고 묘사한다. 우리는 이들을 셈하거나, 정량화하거나, 유의미한 방식으로 연구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그들을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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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 가부장제, 남성의 특권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대화는 지나친 일반화와 편견이라는 비난 때문에 곧장 옆길로 새버린다. 어디서든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다'라는 외침이 튀어나온다. 지나치게 단순하고, 공격적이고, 너무 싸잡아서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피부색이 갈색이나 검은색인 남자가 저지른 범죄를 가해자의 인종이나 종교와 관련 있는 것 같다고 넘겨짚을 때는 그런 반론을 찾아볼 수 없다. 남성성을 나쁘게 말하는 것 (현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문제적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남성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부 남성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문제 삼는 것은 모든 남성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되고, 따라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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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인구집단에 대한 증오를 확산하고 공포를 조장하겠다는 확연한 의도를 가지고 백인 남성이 저지른 대량살상 범죄를 묘사할 때 (바로 이것이 테러리즘의 정의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 인구집단이 여성일 경우 '테러리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이 남성은 그저 '정신적인 문제가 있고' '제정신이 아닌' '외로운 늑대'일 뿐이다. 우리는 이 남성을 '변종' '이탈자'라고 부른다. 이 남자의 온라인 행보를 '급진화'라고 부르거나, 그가 몰두했던 온라인 커뮤니티에 '극단주의'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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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년간 나는 거의 매주 영국 전역의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을 만나 성차별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갑자기 2년쯤 전부터 남학생들의 반응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들은 화를 내며 성차별에 관한 대화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정치적 올바름이 광기를 부리고, 백인 남자들이 박해를 당하고, 여자들이 강간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사회에서 진짜 피해자는 남자들이라고 내게 말했다. 스코틀랜드 농촌부터 런던 중심부까지 온갖 학교에서 나는 똑같은 주장을 듣기 시작했다. 서로 만나본 적도 없는 소년들이 정확히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똑같은 틀린 통계를 인용해서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팔에 소름이돋았다. (중략) 그래서 이제 나는 더 이상 이런 집단들을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메시지를 이미 들불처럼 퍼뜨리고 있는 그들이 탁월한 선동가임을 믿지 않는다면 그건 스스로를 기만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들은 우리의 조심스러운 침묵, 시선을 돌리기로 한 우리의 선택을 연료 삼아 더욱 확산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들을 무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증오를 퍼뜨리고 분열을 조장하는 이들에게 '귀 기울일만한 정당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을 타당한 논쟁의 한쪽 입장으로 인정하고 극단적인 선입견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을 직시할 대비를 하지 않고서는 이 집단이 제기하는 실체적 위협에 맞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략) 이 집단의 앞잡이가 소외된 피해자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더라도, 이 집단이 정당한 불만을 토로하는 소외된 피해자 행세를 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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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셀이 등한시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데 있다. 우리는 인터넷은 고사하고 오프라인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폭력을 진지하게 여기는 일이 좀처럼 없고, 장난이니 농담이니 하면서 쉽게 웃어넘긴다. 어떤 무슬림 공격자가 온라인 급진화를 거쳐 길을 가던 백인을 차로 덮치면 언론 보도와 정치 논평가들은 즉각 우리에게 그 관계에 대해 경보를 울리고, '테러'라는 단어가 재빨리 신문 1면을 장식하며, 살인범의 이데올로기와 온라인 행적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낱낱이 까발려진다. 남성이 노골적인 여성혐오 때문에 살인을 저지를 때는 이렇지가 않다. 축소 보도된 이런 유의 공격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조차도 범인이 명백하게 밝힌 의도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인셀 커뮤니티는 조용히 성장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충원하고, 승리에 도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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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들에게 먹이를 던져주지 말라는 조언은 그것이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늘 여자를 괴롭히고 학대하고 비하하기 마련이므로, 이 문제를 근보적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여자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그다음으로는 만약 이게 뿌리 깊고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안전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고 선택을 제한하여) 일제히 한구석에 몰아넣어야 하는 것은 (잠재적인) 피해자들이라는 인식 역시 깔려 있다. 대신 남성을 대상으로 일괄적인 대책을 세우거나 예방 조치를 시행하는 등 남성들의 자유로운 운동에 비슷한 영향을 주는 제안은 필연적으로 신속하게 분노의 백래시를 촉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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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강간 고발이라는 극도로 드문 사건 하나가 뉴스 머리기사를 장식하면 내 휴대폰은 요란하게 울려대지만, 최전선의 성폭력 서비스 지원금이 다시 한 번 대폭 삭감될 때는 고집스럽게 침묵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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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테러리스트들의 동기와 원인을 놓고 온갖 추측이 난무했지만, 노골적으로 명백한 연결고리 (특히 FBI 데이터에 따르면 테러리스트의 96% 이상이 남성이라는 사실)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무시되어 왔다. 주류 매체에서 대량살상범과 가정폭력 전력 간의 연결고리를 실제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후반부터였다. 그리고 지금도 백인 남성의 폭력 범죄는 어쩔 수 없는 '외로운 늑대'와 정신건강을 운운하는 말로 용서받고, 과소평가되고, 별개의 문제로 취급받아서, 매체들은 이런 행동을 정당화하고 설명할 그럴싸한 '이유'를 찾느라 혈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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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미디어가 백인 남성 테러리스트들을 축소하고 순화해서 묘사한다면, 누가 봐도 뻔한 극단주의적 여성혐오 공격을 제대로 정의하지 않고 폭력적인 여성혐오를 테러의 한 형태로 언급하지 않는다면, 이런 이데올로기와 폭력이 사회에서 정상으로 취급받는 데 한몫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문제에 솜방망이 정책으로 대응하는 상황 역시 이를 강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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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정폭력을 진지하게 여겼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남자들을 엄벌하고, 길거리에서 몰아내고, 아니면 최소한 일부 국가에서 이런 남자들이 총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법안을 개선했더라면 어땠을까. 여성은 늘 조용히 노래하는 탄광의 카나리아와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여성이 남성의 손에 죽는 모습에 워낙 익숙해서, 그걸 정상적이라고, '이해할 만하다'고 정당화하고 변호하는 행태에 워낙 익숙해서 이런 일탈 행위가 아무리 벌어져도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찍소리도 못 내고 고통받고 죽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며칠에 한 번, 몇 주에 한 번, 몇 달에 한 번, 남자들(또는 보통 그렇게 표현하듯 '사람들') 역시 죽는다. 우리는 그런 상황이 되어서야 소리치며 대응한다.
로라 베이츠 - '인셀테러'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