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6일 토요일 15시에 에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국립창극단의 '패왕별희'공연을 관람하였다. 우리 전통 소리를 기반으로 하는 창극단에서 굳이 중국의 이야기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공연을 보니 우려가 현실이 되다 못해 재앙으로 나타난 꼴이 되었다. 굳이 이 글을 찌는 이유는 국악계가 서로 쓴소리 못하는 좁은 판이고, 관객 한명의 감상 쯤이야 눈여겨 보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답답한 심정을 어딘가에는 털어놓고 싶은 마음인지라ㅠㅠ
중국 경극과 우리 창극의 만남! 이라는 혹 할만한 홍보 문구가 제법
그럴 듯 했는데 극의 짜임이 매우 엉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 창극은 소리를 바탕으로 극이
진행되고, 경극은 연극적인 요소가 매우 강한데 오디오를 제거하고 보면 이것이 창극이라는 것을 알만한
요소가 거의 없었다. 특히 항우, 우희, 유방, 여치, 번쾌, 장량, 한신 등 초한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진시황 병마용 갱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 중국의 복색을 하고, 경극 특유의 정형화된 마임을 한다. 특히나 항우와 우희는 얼굴 분장도 중국식, 춤의 스텝마저 경극식의 스텝으로 우희의 장검무도 중국식이다. 우리가
장검무의 전통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중국의 마임을 우리 소리꾼이 왜?
도창 역할을 하는 노파가 등장하는 풍경도 완만한 우리 산과 들이 아니라 뾰족하고 위로 길게 솟은 중국산의 모습이다. 야경꾼들이 모여 만담 비스무리하게 하는 대목에서 하나둘셋이 아니라 이얼싼이라는 대사가 나올 뿐 아니라 전쟁의 전개를 알리는 초한지의 내용이 중앙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올라가는데 글이 다 한문으로 올라가고, 대사 확인용으로 설치된 좌우의 작은 모니터에서 한글 해석본이 올라간다. 공연이 끝나고 등장인물들이 차례차례 나와 인사를 할 때도 한손으로 다른 손의 주먹을 감싸쥐는 중국식의 인사를 하는데 말잇못…
또하나 초한지 등장인물들은 모두 중국식의 복색을 하고 중국풍의 마임을 하는데, 초나라 병사들은 매우 자유로운 언행을 한다. 이게 뭡니까 계층별로 복색과 언행이 아무리 다르다지만 높으신 분들은 중국풍이고 일반 백성들은 조선인이요 이 무슨 사대주의 부활하는 소리입니까?
춤 소리 대사가 적절히 스며들어 전개되는 창극만 보다가 연기는 연기요 춤은 춤이고 소리는 소리일 뿐 하는 공연을 보니 애초에
기획의도부터가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역사를 돌아봐도 중국에 뒤지지 않을 영웅적이고
비극적인 서사가 많은데 굳이 중국의 이야기를 그 형식 그대로 아무런 고민없이 들여와 재공연씩이나 한다는 것이 너무나 안일하고 쉽게 가려고 한 것이다. 작년에 올렸던 ‘트로이의 여인들’의
경우 그리스 비극인데도 우리의 창극으로 훌륭하게 풀어냈던 단체의 역량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요즘처럼
국제정세가 미묘하고 긴박하게 흘러가는 와중에 ‘국립’이라는
단체가 정체성과 역사성에 대한 치열한 반성 없이 너무나 쉽게 가려고 했고, 자칫 불순하게 이용당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당장 패왕별희를 세계시장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보이면 이것이 우리나라 작품이라는 것을 어느 누가 쉽게 대답할 수 있겠는지, 오히려 중국것이라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나오지는 않을지 매우 우려스럽다.
그러나 이런 극의 짜임새와는 별개로 단원 개개인의 역량은 향상되고 있는 것이 보여서 즐거우면서도 안타깝다. 항우 역을 맡은 소리꾼은 역할을 잘 소화해냈고, 여치역도 원래 단원의 출산으로 인하여 급하게 캐스팅이 변경된 걸로 아는데 원 캐스팅인양 잘 어울렸다. 그리고 우희 역의 배우는 전작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헬레네 역할을 했을 때도 그렇고 오히려 여성 캐릭터를 맡았을 때 기량이 잘 드러난다는 인상이다.
요약
1. 이것은 창극이 아니다. 경극에 창극의 소리만 얹은 것이다.
2. ‘국립’ 단체로서 정체성 확립에 대해 더 고민하라
구구절절 동감이야... 국악계가 좁아서 서로 쓴소리 못한다는 것도 백번 공감하고. 일단 국립창극단이라는 단체 자체가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